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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모픽을 넘어 뉴로에뮬레이션을 향해

기고자.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김경민 교수

두뇌를 흉내내는 수준을 넘어 있는 그대로 구현하는 뉴로에뮬레이션 기술

김경민 교수

점점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컴퓨팅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컴퓨팅 아키텍처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특히 패턴 인식, 의사 결정, 감각 처리와 같은 작업에서는 인간의 뇌와 같은 생물학적 시스템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반면 전통적인 폰-노이만 구조의 컴퓨팅 기술은 한계를 보입니다. 이러한 생물학적 시스템을 모사하고 현재의 컴퓨팅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뉴로모픽 기술입니다

뉴로모픽 시스템은 인공 뉴런과 인공 시냅스를 통해 뇌의 구조와 기능을 “흉내” 내어 정보를 처리합니다. 이 방식은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보다 더 효율적이고 확장 가능하며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자율 주행 차량부터 의료 진단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AI) 중심의 애플리케이션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면서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능력이 필수적인데, 뉴로모픽 컴퓨팅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며, 생물학적 시스템처럼 학습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뉴로모픽 기술이 진정한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더 복잡하고 고차원의 뉴로모픽 특성을 모사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이를 더욱 실제에 가깝게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뉴로에뮬레이션(Neuroemulation, 간단히 ‘뉴로에뮬’)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뉴로모픽 시스템은 주로 단순한 시냅스와 뉴런을 조합하여 저차원적인 신경망을 모델링하는데, 이는 분명 효과적으로 잘 동작하긴 하지만 뇌의 복잡한 인지 기능을 완전히 재현하지는 못합니다. 뉴로모픽 기술이 발전하려면 뇌 회로의 동적이고 비선형적인 특성을 모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통해 실시간 경험을 학습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동시에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능력을 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 다이나믹스로 구현하는 고차원 뉴로에뮬레이션 기술

뉴로모픽 기술이 고차원적인 특성을 모사하는 뉴로에뮬 기술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신경망 구조를 넘어 더욱 복잡한 회로와 뉴런의 상호작용을 구현해야 하는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멤리스터가 가진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멤리스터(memristor)는 메모리(memory)와 저항기(resistor)의 합성어로, 다양한 원리에 의해 전류가 흐른 양에 따라 저항 값을 기억하는 특성을 가진 소자입니다. 이는 뇌의 시냅스가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방식과 유사한데, 바로 이 점이 멤리스터가 뉴로모픽 기술에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멤리스터의 중요성은 멤리스터가 저항이 변화할 때에 다양한 원리에 의해 시간에 따른 동적 변화와 가소성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어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뉴런 간의 상호작용을 모사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한 원리에 대한 예를 들면, 가장 전통적인 멤리스터의 동작 방식은 산소 이온의 이동에 의한 것인데, 이때에는 전계에 따른 이온의 드리프트, 이온의 농도 차이에 따른 확산, 멤리스터 내에서 전류에 흐름에 의한 국부적인 열의 발생과, 이 열에 의한 온도 구배에 따른 이온의 열확산 등이 관여하는 매우 복잡한 프로세스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물리적 법칙을 바탕으로 멤리스터는 다중 상태와 다양한 가소성, 저항 변화의 비선형성을 제공하여 뉴런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보다 더 복잡한 신경망의 특성을 구현하는 더욱 고차원의 물리적 복잡성을 갖는 멤리스터에 대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특히 열을 활용하는 기술이 주목할 만합니다. 열은 전자 소자에서 전류가 흐르는 경우 발생하며 이를 줄 열(Joule heat)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이 열은 에너지 소모를 향상시키고, 전자 소자의 동작을 방해하므로 쓸모없게 여겨집니다. 멤리스터에서도 열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열을 오히려 컴퓨팅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이며, 멤리스터의 복잡한 전기적 특성에 열 특성까지 보태어 더욱 복잡한 뉴런의 시간적 변화, 뉴런 간의 상호작용 등을 구현하는 뉴로모픽 컴퓨팅을 구현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열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물성을 직접적으로 활용하는데, 이는 열 노이즈 특성, 열의 저장 특성, 열의 전달 특성 등을 포함합니다. 열 노이즈는 우리 주변에 상시 존재하는 열이 갖고 있는 확률론적인 특성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열 노이즈를 수집해서 활용하는 것은 추가적인 에너지의 소모가 없이 확률론적인 동작을 구현하는 방법을 제공하며, 이러한 확률론적 동작을 활용하는 진성난수발생기, PUF, 확률컴퓨팅 소자 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그림1)

그림1 열 노이즈를 이용하는 멤리스터 컴퓨팅 소자. (a) 멤리스터의 진동 특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작위성을 갖게 된다. (b) 이러한 특성을 활용하여 일정 시간 동안의 진동 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통해 비트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진성난수발생기를 만들 수 있다.[Kim et al. Nature Communications, 12, 2906 (2021)] (c) 또한 멤리스터의 진동 확률은 입력 전압에 따라 바뀌며 이는 확률컴퓨터에 활용되는 피비트(p-bit)로 활용될 수 있다. (d) 피비트의 입력 전압에 따른 진동 거동을 보여준다.

또한, 열의 저장 및 방출 특성은 열을 시간적인 정보로 활용할 방법을 제공하며, 이를 활용하면 시간적 정보를 활용하는 컴퓨팅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생체의 신경망입니다. 신경망에서는 다양한 생체 신호를 활용하는데 이러한 생체 신호는 18가지 이상의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생체 신호가 얻어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신경망이 다양한 뉴로트랜스미터의 상호작용에 의한 고차원 동역학-즉 다양한 물리, 화학식의 복합적 거동-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인데, 멤리스터는 전기적 거동에 열 거동을 부가하여 이러한 복잡한 특성을 구현합니다.(그림2)

그림2 멤리스터의 열-전기 복합 거동으로 구현되는 3차 뉴런 거동들. 전기적 거동만을 활용하였을 때는 매우 복잡한 회로가 필요했으나, 열 거동을 통해 복잡한 회로가 없이도 복잡한 거동을 구현할 수 있다. (Kim et al. Nature Materials, 2024)

마지막으로, 뉴런들은 이웃한 뉴런이 자극을 받았을 때 그 뉴런의 활성도가 주변 뉴런에도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공간적인 상호작용을 하는데, 열의 공간적 전달 특성을 활용하면 이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인공신경망에서는 상당히 복잡하였는데, 열은 이를 매우 간단하게 구현하도록 합니다.(그림3)

그림3 멤리스터 어레이에서 열의 전달에 의한 뉴런 소자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그림. Period 1과 Period 3에서의 전기적 조건은 같은데, Period 3에서는 뉴런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는 Period 2에서 이웃한 뉴런이 활성화되고, 그 뉴런들로부터 열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뉴런들이 열을 통해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멤리스터 간에 열을 통해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큐비트 간의 얽힘을 활용하는 양자컴퓨팅과도 유사합니다. 이는 뉴로모픽 컴퓨팅이 곧 양자컴퓨팅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의미하며, 이와 관련된 연구는 앞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입니다.

맺음말

멤리스터 기술에서 열적 특성을 활용하여 고차원의 뉴로모픽 특성을 구현하는 것은 뉴로모픽 기술이 신경모듈레이션 기술로 진화하는 좋은 예시입니다. 멤리스터에서는 여기서 다룬 열뿐만 아니라, 열과 같은 포논을 기반으로 하는 파동, 자기적 성질, 광학 성질 등 다양한 특성이 동작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물리적 현상들을 활용할 새로운 방법이 발견된다면, 이는 우리의 두뇌나 신경망을 더 정확하게 모사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진정한 뉴로모픽 기술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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