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칼럼
화진포 주변의 황당한 옛 별장들
전효택(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수필가)본문

금년 늦여름 속초를 다녀오는 길에 강원도 북쪽의 고성을 찾았다. 다행히 운전 잘하는 사위 덕택에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고성 화진포 해수욕장은 유명 관광지라는 소문을 익히 들어서 그리 낯설지 않았다. 여름휴가철이 끝난 때이고 내가 찾은 시간이 늦은 오후여서 해변은 한가했다. 해변의 포말이 푸른 바다를 실감하게 했다.
해안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일성-이기붕 별장 안내 화살표를 보며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근에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김일성 별장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으나 이기붕 별장은 의외였다. 광복 후에 김일성 별장이, 한국전쟁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별장이 있었다고 한다.

화진포는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에 있으며 38도선 이북에 있다. 동해 연안에 형성된 석호로서 최대 규모 면적이 2.39 평방km, 호수 둘레 16km이다. 석호는 바닷가에 사주가 발달하며 만이 바다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호수이다. 이 석호 지형에서 바다와 호수 사이의 모래사장이 해수욕장이다.
화진포 해맞이 산소길은 화진포 입구 7번 국도변에서 거진 등대 해맞이 공원까지 약 10km 연장되어 있다. 이 길 주변으로 화진포 해변과 호수,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 생태박물관과 해양박물관, 거진 항구와 해변으로 연결된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 기념관은 1954년에 27평 규모로 신축하여 1960년까지 별장으로 사용했다. 그 이후 이 건물이 방치되어 폐허로 철거되었던 것을 새로 지어 육군 관사로 사용해 왔다. 육군에서는 1999년 현재 위치에 별장 건물을 복원하여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했다.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이 건물을 보수하고, 별장의 일부 유품과 이화장에서 역사적인 자료를 추가로 기증받아 2007년 8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김일성 별장은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킬 때, 당시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가 독일 망명 건축가 베버에게 의뢰하여 1938년 이곳에 건립하였다. 한국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축 당시 회색 돌로 지어진 건물이 해안 절벽 위 송림 속에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어 유럽의 성을 재현한 듯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 일가가 이곳을 휴양지로 이용했다 해서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고 있다.
이기붕 별장은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이다.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었다. 휴전 이후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하다 폐쇄되었다. 1999년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관람객에게 전시하고 있다.
이기붕은 1896년생으로 일제강점기에 미국에 유학하였다. 미국에서 이승만의 비서로 있었고, 귀국하자 비서실장이 되었다. 자유당 정권하에서 이인자로 독주하며 서울시장, 국방장관, 대한체육회장, 국회의장 등을 지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서 부통령 당선 공작을 꾸미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하며 자유당이 몰락하자 가족과 함께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건립이 1948년이고 곧이어 1950-53년 한국전쟁이 있었으니 그들이 이곳을 별장으로 이용했다 해도 1954년-1960년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기차나 차량 접근도 힘들고 입지 조건이 좋지 않은 이곳에 어떻게 별장을 마련할 생각을 했을까 의외였다. 더욱이 이곳은 한국전쟁 휴전을 앞두고 남북이 서로 영토를 확보하려고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던 전쟁터가 아니었던가.
1950년대 후반기에 이곳에 별장이라니 사실 황당했다. 별장이라고 정해 놓고 과연 그들이 일 년에 한 번이나 올 수 있었을까. 더욱이 이곳 고성 지역은 38도 이북인 휴전선 부근 산악지이다. 특히 이기붕 별장 부근이 소나무 숲으로 경치가 좋고 가까이에 호수와 해변이 있어 별장지로는 좋으나, 그 효용 가치가 1950년대 당시로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는 1970년 전후에 대학과 대학원 학생으로 금속 광산과 석탄 광산이 밀집된 강원도 여러 지역을 답사차 자주 방문하였다. 1980년대에는 교수로서 전공 분야 학생 지도와 연구 활동으로 빈번하게 조사하던 지역이어서 강원도에 익숙하다. 당시만 해도 험하고 경사진 비포장 국도와 여름 홍수 계절에는 산사태로 길이 막히곤 하여 이동이 불편한 곳이었다. 이 시기엔 터널도 드물어 산허리에 굴착된 도로와 그 옆은 위험한 절벽들, 구불구불 넘어가는 높은 산길 등 도로 조건이 매우 불량했다.
여기에 별장이 들어섰던 때는 정치적·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가 아닌가. 특히 정치인들은 이런 시기에 혼란스러운 나라를 구하는 데에 전력을 다할 때가 아니던가. 서울에서 이곳을 찾는 일이 일 년에 한 번이나 되었을까. 1950년대 후반에 서울에서 접근도 어려운 이런 장소에 별장을 짓거나 선정하여 안락을 취하려 한 그들의 황당한 사고방식에 할 말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