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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에 선 CES 2025, 과도기 속에서 혁신을 모색하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학연구원 김장길 교수
김장길 교수

CES 2025,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한 자리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1967년 시작된 이래, 매년 기술과 혁신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세계 최대의 전자 및 기술 전시회로 자리 잡았다. 라스베이거스를 중심으로 열리는 이 행사는 전 세계 혁신 기술 기업들이 최신 제품과 기술을 선보이며, 미래 기술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무대다.

매년 CES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CES는 단순히 프로토타입이나 아이디어 제품을 선보이는 장소를 넘어,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 트렌드를 제시하고, 기업들이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투자자들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종합적인 생태계의 역할을 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전기차, 스마트홈 등 혁신적인 기술이 CES에서 처음 소개된 뒤 세계로 확산된 사례가 많다.

2025년 CES는 'Dive In'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으며,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4,800여 기업이 참여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는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관람객들은 미래를 미리 엿보는 듯한 경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대형 부스들은 물론, 유레카 파크라 불리는 스타트업 전시관까지 빈틈없이 채워진 전시장은 기술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관을 연출했다. 특히 이번 CES에서는 멀티모달 AI와 XR의 융합이 두드러졌으며, 메타버스와 XR 기술도 AI 바람을 타고 부활 조짐을 보였다. 한동안 생성형 AI의 급부상으로 메타버스 열풍이 식었다는 평이 있었으나, 최근 AI 기술이 XR 콘텐츠를 더욱 정교하고 비용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데 기여하면서 산업과 일상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 일본 SONY는 현실 공간을 3D 입체 영상으로 스캔·재현하는 공간 콘텐츠 솔루션 'XYN'을 발표하고, 미국 NFL과 협력한 VR 스포츠 중계 비전을 제시했다. 할리우드에서는 '2025~2030년 생성형 AI의 타임라인' 세션을 열어 향후 영화 제작에 AI와 XR을 접목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하였으며, 엔비디아의 CEO인 젠슨 황은 키노트 무대에서 14대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등장하여 "머지않아 로봇 분야에도 ChatGPT 순간이 올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는 거대한 AI 모델이 이제 가상세계뿐 아니라 물리적 세계의 로봇에도 적용되어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었다.

그림1 CES 2025 전시회

그러나 이와 같이 화려한 기술 쇼케이스 이면에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전시된 많은 제품과 기술들이 눈길을 끌었으나, 그중 상당수가 본질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트렌드에 맞춘 흥미 유발에 치중한 느낌을 주었다. 혁신적인 기술 돌파구를 보여주기보다는 기존 기술의 진화와 응용이 주를 이뤘다는 평가가 많았으며, 특히 인공지능 측면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보다 2023년도에 이미 공개된 기술의 다양한 적용 사례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있었다.

혁신은 과연 어디에? 대중의 시선은 차갑다

이번 CES 2025는 양적 성장 측면에서는 눈부셨지만, 질적 혁신의 측면에서는 관람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혁신이라는 단어를 내세운 기업이 많았으나, 실제로 '와우' 팩터를 제공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생각보다 적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4년 차를 맞은 AI 붐이 이제는 조금 식어가는 단계가 아닌 것인가 하는 관측도 있었는데, 2021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생성형 AI 기술은 이제 모든 제품에 기본적으로 탑재되는 수준이 되었고, 그 자체로는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깊이는 부족했다. 많은 제품이 신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발되었지만, 실제 시장에서 가치를 창출할 깊이와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마트홈과 IoT 기술은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기존 기술의 단순한 확장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주방 가전에 AI를 탑재해 음식 재료를 인식하고 레시피를 추천하는 기능은 독창적으로 보이지만,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실제 요리 과정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헬스케어 기기들 역시 다양한 생체 신호를 측정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통찰력이나 실질적 개입 방안은 제한적이었다. 즉, 소비자들에게 일시적 흥미를 끌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시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명백한 한계를 보였다.

단순히 트렌드에 편승한 듯한 이러한 제품들은 CES가 '혁신의 장'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며, 기업들이 기술과 시장의 균형을 맞추는 데 여전히 과제가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대기업들의 전시관에서는 화려한 비주얼과 시연에 집중한 나머지, 해당 기술이 실제 소비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명확한 비전 제시가 부족했으며, 일부 관람객은 "매년 비슷한 콘셉트가 다른 이름으로 재탄생하는 느낌"이라며 식상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로봇 기술 분야도 실용성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의 아쉬움을 샀다. '로봇의 백화점'이라 할 만큼 다양한 로봇이 전시되었지만, 대부분 기본적인 컨셉만 보여주는 프로토타입이거나 제한적인 시연에 그쳐 "과연 어디에 쓸 수 있을까"라는 실용적 가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제조 공장의 협동 로봇부터 가정용 서비스 로봇, 사람 형태의 휴머노이드까지 다양한 시연이 펼쳐졌지만, 그중 실제 상용화 단계에 있는 제품은 극히 일부였다. 가정용 로봇의 경우, 복잡한 집 안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이동하고 작업하는 AI가 아직 완전하지 않고, 가격 부담도 큰 문제로 지적되었다.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 부족도 두드러진 아쉬움이었다. 혁신상 수상 실적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음에도, 정작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주인공이 부족했다. NVIDIA 젠슨 황 CEO의 키노트에서 소개된 14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중 한국 로봇은 한 대도 없었는데, 한국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만든 레인보우로보틱스 등 국내 로봇 기업들이 다수 있음에도, 그 존재감은 크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중국 기업들의 빠른 추격은 한국 기업들에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TCL, 하이센스, BOE 등 중국 굴지의 전자·디스플레이 기업들이 대거 포진하여 삼성·LG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전시장 주요 위치에 대형 부스를 마련한 이들은 AI TV, 스마트 가전, AR 글라스 등 첨단 제품을 선보이며 기술 콘셉트 면에서 한국 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의 경쟁을 펼쳤다. 하이센스는 개막 전날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AI 기반 미래 비전을 발표하며 신규 TV 라인업을 공개했고, 부스에서도 TV뿐만 아니라 주방 가전, 공조기, 전장 제품까지 폭넓은 제품군을 전시했다. 특히 TCL이 삼성과 LG가 작년에 공개했던 AI 로봇과 유사한 반려 로봇 '헤이에이미'를 선보인 반면, 정작 원조 격인 삼성 '볼리'나 LG 'Q9' 로봇은 특별한 업그레이드 소식이 없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혁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CES 2025에서 보여진 아쉬움이 기술 발전의 정체를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는 '혁신의 죽음'이 아닌 '기술 발전의 자연스러운 주기'로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Gartner's Hype Cycle 이론에 따르면, 모든 혁신 기술은 초기 과대 기대의 정점을 지나 환멸의 저점을 거쳐 점진적 발전의 단계로 진입한다. 현재 AI와 관련 기술이 바로 이 과정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 2021년 이후 지금까지 생성형 AI는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엄청난 기대를 받아왔다가 이제는 '혁신적 신기술'에서 '기본적 기능'으로 자리 잡아 가는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과도기에는 사람들의 기대치가 필연적으로 조정되면서 때로는 정체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현재의 AI 기술은 과대 기대의 정점을 지나 이제 실질적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로서 정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안정적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 즉 기술 혁신의 과도기에 접어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계 기술 발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혁신 기술은 항상 이러한 과도기를 거쳐왔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열광적 반응은 닷컴 버블 붕괴 후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지만, 이후 웹 2.0을 거쳐 오늘날 우리 삶의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 역시 초기의 폭발적 혁신 이후 점진적 개선 단계로 접어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산업과 라이프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번 CES2025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혁신 기술이 '개념 증명(PoC)'에서 '실용화'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화려한 데모와 컨셉이 아닌, 실제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실질적 솔루션으로 진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어쩌면 AI는 이제 단독 기술이 아닌 다양한 산업과 결합하여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헬스케어, 금융, 제조, 교통 등 각 영역에서 AI를 접목한 특화 솔루션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화려하지 않지만 더 지속 가능한 혁신의 형태다.

그림2 Gartner's Hype Cycle

테크 스타트업, 유행이 아닌 본질에 집중할 때

이러한 과도기는 기업들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된다. 단기적 트렌드에 편승하지 않고 근본적인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기업은 다음 도약을 준비할 수 있다. 중소 규모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달리 한정된 자원으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의 본질적 니즈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반면, 과도기의 느린 발전 속도를 오판하여 투자를 줄이거나 방향을 잘못 설정하는 기업들은 도태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빠른 추격과 미국의 기술 주도권 사이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실제로 이번 CES에서는 AI 이후의 다음 게임 체인저로 '양자 컴퓨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CES 2025에서는 'Quantum Means Business'라는 특별 세션 프로그램을 통해 그간 연구실 단계에 머물던 양자 기술이 산업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구글의 최신 양자 프로세서 '윌로우'는 현존 최고속 슈퍼 컴퓨터로 10의 25제곱년 걸릴 계산을 5분 이내에 수행해내는 성과를 보였다. 이러한 양자 기술은 AI와 결합하여 신약 개발, 기후 변화 대응, 소재 과학 등 기존 컴퓨팅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들에 혁신적 돌파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즉, 현재 대중이 느끼는 기술 혁신의 속도 둔화는 패러다임의 종말이 아닌, 다음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혁신의 과도기는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시기에 실용성과 안정성을 갖춰가는 기술들이 오히려 더 깊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혁신의 죽음이 아닌, 혁신이 실생활에 스며드는 성숙의 과정이다.

스타트업은 단순히 유행을 좇는 제품 개발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용자와 시장의 본질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며, 이는 장기적인 성공의 핵심이다. 이번 CES 2025를 통해 대중은 많은 기업에 이러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 것이다. 화려한 데모와 마케팅보다 확실한 기술적 차별성과 우월성을 바탕으로 실제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다음 해 CES 2026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양자 컴퓨팅과 AI의 융합, 실용적인 로봇 기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첨단 기술 등이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올해 잠시 주춤했던 혁신의 물결이 다시 거세게 일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기술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때까지 기업들은 현재의 과도기를 지혜롭게 활용하여 다음 도약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화제를 모으는 아이디어를 넘어,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할 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 스타트업들이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을 바라보는 태도를 가질 때, CES는 진정한 혁신의 무대가 될 것이다. 그런 변화의 신호탄이 내년에는 더 강하게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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