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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이우일 부의장


2022년 과총회의에서 연설
Q. 안녕하십니까? 서울공대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공대 기계공학과 72학번으로 입학해 76년에 학사를 졸업했습니다. 군대 때문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대학원을 선택하기로 하고 석사과정에 입학해 78년에 졸업했습니다. 이후 마침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어 80년에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 기계공학과에 박사 과정으로 입학, 1983년에 학위 과정을 마쳤습니다. 학위 과정을 마치고는 미국에서의 경험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판단, Stanford University 항공우주공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내던 중, 마침 국내에 자리가 생겨 귀국해 창원에 있는 (지금은 대전에 본원이 있습니다) 한국기계연구소에 선임연구원으로 입소, 2년간 재직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에 모교에 교수 공채 기회가 있어 지원했는데 다행히 자리가 되어, 2019년 정년을 맞을 때까지 32년간 근무했습니다. 제 이력에서 보셨다시피 처음에 국책연구소에 잠시 있었습니다만,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학에서 보냈습니다.

2005년부터 4년간 기계항공공학부장을 맡아 그해 시작된 BK21사업 2단계 사업을 시작하고, 해외 전문가를 초청해 학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1년부터 2년간은 공과대학 학장을 맡았는데, BK21 사업 3단계를 성사시키고 병역특례요원 TO를 늘린 것, 공대 축제를 아이디어 경진대회 중심으로 부활시킨 것 등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2013년 빌 게이츠 방한 시 사회를 맡아 대담을 진행한 것도 잊지못할 경험이었습니다. 2014년부터는 2년 간 서울대 연구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비더로켓(Be The Rocket)이라는 창업경진대회를 시작했으며, 종합대학으로 서울대학교의 연구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기획했습니다.
2013년 4월 빌게이츠와의 대담
한편, 2015년부터는 2년간은 시민단체인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과실연) 상임대표를 맡았는데 과학기술과 관련된 우리 문제를 되짚어 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9년 정년을 맞은 후 2020년 3월부터 3년간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과총) 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마침 과총의 새 건물을 그 기간 동안 짓게 되었습니다. 이왕 짓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 싶은 생각에 과총 지하에 과학기술 컨벤션센터를 만들고 LED 스크린을 크게 집어넣는 등 욕심을 부렸는데, 다행히 활용률이 상당히 높은 것 같습니다. 또, 과총 회장 임기 시작과 더불어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는데,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온라인 회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코로나 대응의 전범을 마련한 것은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2022년부터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을 맡게 되어 과학기술 관련 정책에 대한 대통령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장황하게 제 이력을 소개 드렸습니다만 제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이력은 제 학생들입니다. 100명이 넘는 석사와 박사를 배출하고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제 몫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보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 제가 상을 별로 받지는 못했지만 가장 자랑하고 싶은 상이 있습니다. 2008년 1회로 끝났습니다만 서울대 총학생회가 서울대 전체 강의 중에서 선정한 50개의 우수강의 중 하나로 제 강의가 선정된 것입니다. 특히 은사이신 노승탁 교수님과 함께 선정되어 더욱 영광스럽게 생각되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년을 맞아 제자들과 함께
Q.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A. 잘 아시다시피 민주화와 함께, 1987년에 헌법이 개정되었습니다. 개정된 헌법 127조 3항에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위하여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고 명시되었는데. 이에 따라 1991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이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이후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조직 구성 및 크기가 조금씩 바뀌었지만, 대통령에 대한 과학기술 자문이라는 자문회의 기본적 기능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1999년부터 조직되어 명칭과 조직의 변경은 있었지만 과학기술기본법에 의거한 과학기술 관련 주요 정책에 대한 심의, 조정 기능을 수행해 왔습니다. 2018년에는 자문회의와 심의회의가 통합, 일원화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여 부의장 및 민간위원 12명으로 구성된 자문회의와 민간위원 10명 및 정부측 6명(관련부처 장관 5명과 경제수석)으로 구성된 심의회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업무 지원을 위하여 정부에서 1급(실장)을 지원단장으로 지원단이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부처 및 기관에서 파견된 전문가 30여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자문회의의 역할은 대통령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자문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과학기술을 통해서 해결이 가능합니다. 성장동력의 실종, 지역소멸, 인구문제 등 국내의 문제는 물론이고, 기술패권주의로 지칭되는 지정학적 문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등 전 지구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이 해법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인 것은 현 의장인 대통령께서 과학기술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처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부부처와 협력하여 제대로 된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문회의의 가장 큰 소명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입니다. 과학기술 수준도 괄목할 발전을 해, 우리가 세계를 리드하는 분야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진국을 따라가는 추격형에서 벗어나 우리가 앞서 나가는 선도형으로 탈바꿈할 시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격형에 최적화되어 있던 기존 과학기술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창의성을 북돋우고 도전정신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익숙했던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패러다임 전환은 사고의 혁신적 변화를 요구합니다. 자문회의도 이러한 혁신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제도 개혁을 제안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등 저희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려고 합니다.
Q. 부의장으로 취임하신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역점을 두고 진행하신 일은?
A. 자문회의 운영에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일은 자문 방법의 변화입니다. 그 전의 자문은 커다란 몇 개의 자문 주제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주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기술 환경을 볼 때, 보다 시의성 있는 자문 의제를 도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자문 보고서의 시의성과 함께 의제의 완성도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전문가의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신속히 리뷰를 하고 그 결과를 정리해 자문의제로 보고하는 것을 시스템에 추가하였습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완결성은 조금 못하더라도 급히 대응해야 할 의제들을 선별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의제는, 시급성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예전처럼 중장기적으로 연구해 자문보고서를 만들어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향후 과학기술 행정 구조에 큰 변화가 예견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대통령실에 과학기술수석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과학기술만을 떼어 수석비서관을 설치하는 것은 처음 해보는 시도로 그만큼 과학기술이 정부 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 자문회의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시의성 있는 의제를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 부처간 갈등이 첨예해 정책으로 입안되기 쉽지않은 주제들에 대해서도 과감히 제안하여 이슈를 만드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연구개발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자문회의는 부처와 달리 행정력이 없으므로, 오히려 현장의 연구개발 담당자들이 부담없이 얘기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아닌가 합니다. 연구개발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청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시도하겠습니다.
Q. 서울대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은사님이 계시나요?
A. 저의 대학 시절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많았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72년은 유신이 시작되던 해입니다. 그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매해 한 학기씩 휴교를 겪으며 공부는 뒷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교수가 될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대해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기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우리 문제를 서로 얘기하고 미래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해보는 시기였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상황은 답답했지만 계속 성장하는 경제는 우리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지금보다 풍요롭지 못했지만 희망은 충만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1학년 때부터 특별 활동에 몰두했습니다. 1학년부터 조정부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때 닦은 체력이 지금까지 조금은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학년 때에는 전국대회에 출전해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건 것이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젊을 때 쌓은 건강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조정부 시합 모습 (앞에서 3번째가 이우일 부의장)
기억에 남는 은사님은 우선, 이택식 교수님이십니다. 항상 근엄하시고 정도를 지키신 분이었습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카트 놀이를 하다 들켜 야단도 몇 번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 분은 73년, 제가 2학년 때 기계공학과에 새로 교수님이 부임하신 노승탁 교수님이십니다. 당시에 파격적인 강의 퀄리티를 자랑하셨습니다. 아마 제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택식 교수님과 노승탁 교수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제가 40년 넘게 별 탈 없이 교육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앞서 길을 닦아 놓으신 선배님들과 저에게 큰 도움을 베풀어준 동료, 후배들의 덕이었습니다. 저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하시며 성취를 이루신 서울공대 동문 여러분들을 보며, 언제나 서울공대 동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공대 동문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정도로 이룰 수 있었을까 반문해봅니다. 요즈음도 11회 (1953학번) 선배님부터 여러분들이 함께 만나는 모임이 기계과에 정기적으로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뵙는 90세가 넘으신 선배님들의 열정은 아직도 전혀 식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주어진 환경과 방법은 바뀌었지만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서울공대 동문들에게 주어진 책무는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책임의식을 공유하는 동문들을 통해 많이 느끼고 배웁니다. 이런 동문들이 있기에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