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칼럼

만나고 싶었습니다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경계현 사장
Q. 안녕하십니까? 서울공대 독자분들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어렸을 때는 호기심으로 전기 콘센트에 전선을 꽂아 학교 전체를 정전되게 했던 사고뭉치 소년이었고, 청년 시절에는 제어계측공학과(82학번)에서 학사·석사·박사까지 공부하고 실험하는 공학도였고, 그 후에는 잠시 삼성전기에 몸담았던 때를 제외하고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30년간 일하고 있는 반도체인이며, 지금은 그 삼성전자 반도체의 대표이사이자 집에서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하는 평범한 남편이고 아빠인 경계현입니다.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저 멀리 시대에 뒤처진 은하계 서쪽 소용돌이의 끝,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 변두리 지역에 있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노란색 항성 하나"라고 태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주선도 오지 않는 그 작은 항성도 아닌, 그 항성 주위를 돌고 있는 작디 작은 별 지구에 사는 저라는 한 사람은 평범을 넘어 정말 미미한 존재일 뿐이구나라는 걸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좀 절망적으로 들리나요? 하지만 개개인이 미미하더라도 우리가 함께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간다면, 우주의 이 변두리에서도 위대한 기적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여러분과의 만남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삼성전자 브랜드 필름 - Micro Miracles

Q. 총괄하고 계시는 삼성전자 사업 부문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희 삼성전자는 많은 분이 알고 계시듯이, 가전과 무선 사업을 담당하는 DX 부문과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 부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DS 즉, 반도체 부문은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 반도체와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패키지까지 반도체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세계 유일 종합 반도체 회사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반도체는 모든 기술의 핵심이었지만, 전 세계적인 AI 열풍 속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욱더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 삼성전자 반도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인데요.

단시간에 수십억 개의 파라미터와 수많은 데이터가 오고가는 상황 속에서 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 CMM(CXL Memory Module), PIM(Processor In Memory)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가 차세대 솔루션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AI는 클라우드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보안과 응답성 등을 고려해 스마트폰, 컴퓨터, 자동차 등 다양한 Edge Device와 플랫폼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대비해 CPU, GPU부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을 아우르는 에코 시스템 빌딩 측면에서 삼성전자 반도체가 기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2024 CES 참관 사진(1)
2023 CES 참관 사진(2)

2023 CES 참관 사진

Q. 30년 넘게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와 개발을 이끌며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해 오셨습니다.
그동안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궁금합니다.
A.

2000년대 중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야근하는 게 일상이었죠.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책상 앞에 앉아서 PC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아서였어요.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밤을 꼬박 새웠죠. 시간이 가니까 쌓여 있던 일들이 조금씩 줄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비결이 생겼을까 기대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예요. 할 일이 쌓였을 땐 우선순위를 매겨 놓고 하나씩 하나씩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할 일이 많을 때 저는 지금도 포스트잇에 해야 할 일을 적어서 쭉 늘어놓고 우선순위를 매겨서 앞의 것부터 떼어내면서 일합니다. 사실은 그냥 자기와의 싸움이죠.

30년간 엔지니어로 한 분야에서 일해왔으니 남들이 기억해주는 영광스럽고 뿌듯한 순간들도 당연히 있었지만, 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그런 영광의 순간을 만들어준 길고 긴 눈물의 시간입니다. 오직 나만 알고 있고, 나만 기억하는 시간이니까요.

이런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이유는, 2024년 오늘도 수많은 저희 임직원분이 그날의 저처럼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기 자리에서 자신과 스스로 싸우며 새로움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모여 결국 위대함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We Talk 진행 사진
대표이사와 임직원이 직접 만나 대화하는 시간 'We Talk'
Q.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꾸준히 성장하신 사장님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업무와 관련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서울공대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A.

과거에는 똑똑한 한두 사람이 정답을 찾아(Find) 성과를 내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답을 만드는(Create) 시대입니다. 세상에는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열린 마음과 다른 이의 의견을 수용하는 열린 눈과 귀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회사에 들어오면 당장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지기 쉽습니다. 빨리 답을 찾으려고 하다 보면 한 번의 실패에도 크게 좌절하고, 쉽게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디게 여겨지더라도 3년 뒤, 5년 뒤에 무엇을 할지 장기적인 이정표를 세우고 다양한 사람과 함께 나아간다면 방향성을 잃지 않고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스토리텔링 능력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본인의 일을 팩트만 나열하는 방식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이야기하면 상대를 이해시키기도, 설득하기도 훨씬 쉬워집니다. 이러한 역량은 특히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의 기술과 역량을 연결해 타인에게 잘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잘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Q. 서울공대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은사님이 계신가요?
A.

이 질문을 받고 서울 공대 시절 저를 다시 떠올려봤습니다. 고이 모셔 두었던 8년간의 학생증도 다시 찾아보았고요. 사진을 보면 공부만 하던 모범생같이 보이지만 저는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전공을 가진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는 적극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입학했을 때는 제어계측공학과 창립 초창기였고, 국내에 로봇에 대한 관심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던 때입니다. 저도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서 함께 연구하고 했었습니다. 벌써 30년도 넘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로봇에 대한 개발과 관심이 뜨거우니,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삶에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과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8년간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증
8년간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증
몇 년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Robot과 함께
몇 년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Robot과 함께
1987년, 고명삼 교수님 연구실 설악산 산행
1987년, 고명삼 교수님 연구실 설악산 산행

기억에 남는 은사님으로는 고명삼 교수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원 초기에 고명삼 교수님에게 지도를 받았는데요, 교수님은 새로운 일에 열정이 많으셔서 반도체 공동 연구소, 자동화 연구소 같은 연구소 설립에 앞장서셨고, 전국 마이크로 로봇 경연 대회를 국내 최초로 개최하여 젊은 학생들에게 많은 꿈과 기술을 심어주신 분입니다. 로봇과 함께 찍은 사진도 아마 고명삼 교수님 연구실에 있을 때로 생각됩니다.

학문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분이지만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는 열린 분이셨어요. 1987년 여름에 교수님 연구실에서 설악산 산행을 간 적이 있는데 젊은 학생들과 함께 대청봉 정상까지 오르시고 매우 뿌듯해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제가 그때의 교수님 나이가 되고 보니 교수님의 열정과 젊은 사고방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Q. 마지막으로 서울공대 동문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와 미래뿐 아니라 인류의 내일을 이끌어갈 중요한 기술입니다. 반도체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 인재 영입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삼성전자 브랜드 필름 - Imagination Brought to Life

저희 삼성전자 역시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 국내 여러 대학과의 산학 협동은 물론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에서 리쿠르팅을 실시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공대 동문들과 같은 뛰어난 인재들의 관심이 더욱 필요합니다.

반도체 엔지니어의 길은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공학도의 길을 이미 선택한 여러분이라면, 반도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저와 함께 인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갈 후배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23년 서울대학교 강연 사진
2023년 서울대학교 강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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