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칼럼
플리트비체와 라스토케를 찾아
전효택(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수필가)본문

크로아티아는 발칸반도에 있는 동유럽 국가다. 지중해와 연결된 1,780여 ㎞의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고대·중세 유적과 자연 친화적인 관광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크로아티아를 1991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책으로는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권삼윤, 1999)로 이 나라를 접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가야지 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 최남단의 항구도시이다. 특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2004년 여름 열린 국제 학술 대회에서 열심히 크로아티아 관광을 홍보하는 모습에 더욱 가고 싶었는데 결국 2017년 여름 첫 방문 기회가 왔다.
크로아티아의 유명 관광지는 대부분 북서-남동 방향의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이스트리아반도-자다르-시베니크-스플리트-두브로브니크에 걸쳐 있다. 수도 자그레브 남쪽에 있는 플리트비체와 라스토케는 내륙에 위치한다.
유럽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세 곳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등 모두 지중해 연안이다. 지난 1990년대 초 동유럽 국가들이 민주화로 개방되자 유명 관광지가 더 알려진 듯하다. 예를 들면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은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한 번은 들러야 한다는 평판이 있는 곳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2013년 12월-2014년 1월 '꽃보다 누나'라는 TV 방영 여행 프로그램으로 크로아티아가 더욱 알려졌다.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크로아티아가 찾고 싶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지가 십여 년밖에 안 된다.
자연 친화적인 대표적 관광지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과 라스토케 마을을 소개한다.
플리트비체(Plitvice)는 194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979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 해마다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는 크로아티아 최고의 관광지이다. 울창한 자연림으로 둘러싸인 16개의 신비한 호수,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100여 개의 폭포 줄기, 호수 위와 주변의 나무다리와 데크 산책길, 마치 요정이 사는 동네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이 국립공원 면적은 295㎢이며 호수는 2㎢이다. 각도에 따라 다른 색깔로 빛나는 물빛은 투명한 파란색에서 청록색까지 물의 깊이에 따라 변화한다. 지질이 석회암과 돌로마이트(dolomite) 같은 탄산염 암석이어서 물속에 용해된 석회 침전물(탄산칼슘)이 호수 바닥과 둑에 쌓여 맑고 투명한 청록색과 에메랄드 물빛을 보인다. 공원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미가 느껴지는 곳 중 하나라고 평가된다. 주변에는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높은 산과 숲들, 골짜기엔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진 16개의 신비한 호수가 폭포로 연결되어 있다.
이 국립공원은 수도 자그레브에서 남쪽으로 140㎞ 떨어져 있으며, 차량으로 두 시간 정도 거리이다. 국립공원 내의 코냐크 호수는 유일한 구형의 물결이 없는 거울 같은 호수여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여러 산책로와 조망대가 구비되어 있어 호수 주변으로 또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와 오솔길, 나무 데크길을 따라 산책할 수 있다. 플리트비체는 40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악마의 정원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숨겨진 판도라 상자라고 불릴 정도로 자연의 신비로운 정취를 보이는 유럽의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나는 다양한 빛깔의 호수 표면을 보며 호수 주변 산책길과 나무 데크길을 따라 걸으며 이렇게 자연 환경이 아름다운 나라가 민족과 종교 갈등으로 치열한 내전을 겪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올 때까지 거의 이십여 년이 걸렸지만 잘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플리트비체에서 북쪽으로 차로 삼십여 분 이동하면 동화 속 세상의 요정이 사는 듯한 한적하고 작은 물의 마을 라스토케(Rastoke)를 만난다. 여러 작은 시내 같은 강과 폭포가 마을을 가로지른다. 라스토케는 '강이 갈라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코로나강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있다. 이 물의 마을은 약 300년 전에 폭포를 이용해 물레방아를 만든 데서 마을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20여 채의 집 바닥 아래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있고 일부는 아직 보리를 빻기 위해 돌아가고 있다.
작은 폭포들이 만들어 내는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작은 카페 야외에 앉아 차를 마시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낭만적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파란 하늘과 호수, 우거진 숲과 편리한 오솔길과 물소리, 잘 정리된 동화 속 마을은 내게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흐르는 깨끗한 물에 서식한다는 송어 요리가 명물이라 하여 수년 전 태백산 지역 깊은 계곡 골짜기의 송어 양식장에서 송어회를 먹던 기억도 났다.
둘러보기에 한 시간이면 충분한 이런 작은 마을에서 적어도 일주일 또는 한 달간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산책하는 일상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 앞으로 언제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호수와 자연 폭포가 있는 이 동화 같은 물레방아 마을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여행을 꿈꾸고 있다. 고대와 중세 유적지와 푸른 하늘과 바다와 맞닿은 섬들이 여전히 아른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