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칼럼

영화 칼럼

인정 욕구의 탈취로 그린 지옥도(地獄圖),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

송아름(영화평론가, 영화사 연구자)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겉으로 보이지 않았던 질문의 포착

한 남자가 물속으로 무엇인가를 흩날린다. 남성이 뿌리고 있는 것이 꽃잎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즈음, 누군가의 장례식 장면이 이어 붙는다. 이후 남성은 물길을 막고 있던 벨브를 열어 센 물줄기를 흘려보내고 그가 뿌린 무엇인가는, 마치 다음 장면에서 화장(火葬)으로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내 없어져 버린다. 간신히 물 위에 떠 있던 이파리의 끝에 핏기가 어린 것인가 의심이 들 즈음 영화는 그 정체를 명확히 밝혀주지 않는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은 이렇게 시작한다. 남자가 뿌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죽음과 연결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남기면서, 그래서 겉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무엇인가의 이면에 두려운 것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주면서.

영화 속 장면(1)
영화 포스터

영화 <사형에 이르는 병>의 첫 장면, 그러니까 야마토(아베 사다오)가 물가에 흩뿌리던 것을 숨긴 듯한 이 장면은 두 가지 질문을 품고 있다. 남성이 뿌리는 것은 무엇이며,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영화는 직선적이면서도 비교적 빠르게 답을 내놓는다. 야마토는 작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카페를 운영하던 이였고, 그는 자신의 카페에서 공부하던 학생들과 오랜 시간 친밀함을 유지하다 잔혹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리고 그가 어린 시절 집이 아닌 곳에서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극심한 학대를 받았다는 것도 그의 입을 통해 쉽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꽃잎처럼 보이던 무엇인가는 피해자 신체의 일부였고, 아동 학대라는 폭력의 결과가 범죄자를 만들어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아동 학대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말하려고 한 것일까. 이는 매우 섣부른 결론일 수 있다. 왜냐면 이 영화는 사실 사건의 발생과 경위를 추적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할애하지 않고, 무엇보다 영화 등장인물 대다수가 정서적·신체적 학대를 당하지만 야마토와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 첫 장면에 또 다른 힌트는 없을까. 어른거리며 등장했던 야마토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야마토가 뭔가를 흩뿌리는 장면은 마치 물속에서 누군가 올려다보는 구도로 비친다. 그렇다면 그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을 만큼 가라앉아 있던 이 혹은 이들은 누구인가.

과연 나는 인정받고 있는가?

야마토를 지나 영화가 시선을 돌린 곳은 잠시 스쳤던 장례식 후 마련된 한 가족의 식사 자리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있는 곳에 끼지 못하고 어색하게 맴돌던 마사야(미즈카미 코시)는 친척의 부름에 엉거주춤 상 앞에 앉는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었다며 '도쿄'로 대학을 가지 않았느냐는 말에 마사야는 멀리 자신을 매섭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한다.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뜬 마사야의 모습은 그가 친척의 질문처럼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것과 이로 인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후 아버지는 할머니를 기리는 행사에 참석할 것이냐고 묻지만, 마사야는 이 행사에는 가족 이외의 사람들이 오니 너는 오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실패한 이로 집에서 무시당하던 청년이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눈을 빛냈던 것은 야마토를 만난 후였다. 마사야는 집에 쌓여 있는 편지들을 살피다 우연히 자신에게 온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편지를 보낸 야마토를 찾아간다.

야마토는 자신이 벌인 연쇄살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인 상태였다. 7년 동안 24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야마토는 마사야에게 자신을 기억하겠느냐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청했던 것이다. 이 편지는 간단했지만 마사야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두 가지 포인트를 담고 있었다. 하나는 야마토가 마사야가 입시로 유명한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가 마사야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는 마사야가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트리거였다. 지금은 대학 입시 실패로 아버지에게 무시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그 전 마사야는 죽을 듯이 노력해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는 고등학교에 진학, 모두의 기대를 받던 과거가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에게 부탁하겠다는 것은, 게다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가 오래전 아이였던 자신을 떠올려 부탁하려는 것은 자신이 자신보다 권위가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라는 점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마사야가 떠들썩하게 뉴스에 오르내렸던 살인마에게 면회를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야마토를 찾아간 마사야는 그의 평온해 보이는 얼굴을 대면한다. 야마토는 어린 시절 마사야가 먹었던 메뉴의 이름이나 테이블을 닦는 등의 작은 행동을 기억하며 참 착한 아이였다는 말을 덧붙인다. 야마토는 마사야와 함께했던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고 또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며 기쁘다는 듯 옛 기억을 늘어놓는다. <사형에 이르는 병>은 바로 이러한 야마토의 태도가 마사야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두 사람의 얼굴 클로즈업 교차샷, 그리고 면회실 유리장의 반사 장면 등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낸다. 야마토가 등장하기 전 긴장하고 있던 마사야는 야마토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씩 얼굴이 풀려간다. 그가 어릴적 마사야가 테이블을 닦았다는 말을 할 때는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하며, 너와 함께 대화를 나눌 때에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말에도 연민이 느껴지는 듯 그를 쳐다보기도 할 만큼 편해지는 것이다.

영화 속 장면(2)

야마토는 한 번도 마사야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마사야에 대한 기억을, 감정을 모조리 살려내며 마사야가 자신에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느끼게 만든다. 야마토는 성인이 된 마사야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물었고, 잘 컸다고 말해주었고,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존재라는 것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있었다. 야마토의 이러한 태도는 마사야를 조금씩 움직였고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범이라는 거부감 까지도 무너뜨리고 있었다. 바로 이 지점은 <사형에 이르는 병>이 아동 학대를 넘어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것을 지시했다. 야마토는 마사야와 같이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배회하는 이를 품어주었을 때 어떠한 결과가 오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혹한 인정이 낳은 최악의 결과들

영화는 전반에 걸쳐 야마토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이는 그가 연쇄살인이라는 범행을 저지른 것에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쪽에 치밀하게 기울어져 있다. 야마토는 젊은 시절부터 상대의 취약함을 이용해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고, 이를 위해 누구보다 상대에게 진심을 다하는 듯 보이는 몸짓들을 충분히 표현해냈다. 심지어는 그가 수감된 교도소의 교도관조차 처음에는 그의 면회 시간을 칼같이 끊어내며 냉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야마토에게 관대해지고 심지어 야마토를 저지해야 하는 순간까지도 눈감기에 이른다. 이 변화의 이유는 역시나 다르지 않았다. 딸과의 소통이 어려웠던 교도관이 야마토가 추천해준 책으로 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짧은 대화로 드러나는 것이다. 야마토의 교묘한 술수는 이제 마사야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야마토는 모든 혐의를 인정하지만 9번째 살인만은 결코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자신은 성실한 학생만을 노렸을 뿐 성인을 살해한 적이 없다며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자신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항변한다. 마사야가 경청하고 있는 말속에는 아이들에게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거나 상상도 못할 이에게 고통을 당하게 하고 싶었다는 등 범죄자로서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지만, 단 한마디가 이 모든 악행을 지워냈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지만 "넌 다르지?"라는 한마디. 진범은 밖에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너와 나뿐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야마토는 마사야가 매우 특별하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는 감각을 심어주고 있었다. <사형에 이르는 병>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이 두 사람의 면회 장면은 야마토가 마사야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마사야가 이에 어떻게 빠져들고 있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특히 야마토가 유리벽을 넘어 마사야의 목을 감고 이야기를 전하는 가상의 장면은 공포까지 느끼게 할 정도로 끈적인다.

영화 속 장면(3)

면회를 마치고 온 마사야는 야마토의 말에 따라 사건의 증거를 수입하기 시작한다. 천천히 치밀하게, 무력해보이던 마사야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학교에서 겉돌며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마사야는 더욱 사건에 빠져들었고, 결국 야마토가 맞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마사야는 야마토를 찾아가 자신이 조사해 온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천천히 주저하듯 이야기하던 마사야는 야마토가 그의 말에 집중하고 또 호응해주자 점차 속도를 내며 또 다른 살인자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경찰도 판사도 생각지 못한 가정을 하고 있다는 야마토의 말에 마사야는 표정 더욱 단단해지고 확신에 차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야기를 듣고 난 야마토는 감탄한 듯 한마디를 내뱉는다. "역시 넌 대단해." 이 말에 놀란 듯 잠시 주춤하는 마사야에게 야마토는 지금까지 네가 너만의 방식으로 여기까지 온 성과를 올린 것이라며, 그의 가정을 옹호하듯 또 다른 살인마를 조심하라며 그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사형에 이르는 병>은 야마토의 말에 따라 조금씩 사건에 가까워지고, 또 왜곡된 방향으로 자신의 생각과 힘을 증명하려는 마사야를 보여주면서 아동 학대 그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자존감이 결여된 이가 얼마나 취약한지, 이를 만족시켜주었을 때 얼마나 위험한 이가 될 수 있는지를 잔혹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마사야의 엄마나 중학교 동창이라며 마사야에게 접근했던 여자 친구, 야마토의 면회를 갔을 때에 마주친 의문의 남성 등이 과거 야마토와의 관계 속에 얽혀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며 그들 역시 위험했거나 현재 위험하고, 앞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배치하며 이를 강화시킨다. 인정받지 못한 이들의 인정 욕구를 자극하며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얻으려 했던 야마토의 잔인함은 영화 전반에서 날카롭게 그려지고 있었다.

영화 속 장면(4)

영화는 야마토의 진술이, 그리고 그에 따라 움직였던 마사야의 가정이 거짓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가 결코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던 9번째 살인은 오랫동안 노려온 이를 처단한 야마토의 범행이었고 이를 알게 된 마사야는 결국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마사야는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하지만 마사야는 야마토가 주변인까지 동원하여 자신을 옭아매려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망연자실한다. <사형에 이르는 병>에서 야마토가 자신도 아동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라며 스스로 그럴 수밖에 없던 인간이라 항변하는 것이 어떠한 알라바이도 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아동 학대 피해자라며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던 이가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이들의 감정을 이용하여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를 기분 나쁠 정도로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형에 이르는 병>은 야마토와 같이 불안의 빈틈을 노리는 많은 이,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지옥도를 차갑게 그려내며 다시금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그 흔적은, 절망적이게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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