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칼럼
강남 한복판에 있는 왕들의 안식처
전효택(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수필가)본문

서울 강남에 지하철 선릉역과 선정릉역이 있다. 2호선 선릉역은 1980년 10월에 개통되었으니 45년이나 되었다. 선정릉역은 9호선과 수인·분당선의 환승역이다. 9호선이 2015년 3월에, 수인·분당선이 2012년 10월에 개통되었으니 이미 10년이 넘었다. 이곳은 강남 도심 한복판의 주택과 빌딩 밀집 지역에 있는 왕들의 안식처이다. 공원처럼 잘 조성된 소나무 숲과 야산이 있어 산책로로 인기가 높다.
선정릉에는 조선 9대 임금 성종(1457-1494)과 정현황후의 무덤인 선릉과 이들의 아들인 11대 임금 중종(1488-1544)이 홀로 묻힌 정릉이 있다. 선릉과 정릉을 합쳐 선정릉이라 한다. 성종이 승하하면서 1495년에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에 안장하였고, 1530년 정현왕후가 승하하자 같은 자리에 안장한 곳이 지금의 선릉이다. 중종이 1544년 승하하자 선릉 주변에 모셔 정릉이 되었다.
지난 1963년 이 일대가 서울 성동구로, 1975년에는 강남구로 분리되며 개발되었다. 이 선정릉 일대는 동서남북으로 거의 한 블록이며 문화유산 역할과 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선정릉을 지키는 사찰이 봉은사이다.


이 두 역을 수없이 지났으면서도 금년 늦은 봄에야 처음으로 대학 동기들과 이곳을 찾았다. 친구들 대부분이 선정릉 방문이 처음이라 했다. 서울 강남에 조선조의 왕릉이 존재함에도 부근 전철역을 수시로 지나면서 지난 45년 동안 가보지 못했다. 고작 2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인데 말이다.
선정릉 입구로 들어서면 왼쪽(서쪽) 오솔길 따라 먼저 재실에 들른다. 재실은 제례를 지내기 전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다음에는 선릉과 정릉 관리소인 역사 문화관에서 조선 왕릉의 공간 구성과 분포도, 세계유산 선릉과 정릉의 안내, 선릉과 정현왕후의 선릉 설명, 중종의 정릉 설명 등 자세한 안내와 정보를 얻는다. 이곳을 지나면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박석이 깔린 길이 보인다. 왼쪽에 조금 높은 길이 향로(香路)이고, 제향 시에 재실에서 출발한 향과 축문을 들고 다니는 길이다. 오른쪽에 조금 낮은 길이 제향을 드리기 위해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이다. 정자각에서 왼쪽(서쪽)으로 보이는 왕릉이 성종 무덤이고, 오른쪽(동쪽)이 정현왕후 무덤이다.








성종은 예종이 1469년 승하하자 12세 나이로 왕위에 올라 38세에 승하했다. 정현왕후 윤씨는 1473년(성종 4년) 후궁이 되었고, 1479년 당시 왕비였던 연산군의 생모 윤 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반정 때 왕대비의 권한으로 연산군을 폐위하고 아들 중종의 즉위를 허락했으며(1506, 중종 18세) 1530년 69세에 승하했다.
조선 전기에 태평성대를 누린 성군으로 묘사되는 성종이 한참 나이인 38세 이른 나이에 승하했음을 처음 알았다. 성종은 할머니 정희왕후(제7대 세조의 왕비)의 추대로 즉위했다. 어머니가 세조의 맏며느리인 유명한 인수대비이다. 정희왕후는 성종이 즉위 후 20세가 될 때까지 7년간 섭정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계비 윤씨를 폐출하고 사약을 내린 사건이 다음 왕위를 계승한 연산군의 갑자사화(1504)의 원인이 되었다.

중종의 무덤인 정릉은 선릉 동쪽에 있으며 산책할 정도의 거리에 있다. 정릉은 단릉으로서 왕비 무덤이 없다. 중종과 함께 묻히기를 바란 문정왕후는 이곳에 묻히지 못하고 태릉에 홀로 묻혔는데, 이곳이 매년 여름이면 침수되는 저지대였다.
'정릉은 한줄기 소나기만 지나가도 정자각 앞이 질퍽거리는 물 논이나 다름없다. 장마로 물이 불어났을 때는 홍살문 근처에 배까지 띄워 보기에도 민망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있다(이규원, 2017, 「조선왕조실록」).
지금도 장마철이면 이 지역은 물난리를 겪고 있다.
야사에서는 중종이 문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거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중종은 3명의 왕비와 7명의 후궁이 있었음에도 죽어서도 외로운 신세가 되었다고 전한다. 중종은 19세에 즉위하여 38년을 재위했다.
중종의 무덤인 정릉(靖陵)은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貞陵)과 다르다. 이 능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가 안장된 곳이다.
나는 선정릉을 돌아보며 성종이나 중종보다 연산군을 더 떠올렸다. 연산군은 성종의 장자로서 1494년(18세)부터 1506년(30세)까지 13년간 통치했다. 즉위 전부터 똑똑한 왕자라고 평가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부터 2년여간 그 포악함이 극에 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 씨의 왕후 폐위와 사약을 받은 억울함을 보복으로 갚은 연산군의 패악질은 성군으로서는 절대 행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간주되었다. 왕이 제정신이 아니고 미쳐 날뛸 때 주변의 신하들이나 왕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이런 때마다 지도자 주변의 인사들이 의심스럽다. 정말로 충성을 다하는 신하라면 말리고 이성을 찾게 하여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동조하고 부채질하며 상황을 더 극단적으로 이끌면 마지막은 모두 파멸임을 알 터인데 말이다.
강남 한복판에 공원처럼 잘 조성된 왕들의 안식처를 둘러보는 것도 더위를 이기는 한 방법인 것 같아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