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협력·칼럼 소식
기후위기 시대의 테크 스타트업
에너지 안보와 혁신의 교차점
기고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학연구원 김장길 교수
2024년, 우리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폭우로 173명이 목숨을 잃었고, 42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사이클론으로 84명이 사망했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기록적인 가뭄과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액은 이미 41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사실 지구의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경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경고'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렸다. 식량과 물 공급 시스템이 폭염과 혹한, 가뭄, 홍수로 심각하게 교란되고 있으며, 이는 전 지구적 위기로 번져가고 있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은 최악의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고, 북극의 빙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금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2.7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인류가 합의한 파리협정의 목표치인 1.5도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2% 감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있지만,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다각적 접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는 대중의 참여를 이끄는 캠페인이다. 대중교통 이용하기,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기 사용하기, 육류 소비 줄이기 등 일상적 실천을 독려하는 각종 캠페인은 전 세계적으로 약 30% 이상의 탄소 배출 감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늘 그렇듯이 개인의 생활 습관 변화는 작지만 중요한 시작점이 되지만, 이러한 캠페인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위해 노력하더라도, 그 속도와 규모가 기후위기 진행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업계의 대규모 탄소 배출을 개인의 노력만으로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둘째는 대학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한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이다. 세계 각국의 연구진은 탄소 포집,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저장 등 이른바 혁신적인 기후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연구는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이론이나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검증 과정과 시설 구축, 그리고 실제 적용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기후 기술 스타트업의 등장이다. 이들은 기후 문제 해결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 빠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유연한 조직 구조를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험해볼 수 있으며, 창업가 개인의 이해관계와 기업의 생존이 직결되어 있어 문제 해결에 대한 동기 부여가 강하고, 실행 속도도 빠르다. 특히 이미 연구 개발이 이루어진 대학의 연구 성과를 실용화하거나 새로운 응용 기술을 개발해 시장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기후 기술의 재정의와 에너지 안보
기후 기술은 일반적으로 "기후변화의 완화와 적응을 위한 기술적 해결책"으로 정의된다. UN 기후변화협약(UNFCCC)은 이를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고,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이거나 대응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술"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에너지 안보 문제와 기술 혁신의 다양성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필자는 지난 1년간 서울대학교와 아산나눔재단이 함께하는 기후 기술 창업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SNU-Asan UniverCT 프로그램의 PM으로 활동하면서 기후 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기후 기술과 대학 내에서 연구되고 있는 기후 기술 사이의 상당한 관점 차이였다.
대중적으로 기후 기술 창업은 주로 제로 웨이스트, 탄소 포집, 탄소 중립 등의 개념과 연결되어 이야기된다.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적 접근이 중심을 이루며, 특히 소비자의 생활 방식 변화와 기업의 책임 의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는 기후 기술 연구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단순히 배출량을 줄이거나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넘어,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며 전통적인 방법을 뛰어넘는 혁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일반적인 인식과 상충되는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통상적으로 기후 기술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는 원자력발전이나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와 같은 기술들이 에너지 안보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주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AI와 같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이는 기후 기술의 정의가 단순히 친환경적인 기술이나 탄소 저감을 넘어, 에너지의 지속 가능성과 안정적 공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가 긴밀하게 연결된 현시점에서, 우리는 기후 기술을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모든 혁신적 기술'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사례연구1: 로켓 엔진과 암모니아 발전기
현재 서울공대 교수로 재직 중인 필자의 대학 동기는 로켓에 들어가는 제트엔진을 연구하고 있다. 연료를 태워 엄청난 속도로 추진력을 만드는 이 제트엔진 연구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기후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후 기술 창업을 지원하는 필자와 그 친구는 이를 두고 종종 농담을 나누었다. "나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너는 왜 이리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연구를 하느냐"는 식의 대화가 오가곤 했다. 그로부터 1년 후, 필자가 기획한 기후 기술 창업 행사에서 그 친구는 친환경 암모니아 발전기에 관한 기후 기술 특강을 맡았다. 제트엔진 연구를 하던 그가 기후 기술 강연을 하게 된 데에는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탄소 기반 연료 대신 암모니아(NH₃)를 이용한 친환경 발전을 연구하며, 제트엔진 전문가로서 연소 제어 기술을 기후 친화적인 에너지 시스템에 적용할 가능성을 본 것이다.
최근 들어 암모니아는 청정 연료로 각광받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만들어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고, 이 수소를 질소와 결합해 암모니아로 변환하면 된다. 암모니아는 저장과 운송이 쉬운 연료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암모니아의 연소에는 특수한 기술이 요구된다. 폭발적으로 연소되기 때문에 정밀한 연소 제어가 필요하며, 제대로 연소하지 않으면 유독 가스인 이산화질소(no₂)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 제트엔진 연구를 통해 고도의 연소 제어 기술을 쌓아온 그의 전문성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1년 전의 로켓엔진 전문가가 이제는 친환경 암모니아 발전을 연구하며 기후 기술의 미래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 사례는 기후 기술의 범위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그리고 기존 기술이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새롭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례연구2: 미래의 청정 에너지원, SMR이 가지는 딜레마
최근 수 년간 전 세계적으로 전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산업의 디지털화와 인구 증가, 도시화로 인해 전력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한파 같은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이 전력 사용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의 기술 확산으로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 센터 수요도 높아지면서 전력망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전력 수급 문제는 단순히 전력 소비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설비를 증설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안정적이고 탄소 배출이 없는 에너지원으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가 주목받고 있다. SMR은 기존의 대형 원자로와 달리 소규모로 설계되어 특정 지역의 전력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탄소 배출 없이도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정 에너지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 대형 원자로가 가지는 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소형화와 안전성을 강화한 SMR은 사고 발생 위험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전력 공급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SMR의 잠재력에 주목하여 구글(Google)은 미국 기업 중 최초로 SMR을 통한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2024년 10월, 구글은 미국의 SMR 스타트업인 카이로스 파워(Kairos Power)와 전력 구매 계약을 맺었고, 이에 따라 2030년부터 SMR을 통해 총 500메가와트(㎿)의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다. 구글은 자사의 AI 솔루션과 데이터 센터 운영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수요를 안정적이면서도 청정한 에너지원으로 충족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SMR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IT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원자력발전을 통한 전력 확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MR을 진정한 청정 에너지원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딜레마는 여전히 존재한다. 확실히 SMR은 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기후에 관계없이 꾸준히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신재생 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의 고질적인 문제인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SMR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청정 에너지로서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다소 흐리게 한다. 기술이 발전하여 폐기물 관리의 안전성과 효율성이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리 부담과 환경적 위험 요소가 남아 있는 한 완전한 친환경 에너지로 평가받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SMR은 청정 에너지원으로서 기대를 받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완벽하지 않은 대안으로서 딜레마를 안고 있다.
결국 SMR은 전력 수급 문제와 에너지 안보를 해결할 중요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이를 청정 에너지원으로 무조건 수용할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하다. SMR의 기술적 가능성과 안전성 개선이 에너지 전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그리고 방사성폐기물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기후 기술 창업의 미래
로켓엔진 전문가가 친환경 암모니아 발전기를 연구하고, 과거에는 배척받았던 원자력 기술이 SMR이라는 형태로 다시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기술의 세계에서는 정답이 없고, 단지 우선순위와 방향성이 있을 뿐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당장 모든 탄소 배출 활동을 중단하고, 말 그대로 원시 시대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가 이미 누리고 있는 문명의 혜택을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설사 우리가 그렇게 하더라도 이미 상승한 지구 온도를 되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문명을 유지하면서도 환경을 보호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기후 기술 창업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기후 기술 창업가들은 전통적인 에너지원이나 산업 기술을 기후 친화적인 방향으로 재조정하고 새로운 기술을 찾아서 사업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방향성의 정당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기후 기술이라고 믿는 대안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으며, 반대로 지금 당장은 기후 기술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기술이 실제로는 기후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기후 기술 창업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존 기술과 새로운 대안을 아우르는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대안이 장기적으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반대로 기존 기술의 연장선에서 새롭게 발견된 방법이 기후 기술로서 재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기후 기술 창업에서는 단순히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기술을 새롭게 바라보며 환경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혁신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필자는 서울공대에서 기술 창업을 지원하는 일개 창업 보육자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창업 여정의 선두에 서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관련 연구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시작이 어떠면 어떻고, 과정이 어떠면 또 어떠할까?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이야말로 참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속 가능한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바라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모든 노력이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