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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명반 사냥 이야기 마흔 여섯 번째: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기억되어야 할 원조 K-Pop

“Lilifa (릴리화, 본명 최정환) : WIND BEI NACHT (밤에 속삭이는 바람)”
LP (한국흥행주식회사, 음반번호 : KE-O-1001)


“Lilifa : Siehst du den Mond von Tennessee (당신도 테네씨의 달을 보고 있을까?),
Sag’es mit blumen (꽃말로 전해주오)” LP (독일 Metronome, 음반번호 : M 349)


싸이, BTS, 블랙핑크 그리고 뉴진스에 이르기까지 K-POP이 세계의 음악시장을 휘젓고 있다. 이제 해외 라디오나 상점에서 한국말로 된 노래가 흘러나와도 그리 놀라지 않게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가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처럼 K-POP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다 보니 누가 K-POP 인기의 효시인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긴다.

엄밀히 말하자면 90년대 한류로부터 K-POP의 인기가 시작되었지만 멀리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제 강점기 일본에 진출했던 판소리 명창들이나 가수들, 195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한 걸그룹 김시스터스, 그리고 같은 해 유럽에 진출한 릴리화(Lilifa, 본명 최정환)가 어쩌면 K-POP을 처음 알린 원조들일지 모른다.

이 중 유럽 1호 가수였던 릴리화는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서 우리나라 1세대 성악가였던 정훈모, 이상춘 선생에게 사사하다가 당시 서독대사였던 헬쯔 박사에게 입양되어 대학 3학년 때 서독으로 유학을 떠난다. 요하네스 브람스가 활동했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의 데트몰트(Detmold) 뮤직 아카데미에 입학하였고, 그 해 하이델베르크 국제유학생 경연대회에서 한국고전무용과 민요를 선보여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160여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다양한 행사에 초대되다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참가하였고, 이국적이면서 맑고 독특한 음색과 빼어난 외모로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역을 맡았으며 TV 영화<고 딘 누(Ngo Dinh Nhu) 부인 (Madame Nhu)>에 출연하여 그녀가 부른 주제가와 함께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1961년 폴리돌(Polydor) 음반사에서 그녀의 본명인 최정환(Choi Jong Whan)으로 데뷔 음반을 발매하였다. 서울음대 출신 1호 가수의 탄생이었다. 62년에는 함부르크 NDR 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겸 작곡가인 카를 하인츠 로게스(Karl-Heinz Loges)와 결혼 후 스페인에도 진출하였다. 메트로놈(Metronome) 레코드 사와 계약하면서 릴리화를 이름으로 사용하며 62년부터 음반을 발매하였다. 64년 6월에는 메이저 음반 회사인 필립스(Philips)에 전속되면서 그녀의 음반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까지 진출하였고, 일본과도 계약을 맺었다. 그녀는 서구적인 팝 음악과 한국의 민요 그리고 클래식을 넘나드는 폭넓은 가창력을 바탕으로 ‘동양의 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릴리화는 독일,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영국의 BBC 방송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할 만큼 인기를 누렸고, 그녀의 뿌리인 한국의 음악을 유럽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WIND BEI NACHT (밤에 속삭이는 바람)> 음반은 릴리화가 조국에서 발매한 유일한 독집 앨범이다. 그동안 릴리화가 발매하였던 곡들을 중심으로 총 12곡을 수록하여 1964년 한국흥행주식회사에서 발매하였다. 앨범은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대부분 오페라나 서양 민요인데 타이틀곡인 “Wind Bei Nacht (밤에 속삭이는 바람)”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강홍식의 “처녀총각”을 독일어로 번안한 곡이다. 이 곡은 B면 마지막 트랙에 원제목인 “처녀총각”을 사용하여 한국어 버전으로도 수록되었는데, 오페라 분위기로 편곡하였으며 독일 함부르크 방송국에서 특별방송시간에 녹음하였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릴리화의 뛰어난 가창력을 엿볼 수 있다. 이 타이틀곡은 “Am Strand Von Kiong-Hi (경희의 해변)”와 함께 싱글 음반으로도 독일에서 발매되었다. (필립스, 음반번호 : 345 721 PF)

<WIND BEI NACHT (밤에 속삭이는 바람)> LP는 희귀성으로 인해 100만원 이상 고가음반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운 좋게도 경매사이트에서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이 앨범에 담긴 “Siehst du den Mond von Tennessee (당신도 테네씨의 달을 보고 있을까?)”와 “Sag’es mit blumen (꽃말로 전해주오)”은 1962년 메트로놈 사에서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은 그녀의 서명이 들어간 음반으로 독일 현지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귀한 릴리화의 서명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아끼는 음반이다.

현재의 K-POP의 성공은 단순히 “운” 때문은 아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대한민국의 가수들이 세계의 시장의 문을 두드려 왔던 결과다. BTS나 블랙핑크, 뉴진스의 화려한 무대 전에 릴리화와 같은 원조 K-POP 가수들이 의연하게 한국의 문화를 지켜왔었다는 것이 잊히지 않길 바란다.



릴리화(본명 최정환)의 데뷔 싱글 앨범 https://www.discogs.com/ko/release/2732910-Jong-Whan-Choi-Sing-Kleine-Butterfly/image/SW1hZ2U6MjY4NjYyN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