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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의 누에보 다리와 헤밍웨이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수필가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수필가
스페인 론다(Ronda)를 두 번 방문했다. 한번은 2012년 1월 겨울에, 또 한번은 2016년 7월 여름이었다. 여름 방문은 마드리드에서 출발 코르도바-세비야 거쳐 론다로, 겨울 방문은 지중해의 말라가(Malaga)에서 출발했다. 말라가는 피카소의 고향이다. 론다는 안달루시아지방의 대표적 관광지역이다. 말라가를 출발- 산 페드로(San Pedro)를 거쳐 서쪽으로 약 100km 거리에 론다가 있다. 론다는 해발 723m 위치에 있어 말라가에서 오는 동안 급커브에 산길 오르막이 마치 강원도의 국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론다의 대표적인 5개 유명 관광지는 투우장,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아랍 목욕탕, 알라메다 타호 공원 전망대, 헤밍웨이 산책로이다. 론다는 투우의 발상지로서 1784년에 건립된 최대 육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투우장이 있다. 론다 출신의 유명한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 때문이라 한다. 최초의 투우는 투우사가 말을 타고 소와 싸웠다 하는데 이 그림이 투우장에 걸려 있다. 투우를 좋아한 헤밍웨이 동상을 투우장 앞에 세울 정도로 미국인 헤밍웨이를 좋아하며, 헤밍웨이 산책로까지 있을 정도이다.

초기 투우는 투우사가 말을 타고 소와 대결했다는 그림. 투우장 앞의 투우 동상과 투우장.
론다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소가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다. 이 다리는 1751년에 착공하여 42년 걸려 1793년에 준공되었다. 다리가 위치한 타조(Tajo) 협곡 아래 과달레빈(Guadalevin) 강이 흐르며 천연의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협곡의 절벽 아래에서 백여 미터 높이를 차곡차곡 석재를 쌓아 축조한 다리이다. 누에보 다리는 120m 넓이(폭) 협곡을 거의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구도시(다리 남쪽)와 신도시(다리 북쪽)를 연결한다. 나는 이 깊고 좁은 골짜기에 18세기 후반 다리를 완공한 토목기술에 놀랐다. 18세기 후반이라면 우리는 조선시대 영조와 정조의 시기이다. 특히 1795년 정조 즉위 20주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방문하는 수원 화성 행차에서 한강 노량진을 나룻배를 연결한 배다리로 건너간 시기로서 변변한 다리가 없었다. 다리의 북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며 계곡을 따라 어우러진 하얀 집의 배열이 멋진 풍광을 이루고 있다. 깊은 협곡을 오르내리지 않고 새로운 다리로 연결하였으니 당시의 주민들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지도 중앙의 강과 협곡 및 누에보 다리의 위치. 다리는 거의 남북 방향임. 스페인 남부 지중해 연안의 안달루시아지방(작은 지도의 붉은 색 부분).
이 지도들은 인터넷 자료에서 인용되었음.
론다에는 헤밍웨이 산책길이 있을 정도로 헤밍웨이(1899-1961 생존,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와 관련이 깊다. 그의 유명한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이곳에서 집필했다. 헤밍웨이는 1937년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의용군의 기자로 참여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살려 이 소설을 1939년 3월부터 쓰기 시작하여 1940년에 발표하였고, 1943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소설은 스페인 내전 다음 해인 1937년 5월에 일어난 소설적 사건이 배경이다. 소설의 무대는 마드리드와 세고비아 사이의 어느 계곡의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이다. 내 기억으로는 1960년대 중반 고등학생 시절 동명의 영화를 단체관람한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스페인 내전에 반파시스트 군으로 참전한 미국인 조던(게리 쿠퍼 분)이 게릴라부대 진영의 동굴에서 만난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 분)와의 사랑과, 깊은 계곡의 다리를 폭파하는 작전을 보여 준다. 다리 폭파 후 도피하는 과정에서 조던은 다리 부상으로 마리아와 게릴라를 먼저 보내고 최후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종이 울리는데, 이 영상이 아직 생생히 남아 있다. 나는 이 영화를 TV로 다시 보며 마지막 장면의 유명 대사를 기록했다. 주인공의 모습이나 성격은 다분히 작가 헤밍웨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나는 아직도 남자 주인공 조던이 마리아에게 속삭이듯 말하는 마지막 대사와 이별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죽음을 앞둔 주인공의 모습은 나의 뇌리에 감동적으로 깊이 박혀 있다. 공화 진영 내부의 분열과 무능 부패로 파시스트 혁명군(프랑코)의 승리로 끝나는 스페인 내란이 가끔 현실과 비교되기도 한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조던(게리 쿠퍼 분)과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 분)의 마지막 이별 장면.
‘마리아, 네가 가면 나도 같이 가는 거야.
금방 나도 뒤따를 거야.
우리 둘을 위해서 당신은 가야돼.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하지만 난 너야. 당신이 가면 나도 가는 거야.
그게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지금은 우리의 시간이야.
결코 끝이 아니야. 진심이야.’


누에보 다리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전경. 협곡은 동서 방향이고 다리는 거의 남북 방향임. 계곡의 절벽 위에 어우러진 흰 집의 배열(현장의 누에보 다리 안내 사진).


누에보 다리 위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건너는 차량 모습과 견고한 다리 주변과 골짜기 하부의 전원 풍경.

알라메다 타호 공원 전망대.
나는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산책로를 따라 공원 전망대에 올라보았다. 헤밍웨이는 이 길을 오르며 무슨 상념에 잠기곤 했을까. 그의 생애를 보면 행동하는 실천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많이 느낀다. 제1차 세계대전 시 이탈리아 전선(19세), 스페인 내란에 참전(38세), 제2차 세계대전 때 특파원 자격으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전(45세)한 걸출한 인물이다. 일생에 한 번 참전도 어려운 전쟁에 세 번이나 참가했으며, 그 경험을 살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926), 『무기여 잘 있거라』(1929) 등의 장편을 출간하였다.

론다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누에보 다리 북쪽 편의 신시가지 상가 골목과 식당을 찾았다. 관광지로 유명한 탓인지 지방 도시라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현대적으로 꾸민 가게들과 식당들이 즐비했다. 여기서 나는 모처럼 식당에서 스페인 메뉴와 커피를 즐기는 호사를 맛보았다. 이곳을 가본 지가 어느덧 육 년 전인데 앞으로 언제쯤 이 지역을 다시 가보게 될지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