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칼럼

명예교수 칼럼

서울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1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명예교수 서용석

본문

서용석 명예교수

이번 여름도 참 기억에 남게 무더운 여름이었다. 은퇴 이후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하루를 보내는 방식은 더 단순해졌지만 그렇다고 지적 활동이 아주 멈춘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서울대학교 관정도서관의 교수 라운지는 현역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은퇴하신 명예교수님들도 교수 연구실로 이용할 수 있게 배려해준다. 그래서 여전히 연구와 저술 활동을 지속하는 명예교수님들에게는 이 더운 여름을 극복할 좋은 피난처가 되며 동시에 쾌적한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유용한 공간이 되고 있다.

오늘도 관정도서관에서 바라다보는 관악산은 늘푸르다. 이런 맑은 날 저 산 위로 뭉게구름 떠 있는 풍경을 보면 서울대는 참 좋은 환경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안에 있는 서울대 가족들은 이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지 못하고 늘 일상으로 지내기 쉽지만, 서울대 가족은 우리가 머무르는 이 공간과 시간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필자도 은퇴한 지 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연구하는 일이 있어 학교에 (주로 관정도서관에) 나오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와 학문에 대한 애정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이제 나도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되 법도를 넘지 않는다)"라는 칠십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직 연구할 일이 있고, 내 스스로 알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여전히 학교에 나와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은퇴 후에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즐길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연구라고 믿기에 (이게 내게 세상에서 해야 할 일로 부여된 미션이라고 믿기 때문에) 아직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서론을 얘기하는 이유는, 공대 웹진에서 자유롭게 명예교수로서 주변 일들이나 활동에 대한 단상 등을 써달라고 했을 때 무엇을 쓸까 하고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얘기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은퇴했지만 아직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연구자로서 또 우리 학교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누구 못지않게 서울대가 더 발전하여 세계 정상의 반열에 설 수 있는 대학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서울대학교의 미래와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여기에 피력해본다.

서울대학교는 지난 수십 년간 정말 괄목할 만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돌아보면 지금의 서울대는 30년 전에 비하여 우리 한국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만큼이나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외국의 어떤 단체 평가에 따르면 세계 30위권 대학이라고 한다. 특히나 공학 분야는 30년 전에는 연구다운 연구를 위한 시설이나 기타 여건 면에서 미흡한 것이 많았기에 제대로 평가받는 연구 결과 자체가 많이 나오지 못했고 제 능력만큼의 평가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20위권 이내 분야도 있고 매년 나오는 연구 결과의 양이나 질을 보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서울공대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유수 대학들의 발전 또한 무서운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나 중국 대학들의 발전은 무서울 정도이다. 예전에 우리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처럼 중국에서는 그런 기적적인 발전이 그 넓은 중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중국의 대학들도 국가적 투자와 지원 속에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이미 세계적인 연구 성과들도 우리보다 더 다수를 배출하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 서울공대가 (다른 분야는 사실 내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더 지속적으로 발전 경쟁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이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교수이고 둘째는 학생 그리고 셋째는 학교의 행정 등을 포함하는 외적인 영향이다. 그중에서 이번 글에서는 우선 교수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대학의 구성원은 교수, 학생 그리고 지원 (및 외부) 환경이다. 이 중에서 중추를 이루는 것은 교수들이다. 교수는 단순히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직업인이 아니라, 학교의 미래를 짊어지고 학문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도자이다. 따라서 학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그리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교수 요원들을 영입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사실이다. 서울공과대학은 그동안 많은 우수한 교수를 충원하여 현재의 공대로 발전하여 왔다. 지금도 매 학기 새로이 우수한 젊은 교수 요원들을 많이 충원하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도 새 교수 채용에 대한 인적 관리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대 교수는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대부분 한번 뽑으면 정년까지 간다. 이 말은 좋은 교수 요원을 뽑으면 오랫동안 학교 교육과 연구를 하면서 좋은 학생들을 배출하고 우수한 연구 결과를 내게 되지만 반대로 잘못 뽑으면 몇 십 년 동안 제대로 된 능력 발휘도 못 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교수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테뉴어 제도 비슷한 것이 있지만 외국의 경우만큼 엄격한 잣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초에 신임 교원을 잘 선별해서 뽑아야 한다.

요원을 선발하는 데 (특히나 공대 교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지금까지 업적들 못지않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과학자적인 미래 비전을 중요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울공대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은 뽑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울대 교수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목표로 삼으면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임용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발전하려는 동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공대는 우리나라에서 최정상의 연구 교육 기관이기 때문에 누구나 여기의 교수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수많은 능력 있는 인재들이 지원하고 또 그 지원자들은 좋은 업적들을 대부분 갖고 있다. 서울대에 온 젊은 교수 중에는 자기 연구 분야에서 정점에 올랐다고 생각되는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공대 교수로 적합한 사람을 뽑는 데 그 사람의 업적을 보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서 업적이 좋은 사람이 뽑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그 이후 (만약 공대 교수로 오게 되면) 미래에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재임용(테뉴어) 제도가 있어 신임 조교수를 시작한 뒤 6-7년 지나면 재심사를 하여 그때까지의 연구 성과가 부족하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서울대는 아직 외국 최정상의 대학들만큼 엄격한 테뉴어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 듯싶다. 일부 교수는 서울대에 임용되자마자 그곳을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안주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 선출할 때부터 재고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학자로서 또 연구자로서 더 이상 추구하는 것이 없으면 더 얻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가 된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큰 영광이지만 그것이 곧 학문적 성취의 완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서울공대 교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현재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향후 20년, 30년 뒤를 내다보며 스스로 발전하려는 끊임없는 욕구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것이 우리 공대를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미래에 더욱더 발전하는 학교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공대 교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서 자기 연구 분야에서 자신의 세계를 확립하고 그 분야를 이끌어 나가 세계의 최상급의 연구자가 됨과 동시에 결과로 얻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한다. 또 학생들이 장차 우리나라를 이끌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울공대 교수의 책무이자 사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조직에나 예외는 있어서, 어떤 교수들은 교수로 임명된 순간부터 학문에 대한 생각과 열정이 점차 줄어들어서, 시간이 지나면 연구보다는 일상적인 일에만 몰두하여 새로운 성과를 내기 어렵게 되는 경우를 여럿 보아왔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대체로 외부 활동이나 행정에 더 관심을 두거나, 과거의 성과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창의적인 연구자로서 역할은 사라지고, 단순한 반복 작업을 계속하는 숙련공 수준에 머물게 된다. 이러면 안 된다. 물론 학교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행정가도 필요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연구를 소홀히 한다면, 본인에게는 편할지 몰라도, 서울대학교의 장기적인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수 본연의 책무는 어디까지나 학문적 탐구와 교육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연구의 본질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교수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노벨의학상을 받은 센트-조지(Albert Szent-Györgyi)는 연구(Research)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구는 모든 사람이 해 온 것을 다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이다(Research is doing what others did, but trying to see what others didn't)" 라고. 즉, 'Research'는 'Re(다시)'와 'Search(찾는 것)'를 결합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서울공대 교수 중에서도 이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새로운 도전 없이 단순 연구만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구에는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열정이 필요한 법인데 이들은 그 반대로 뜨거운 머리와 차가운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러면 결과는 결코 좋을 리 없다. 이런 사람들은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확실한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확고한) 비전을 갖고 있는 신임 교수 요원을 뽑는 것이 현직 교수들의 중요한 소임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서울공대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최상의 인적 자원을 선별할 수 있을까? 내가 현역 시절에 신임 교수를 뽑을 때 내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은 "저 사람을 뽑았을 때 10년 뒤에 나보다 더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 판단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그 후보자의 현재 업적만 보지 말고 그 후보자의 장래 발전성과 비전에 더 무게를 두면 가능한 일이다. 나는 신임 교수 요원 후보자가 공개 발표 시에 발표만 잘하는 것보다는, 그 이면에 자기의 능력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장래 자기 분야에 대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를 내 나름대로 판단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나보다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하였고 이런 기준으로 매번 판단한 결과, 내가 있을 때 취임한 우리 재료공학부 후배 교수들은 내 판단 기준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물론 이렇게 본다면 이미 세계 정상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하란 말인가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미 이런 판단에 대해서는 일식견들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서 이런 기준을 적용 안 해도 잘 뽑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조교수들의 경우에는 아직 사람을 보는 눈이 확립이 안 된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경우에 적용하면 좋은 판단 기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임 교수 요원 채용 시의 또 다른 중요한 사항은, 전공 선택에 유연성을 가지고 그 사람을 보라는 것이다. 꼭 그 세부 전공에만 맞는 사람보다는 그 세부 전공을 포함하는 더 폭넓은 분야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발전성도 있고 업적도 많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또 다른 유용한 선발 팁은 일반 채용 이외에 특채 선발을 잘 활용하라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 어떤 사람이 현재 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타 대학이나 타 기관에 있는 사람이더라도 초빙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애기지만 이때에도 그 사람에 대한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외양으로만 연구를 잘하는 사람처럼 포장된 것인지 아니면 내실이 탄탄히 제대로 갖추어진 사람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더불어 현재 서울대학교는 "교수 신규 채용 시 특정 대학 출신자가 전체의 3분의 2(≈66.7%)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1999년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따르고 있는데,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학교 교수 뽑는 데 저런 제한을 둔다는 것은 학교 발전에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 발전을 생각해보면 학부든 대학원이든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역량과 비전을 보아야 하는데, 저 규정은 그런 데 대한 깊은 소견이 없는 획일적인 행정의 산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교를 발전시키는 데 그 사람의 능력이 우선되어야지 도대체 어느 학부 출신인지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예전에는 연구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던 시대였고, 그러다 보니까 교수 요원이 능력보다는 알음알음으로 선출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같은 학부 출신이 동대학원에서 석박사를 거쳐서 교수 자리를 승계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물론 저 규정의 근본 취지는 학문의 영속성보다는 다원화 내지는 새로운 사고의 영입이라는 측면의 고려에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냥 같은 집단의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대학을 점유한다는 획일적인 단순한 발상에서 나온듯이 보인다. 구태의연한 저런 규정이 만들어진 지도 이제 26년이 지난 만큼, 잘못된 규정은 수정되어야 하는데 언제 고쳐질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보다는 테크니컬하게 저 룰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학문과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갖추어서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출신 학부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외부 지원자 중에는 서울대 교수 자체가 목표인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들은 서울대 교수로 임명되는 순간 더 이상의 발전 동기를 잃을 수 있다. 물론 늦게 깨치는 사람들도 있고, 더구나 학문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대 교수로 임명된 후에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경우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첨단 과학을 이끌어 나가야하는 공대 교수들은 자기가 이룬 업적 외에 자기 일에 대한 비전과 끊임없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은 출신 성분과 관계없이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질의 문제이다. 저명한 학자로서 일가를 이루어서 우리가 초빙 교수로 모시고자 할 때에도 이는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초빙 교수는 성취도가 있고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을 뽑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현재 업적만 보지 말고, 마찬가지로 미래를 보아야 한다. 명성보다는 그런 사람이 와서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창출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로 오고 난 후에 자기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지속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서울대학교의 발전에 더 이상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긴 애기를 했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학교의 중심축은 교수이고 서울공대가 세계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임 교수들을 잘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공대 교수는 넓게 보아서 공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을 이끌어 가는 이중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더욱이 어려운 자리이다. 한때 반짝하는 사람들보다는, 긴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향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을 제대로 뽑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교수를 뽑을 수 있을까 하는 데 대한 내 개인적인 요령을 여기에 밝혀보았고, 나름의 잣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서울공대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세계 정상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한 세대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내가 있을 때보다는 내 후대가,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더 영속적으로 발전하여야 서울대의 미래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현직에 있는 교수들이 개인적인 소신보다는 전체적인 틀에서 긴 안목을 가지고 신중히 그리고 사려 깊게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