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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명반 사냥 이야기 마흔 다섯 번째: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10년에 담은 열정의 유산

Jacqueline du Pré (첼로), Sir John Barbirolli (지휘), London Symphony Orchestra
“Elgar, Cello Concerto”
LP (음반사 : His Master's Voice, 음반번호 : ASD 655)


독일로 유학을 떠나면서 쌍둥이 동생과 헤어지는 것이 참 마음 아팠었다. 타향살이 중 함께 록밴드도 하고 그림 그리기 여행도 하면서 서로 기대고 위안을 얻었는데 떠난다니, 마음 절반을 잃은 듯 했다. 나에게는 새로운 환경으로의 도전을 위한 다짐이 있었지만, 동생은 내 빈자리를 채우며 덩그러니 남아야 했다. 떠나기 전 동생이 내게 선물을 건넸다.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Mary du Pré, 1945년 1월 26일~1987년 10월 19일)가 연주한 엘가 첼로협주곡 영국 초판 LP였다. 비록 떨어져 있지만 뒤 프레가 그랬던 것처럼 각자 있는 곳에서 온 힘을 다해 살아가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글렌 굴드(Glenn Gould)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발굴하여 세상의 빛을 보게 했던 것처럼, 뒤 프레는 조국 영국의 낭만주의 작곡가였던 에드워드 엘가(Sir Edward Elgar)의 첼로협주곡을 세상에 선보이고 유명세를 얻게 했다.

1962년 3월 21일, 뒤 프레가 영국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곡을 연주한 이래 ‘뒤 프레’하면 ‘엘가 첼로협주곡’, ‘엘가 첼로협주곡’하면 ‘뒤 프레’로 둘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파블로 카잘스, 폴 토틀리에(Paul Tortelier),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등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들을 사사했던 그녀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단시간에 구축하였고, 로스트로포비치로부터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첼리스트”란 극찬을 받았다.

1965년 안탈 도라티(Antal Doráti) 지휘,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미국 카네기홀 데뷔 무대도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Itzhak Perlman)과 핀커스 주커만(Pinchas Zukerman) 등 유대계 출신 음악가 들과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였고, 특히 1966년 미국 데뷔무대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출신 바렌보임과 사랑에 빠져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대교로 개종하고 이듬해 결혼하기에 이른다. 결혼식 증인과 결혼 기념 연주 지휘는 주빈 메타(Zubin Mehta)가 맡았다.

두 사람은 하이든, 보케리니, 드보르작, 슈만, 생상 첼로 협주곡 그리고 베토벤, 브람스, 쇼팽, 프랑크 첼로 소나타 등을 함께 녹음하며 명연주를 남겼다. 그러나 둘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 프레는 1971년 중추신경계질환인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아 팔의 힘을 잃기 시작하다 손가락의 감각마저 잃게 된다. 결국 주빈 메타 지휘로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엘가 첼로협주곡의 마지막 연주를 하고 1), 1973년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이후 휠체어를 타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1975년 전신 마비, 1987년 향년 4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음반은 뒤 프레가 20세 때 다비도프 스트라디바리우스 (Davydov Stradivarius) 첼로2)로 존 바르톨리 경(Sir John Barbirolli)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65년 녹음이다. 영국 His Master's Voice (EMI)에서 모노(음반번호 : ALP 2106)와 스테레오(음반번호 : ASD 655)로 모두 발매되었다. 이 녹음본의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도입부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0년이란 시간은 길기도 하지만 정말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 여류 첼리스트는 이 짧은 기간에 거장으로 인정받았고, 범접할 수 없는 열정의 유산을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 그녀의 고향 영국 옥스퍼드의 세인트 힐다 컬리지(St Hilda's College)에는 자클린 뒤 프레 음악관(Jacqueline du Pré Music Building)이 세워졌고, 그녀의 못다 이룬 꿈은 그녀를 우상으로 보고 자란 세쿠 카네 메이슨(Sheku Kanneh-Mason) 등 많은 첼리스트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나는 지금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내 동생을 만나 꼭 껴안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 식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때 함께 살았던 빌라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여느 때처럼 캔 커피를 마실 것이다. 어쩌면 뒤 프레의 생을 이야기하면서 지난 날 우리 모습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그리고 또 다시 뜨거운 포옹과 함께 서로를 다독거리며 각자의 삷을 힘차게 이어갈 것이다.


"She was immediately acclaimed for her instinctive feeling for style and breadth of understanding, as well as technical proficiency“
(그녀는 스타일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과 이해의 폭 그리고 기술적 숙련도로 데뷔 즉시 찬사를 받았다.)

- Noel Goodwin,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1) 며칠 뒤 뉴욕에서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뉴욕 필하모닉과 연주한 브람스의 2중 협주곡이 마지막 연주회가 된다.

2) 지금은 요요마(Yo Yo Ma)가 소유하고 있다.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Mary du Pré, 1945년 1월 26일~1987년 10월 19일)
https://csoarchives.files.wordpress.com/2014/10/jacqueline-du-pre.jpg
자클린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
https://en.wikipedia.org/wiki/Jacqueline_du_Pr%C3%A9#/
media/File:Jacquelinedupredavidoff.jpg
영국 옥스퍼드 세인트 힐다 컬리지 (St Hilda's College)에 위치한
자클린 뒤 프레 음악관 (Jacqueline du Pré Music Building)의 뒤 프레 동상
https://www.st-hildas.ox.ac.uk/content/musical-heritage-jacqueline-du-pr%C3%A9-music-buil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