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칼럼
아마추어의 명반 사냥 이야기 마흔아홉 번째: 한국 최초의 국악 CD
기고자.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컴팩트 디스크(CD)는 1979년 필립스와 소니가 공동 개발하였고, 1982년 상용회되어 LP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CD는 LP보다 긴 약 74분의 음악을 담을 수 있었는데,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그가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넣을 수 있는 분량으로 정한 것이라는 일화가 전해오기도 한다. 그리고 1986년 11월 12일,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최초의 CD가 출시되었다. 바로 SKC가 필립스와 기술 제휴하여 야심 차게 내놓은 한국 가곡(韓國 歌曲) 제1집 (SKC, 음반번호 : SKCD-C-0001)이다. 한국 가곡 시리즈에 이어 국악도 CD로 발매되기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 앨범이 바로 1987년 4월에 발매된 <국악(정악)(國樂(正樂)) 제1집>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음악과 전통무용을 관장하는 국립예술기관인 국립국악원이 SKC와 함께 외국인을 포함한 대중에게 국악을 소개하기 위해 발매한 'KOREAN TRADITIONAL MUSIC'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앨범이었다. 이 시리즈는 15집까지 발매되기에 이르는데, 시리즈의 처음 제1집과 2집은 정악(正樂)과 속악(俗樂)이라는 우리나라 국악의 두 주류를 다루었다.
이 음반 국악 제1집에는 정악의 대표적인 명곡들이 심혈을 기울여 선곡되어 있는데, 이 곡들은 TV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곤 한다. 대금은 김응서, 소리는 이동규, 김월하 그리고 양금과 단소는 각각 홍선숙과 임진옥 명인이 연주하였다.
첫 번째 곡은 조선 왕조 역대 임금 및 왕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에서 올리는 제사인 종묘제례(宗廟祭禮) 행사 때 사용하는 기악·노래·무용의 총칭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으로 시작한다. 종묘제례악은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네 번째 곡 '수제천(壽齊天)'은 임금의 즉위식이나 행차 등 나라의 경사나 의전 시 품격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음악으로 우리나라 아악 중 으뜸으로 꼽히곤 한다. "달하 노피곰"으로 시작하는 '정읍사'의 반주곡으로 알려져 있고, '정읍' 지명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1970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유네스코 아시아 음악제에서 전통음악 분야 최우수 곡으로도 선정되었으며 "천상의 소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과 같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다섯 번째 곡, '만파정식지곡(萬波停息之曲)'은 궁중 연례악의 하나로서 고려 시대부터 전해 오는 '대취타곡(大吹打曲)'을 관현악(管絃樂)으로 편곡한 쾌활하고 장중한 곡으로, 왕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 개선 때에 연주되었다.
여섯 번째 곡, 대금 독주 '청성곡(淸聲曲)'은 '청성자진한잎', 아명으로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이라고도 불리는데, 가곡의 마지막 곡인 태평가에서 파생된 기악곡으로 대금이나 단소로 연주하는 독주곡이다. '청성(淸聲)'이라는 말은 원래 높은 음역을 뜻하는 말로, 이 곡이 전체적으로 고음역에서 연주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대금 주자의 기량을 파악하기에 좋은 곡이기도 하다. 대금으로 연주하는 정악의 최고봉이자 국악의 명곡으로 꼽힌다. 이 앨범의 표지 사진에 해당하는 곡이기도 하다.
여덟 번째 곡으로는 맑고 고우면서도 기품 있는 노래로 지금도 정가의 정석처럼 여겨지는 김월하 선생의 명연주인 '평시조(平時調) 청산리 벽계수'를 담고 있다. 선생은 두 살 때 콜레라 창궐로 가족의 대부분을 잃었고, 열여섯 살에 혼례를 올렸던 자상한 남편은 6·25 전쟁 당시 실종되고, 부산에서 삯바느질로 피란살이를 하던 중에 위병으로 고생하다 간신히 목숨을 구하였는데,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길에 우연히 듣게 된 시조 한 곡조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근검절약하여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흔쾌히 내놓아 국악 발전과 보급에 큰 힘을 주어 아직도 국악인들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명인은 "월하 이전 월하 없고 월하 이후 월하 있을까?"라는 말처럼 이 곡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음반의 마지막은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의 세 소품곡이 모인 일종의 작은 모음곡인 '천년만세(千年萬歲)'로 장대한 막을 내린다. 이 곡은 인천국제공항철도 서울역 종착 곡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국악(정악)(國樂(正樂)) 제1집>은 여러 차례 재발매되어 시중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현재 이 음반은 예전미디어 기획으로 출반되고 있는데, 초판은 SKC에서 발매하였고 매우 구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CD 케이스 뒷면에 권장 소비자가격이 적혀있는 것으로 초판을 구분할 수 있다. 필자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미개봉 음반을 우연히 운좋게 구할 수 있었는데, 당시 CD에 적혀있는 권장 소비자가격 11,900원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잠비나이, 이날치밴드, 서도밴드, 이희문, 박다울 등을 통해 국악이 새롭게 재창조되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을 본다. 시대에 맞게 또는 시대를 앞서가며 발전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집스럽게 전통을 계승하는 연주자들과 음악을 알아보는 귀명창들 그리고 이 앨범과 같이 대중에게 끊임없이 국악을 소개하는 음반들을 통해 우리 선조의 '격'을 갖춘 아름다운 음악이 그 맥의 맥을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