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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츄어의 명반사냥이야기 쉰 번째: 한국 록 음악의 탄생

기고자. 원자핵공학과 나용수 교수
나용수 교수
나용수 교수

신중현은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나 6.25 전쟁을 거치면서 부모님을 잃었고, 누군가 내다 버린 기타로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용산 미 8군은 부대에 클럽을 두고 파병 병사들이 미국에서처럼 유흥을 즐길 수 있도록 한국의 실력파 뮤지션들을 섭외하여 공연을 했는데, 신중현은 한 무용수의 소개로 17세 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미 8군 연예단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하게 된다. 전쟁으로 척박한 땅에서 미 8군 연예단은 음악으로 많은 돈을 벌고 뮤지션으로 인정받을 유일한 창구였다. 무대 한 구석에서 보조 연주를 하면서 실력을 쌓아가던 그는 19세에 악단 기타리스트로 정식 데뷔하게 된다. 출중한 기타 실력으로 그는 단숨에 인기를 얻게 되고, 미군들은 그에게 '히키 신'이란 별명을 지어준다.

이러한 인기에도 신중현은 다른 나라 음악을 연주하는 카피 밴드라는 한계에 늘 고심하게 되고, 마침내 미 8군 연예단을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 한국적인 록 음악을 시도하기 위해 단원을 모아 신중현(기타, 보컬), 서정길(리드 보컬, 리듬 기타), 한영현(베이스 기타), 권순근(드럼) 라인업으로 1964년 록밴드 에드 훠(ADD4)1)를 결성하고 데뷔 앨범 준비에 착수한다. 멤버들은 장충 녹음실의 응접실에서 미군 휴대용 릴테이프 녹음기에 길게 연결한 단 한 개의 마이크 앞에 옹기종기 모여, 14곡의 녹음 작업을 단 하루 만에 끝내고 1964년 12월 한국 최초의 창작 록 앨범 <비속의 女人>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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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훠: 비속의 女人' LP (LKL RECORD, 음반번호: LKL-1014)

앨범은 번안곡 없이 전곡 창작곡으로 이루어졌고, 신중현은 전 곡의 작사, 작곡을 맡았다. 타이틀곡은 <비속의 女人>이었다. 서구의 록 음악이 한국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이식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중은 이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트로트가 대부분인 시절이라 <비속의 女人>이 처음 나왔을 때 아무 반응이 없었다"라고 신중현이 회고했던 것처럼 한국 록 음악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의 엄청난 인기 앞에 보류되어야 했다.

실험은 실패했고, 지방의 시민회관과 음악 감상실 등을 전전하던 신중현은 미 8군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히키 신'은 본격적으로 작곡 활동을 시작했고, 펄 시스터즈에게 준 "커피 한 잔"이 대대적인 히트를 하게 된다. 이 곡은 다름 아닌 <비속의 女人>의 B면 첫 번째 곡 "내 속을 태우는구려"를 편곡하여 사이키델릭 톤을 입히고 제목을 바꾼 것이었다. "커피 한 잔"을 필두로 하여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박인수의 "봄비", 장현의 "미련", 김정미의 "바람" 등을 통해 신중현 사단은 머지않아 한국 대중음악계를 접수하게 된다.

대한민국 록 음악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기념비적인 명곡 "비속의 女人"은 이후 김추자, 장현, 나훈아, 김목경, 김건모, 장윤정 등이 리메이크하고, 2003년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에도 실리게 되면서 세상에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비속의 女人>은 음악사적 가치뿐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 음반 중 가장 비싼 음반 중 하나로도 손꼽힌다. 발매 당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반을 많이 발매하지 못한 데다 일찍이 신중현의 가치를 알아본 일본의 음반 컬렉터들이 청계천을 돌며 싹쓸이해서 국내에 음반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규성의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에 따르면 1990년대 말 일본인이 400만 원에 사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미술품 컬렉터들이 판화 대신 신중현의 음반을 모으라고 조언하듯이 <비속의 女人>초판은 현재 천만 원을 훌쩍 넘었고, 필자도 30여 년의 음반 수집 기간 가장 큰 출혈을 감수하며 어렵게 구한 음반이 바로 이 음반이었다.

이 앨범은 1964년 발매된 이후 수차례 재발매되었는데, 초판이 KBS TV에 출연한 스튜디오 연주 사진으로 앨범 표지가 꾸며진 반면, 재판은 리드보컬 서정길의 독집 앨범으로 바꾸어 초판과 같은 해 발매되었고 (음반사, 음반 번호 초판과 동일), 신중현이 명성을 얻은 뒤 1970년 발매된 6판은 신중현이 커버에 등장하며 <申重鉉의 첫作曲 앨범 S. JUNG HEON FIRST ALBUM>으로 타이틀도 바뀐 채 발매되었다. (Shin Jin Record, 음반번호: LK 1014) 이 음반들 또한 수백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비속의 女人>은 2007년 오리지널 초판 앨범 커버를 복원하여 CD로도 발매되었다. (포니캐년, 음반번호: SJHMVD 2619)

비속의 여인 재판 앨범커버 비속의 여인 6판 앨범커버
<비속의 女人> 재판(LKL RECORD, 음반번호: LKL-1014)과 6판(Shin Jin Record, 음반번호: LK 1014) LP 앨범커버

신중현이 한국 록 음악의 대부로 일컫게 된 것은 그가 단순히 서구 음악 장르를 이 땅에 선사했다는 것을 넘어 이를 해체하고 자신만의 색깔로 재창조하였다는 데 있다.

에드 훠 동시기에 코끼리 브라더스, 김치스, 바보스가 결성되었지만 이들은 음반을 남기지 못했고, 동 시대의 키보이스는 <비속의 女人>보다 5개월 앞서 데뷔 앨범 <한국의 비틀즈 Key Boys : 그녀의 입술은 달콤해>(신세기레코오드, 음반번호: SL 10417)를 발표했고, 차중락, 차도균, 윤항기, 김홍탁 등 훗날 한국 대중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뮤지션들로 구성되었지만, 수록곡 13곡 중 7곡이 비틀즈 등 외국곡을 번안한 것이었고 창작곡들도 밴드 자신이 아닌 트로트 전문 작곡가 김영광의 작품이었다. 키보이스 1집은 잘생긴 외모의 차중락을 앞세워 발매와 더불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반면, 전술한 바와 같이 <비속의 女人>은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이후 한국 록 음악을 견인하게 된다.

깁슨(Gibson)사와 더불어 일렉기타 제조 업체 양대 산맥인 펜더(Fender)사에서는 아시아 최초이자 전 세계 6번째로 신중현에게 시그니처 기타를 헌정하였고, 세계 최고의 대중음악 전문대학으로 손꼽히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는 2017년 그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였다.

2011년에는 미국 Light In The Attic 음반사에서 <Beautiful Rivers And Mountains: The Psychedelic Rock Sound Of South Korea's Shin Joong Hyun 1958-1974>라는 제목으로 신중현 컴필레이션 음반이 2장의 LP로 발매되었다. (음반번호: LITA 065). 음반사의 대표 맷 설리번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국 영토 밖에서 앨범을 낼 수 있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록 역사상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과 견줄 만한 훌륭한 아티스트가 아직 많이 안 알려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전 세계가 그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라고 했다.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있는 신중현. 브라운 총장은 신중현이 버클리음대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 첫 번째 아티스트라며 1960년대 사이키델릭 록부터 1980년대 팝까지 아우른 '절대적인 전설'이자 '천재적인 예술가'라고 일컬었다. (사진 출처 보기)
정훈구 강사(4)
미국 Light In The Attic 음반사에서 발매한 <Beautiful Rivers And Mountains: The Psychedelic Rock Sound Of South Korea's Shin Joong Hyun 1958-1974> 컴필레이션 음반 (2LP. 음반번호: LITA 065)
참조
  • 1) 당시 일본식 발음에 따라 "에드 포"가 아니라 "에드 훠"로 기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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