인물·칼럼

영화 칼럼

나의 삶은 어디까지 나의 것인가?
영화 <드림 시나리오>

기고자. 송아름(영화평론가, 영화사 연구자)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송아름
송아름 영화평론가

꿈이라는 사건: 나를 배제한 이야기의 시작

해당 영화 포스터

너무나 당연하게 나의 선택이, 나의 마음가짐이, 나의 말들이 나를 만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나의 기반이 되고,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결심과 실천은 곧 나와 나의 현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잠깐. ………. 과연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내가 들인 노력만큼 그 결과가 확실했으면 좋겠다고 그저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찌 보면 불경할 수도, 그래서 삶의 의지와 낙을 꺾을 수도 있는 이 의문은 어지럽게 변화하는 폴(니콜라스 케이지)의 삶 속에서 조금씩 구체화된다.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내가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 그 자체가 얼마나 거대한 환상인지를 이야기하며 제목 그대로 '꿈'을 기저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의 발현, 게다가 압축과 전치 등의 가공까지 거치는 꿈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간의 의지를 반영하지 못한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마치 나를 구원해 주듯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면 나는 이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내가 결코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인 꿈, 이것으로 인해 시작된 관심은 폴의 삶 앞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전공, 성격, 취향으로 똘똘 뭉친 폴은 꿈으로 인해 삶의 전환을 맞이했고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폴이 꾸는 꿈이 아닌 폴의 꿈을 꾸는 사람들로 인해, 그러니까 어디에도 폴의 의지는 개입될 수 없었지만 폴은 사람들의 관심 중심에 섰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갑작스레 나의 꿈을 꾸면서 나를 웃는 얼굴로 대하고 말을 걸고 관심을 보인다. 마치 세상에 없는 듯 살고 있던 나를 번개처럼 주인공으로 만들어낸 꿈, 이로 인한 황홀함. <드림 시나리오>가 펼쳐놓은 상상력은 한 번쯤 바라마지 않던 관심에 대한 열망을 폴의 삶에 집중시킨다. SNS 스타 등극,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 각종 인터뷰 요청 등은 친한 이들에게조차 무시당하던 폴에게 자신감을 가져다주었고 점차 폴의 얼굴엔 생기가 돈다. 마치 벽에 대고 말하는 듯한 느낌 속에 가라앉아 있던 폴의 삶은 꿈으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깨어날 수 없는 매력적인 꿈.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이렇게 시작했다.

영화속 한 장면(1)

의도치 않은 호의: 관심이라는 매력적인 혼란

폴이 꿈을 꾸며 확실해진 것은 폴을 설레게 한 것, 그리고 폴이 자신감을 가지게 한 것은 모두 타인의 관심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마치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는 듯 사람들의 관계를 그리 중요치 않게 생각했고 많은 이가 관심 가지지 않을 연구를 진행하던 폴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순간 바로 그 관심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안면이 없던 이들의 관심, 호의 어린 질문들, 당신이 나의 꿈에 나왔다며 반가워하는 얼굴들은 폴의 삶에 활기를 더했고, 폴은 이 관심에 달뜨기 시작했다. 폴이 왜 사람들의 꿈에 나오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는 풀리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폴은 더 신비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드림 시나리오>에서 폴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현재의 많은 이의 화두인 '관심'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사람들의 삶에 기입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저 벼락같이 어디에든, 누군가에게든 꽂히면 그 자체로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하는 것이 지금의 관심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라면 폴은 정확히 그 중심에 있었다.

빈자리가 훨씬 많았던 폴의 강의는 학생들로 가득 차고 학생들은 폴이 자신의 꿈에 어떤 모습으로 나왔는지를 다투듯 이야기한다. 자신의 강의에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했던 학생들을 애써 무시하던 폴은 이제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웃음을 보내며 자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쌍방으로 오가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 학생들에게도 폴에게도 전에 없던 설렘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폴은 그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에 없던 신기한 현상, 그 현상의 주인공이 내 앞에 실존한다는 사실은 자신들이 겪는 꿈이라는 일상을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폴의 꿈은 나의 일상까지도 신기한 일에 포함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며, 이것으로 폴의 꿈을 꾼 이들 각각은 전에 없던 현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폴에 대한 관심이 곧 나에 대한 관심이자 일상이기에 충분한 소비는 당연했다.

영화속 한 장면(2)

<드림 시나리오>는 지금, 이곳에서 관심이라는 것이 어떻게 누군가의 삶을 파고드는지 예리하게 살펴낸다. 만약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면 이는 낙오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 역시 이 작품이 지나치지 않은 부분 중 하나이다. 극 중 폴의 아내인 재닛(줄리안 니컬슨)은 폴이 자신의 꿈에 등장하지 않아 이 소동에 끼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폴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 나와주었으면 좋겠냐며 재닛의 질문에 장난스레 답했지만 그녀에게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재닛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조차 화두가 폴을 향하자,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며 고집스럽게 의견을 제시한다. 분명 난감해하는 상대의 표정을 보았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던 재닛은 집으로 돌아와 폴에게 회사에서 자신이 꼭 그 프로젝트에 참가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들었다며 사실을 왜곡한다. 거대한 관심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재닛이 자기 효능감을 거짓으로 구축하는 모습에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관심밖에 놓인 이들의 삶의 구성이 얼마나 불안하게 구축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살과 같은 적의: 호의만큼의 공격과 배제

갑자기 누군가 주목을 받는다. 모두가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이때 언론보다도 빠르게 이 가치를 잡아내는 이들이 있다. 관심이 곧 상품이 되고 돈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 <드림 시나리오>는 이들이 폴에게 다가가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폴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한 업체에선 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미팅을 제안한다. 폴은 평소 책으로 내고 싶었던 동물사회학과 관련한 주제를 말해보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들이 원한 것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업체에서 제시했던 것은 학술적 서적이 아닌 사람들의 관심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광고의 제안이었다. 폴의 의견이라면 모든 것을 수용하겠다면서도 절대 돈이 될 수 없는 주제는 저어하는 그 태도는 관심으로 돈을 얻는 핵심이었다. 폴은 상처를 받고 자리를 뜨면서도 자신에게 스며든 관심을 버리지는 못한다. 그의 욕망은 타인을 향하고 있었고 자신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던 주제가 그리 중요치 않은 것으로 취급되었더라도 폴의 행복한 현재를 크게 해치지 못했다.

영화속 한 장면(3)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폴을 향한 관심은 방향을 바꾸어 이제 사람들은 폴을 피하기 시작했다. 처음 폴의 꿈을 꾸는 사람들은 그저 그가 자신의 꿈에 등장한 것에 환호했다. 폴은 자신이 어떤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도 현실이었다면 엄청난 질타가 따랐겠지만 꿈이었기에 폴의 응시와 등장은 그저 신기한 일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폴이 자신을 죽이는 꿈을 꾸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너무나 은밀하고 잔인하게 폴로 인한 죽음을 경험했다. 당연히 이 모든 상황에서 바뀐 것은 없었다. 폴은 무엇도 하지 않았고 꿈을 꾸었던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폴이 나오는 꿈은 갑작스레 현실로 비약되었다. 꿈의 내용을 문제 삼으려면 방관자적 폴의 자세도 분명 지적되었어야 했다. 그때는 꿈이라며 재미있어하던 이들이 지금에 와선 꿈이라도 무섭다며 날을 세우는 것은 분명 모순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갑작스런 호응이 관심의 메커니즘이라면 갑작스레 사라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타자의 관심은 모순이라는 이성적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삶에 모순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폴은 배척되고 사람들에게 위협당하고 일자리마저 잃는다. 멀어지는 관심을 견딜 수 없던 폴에게 더 이상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고 그런 폴을 견디지 못한 채 가족마저 떠나버린다. 가족까지 사라졌을 때 폴은 평범했던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관심의 끄트머리라도 쥐기 위해 분투한다. 게다가 꿈이 하나의 사업이 되면서 폴은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긴 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았고 이것은 곧 하나의 사업이 되면서 누구보다 먼저 타인의 꿈속로 들어갔던 폴이 다시 화두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에게 보인 것은 예전처럼 호의 어린 관심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기괴한 장치를 달고 삼류 잡지를 장식했고, 그가 썼던 꿈에 대한 책은 마음대로 제목이 바뀌어 지하 창고에 놓이는 지경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 제목이 더 상업적으로 좋겠다며 억지로 웃어보이는 폴의 얼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얻었다 잃은, 그래서 이젠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린 한 사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속 한 장면(4)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폴이 등장하는 꿈과 사람들의 일상을 경계 없이 보여준다. 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그가 꿈이라고 이야기해서 알 수 있고, 누군가가 폴을 공격하는 장면 역시 그가 다음 장면에서 문제없이 살아 있기에 꿈이었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장면화는 우리의 삶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들의 틈입으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의지를 흔드는 매력적인 관심은 폴을 높이 띄웠다가 무참하게 떨어뜨리며 상처를 낸다. 폴은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꿈을 꾼 후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하겠다며 울며 용서를 구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그의 삶이 어떻게 되었든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더 이상 폴을 향하지 않았고, 향하고 싶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드림 시나리오>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꿈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고 달라붙고 또 배제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안에서 변해가는 폴의 얼굴은 삶의 지진이라는 재난 앞에 선 이의 모습을 너무나 아프게 보여주었다. 그에게 쏟아졌던 관심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 또 누구를 노릴지 모를 일이다.

참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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