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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와 영업비밀이 유출된 피해기업의 현실




박종률
법무법인(유) 현 파트너 변호사∙변리사



박종률
법무법인(유) 현 파트너 변호사∙변리사

1. 강화되고 있는 영업비밀 및 아이디어 보호 제도
기술에 대한 보호 또는 제3자의 침해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으로서 특허 제도와 영업비밀 제도를 들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강학상 특허와 영업비밀은 공개를 전제로 하는지, 권리범위가 명확한지, 등록이 필요한지, 성립요건 등에 의해 그 장단점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이러한 장단점으로 인하여 실제 분쟁의 수단으로 취사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취사선택은 분쟁 직전이 아니라 초기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이루어져야만 이후 사업화와 연계된 기술보호 조치가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기도 하다.

기술 보호를 위한 법제도의 측면에서 논의의 대상을 조금 더 확장시키자면, 특허법에 의한 발명의 보호 이외에도 실용신안법에 의한 고안의 보호도 고려해볼 수 있다. 기술의 일반적인 라이프 사이클을 고려할 때 10년이라는 존속기간이 짧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등록 가능성의 난이도를 별론으로 하더라도 실제 분쟁에 있어서 실용신안권자가 침해자 측의 무효(더 정확하게는 무효에 기한 권리남용) 항변이나 무효심판에 대응할 때에는 특허보다 유리한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면, 기술 보호의 다른 한 축인 영업비밀 보호 제도를 살펴보자.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부정경쟁방지법’)이 적용되는 영업비밀 제도와 함께 「중소기업기술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중소기업기술보호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양자는 비록 주무관청이 서로 다르지만, 그 개정연혁을 살펴보면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존재하고 있고, 반면 보호대상, 침해행위 유형, 분쟁해결절차, 벌칙 등의 차이점도 존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술 유출 피해를 당한 피해기업에게 대응 수단으로서의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처벌의 관점에서는 업무상 배임죄 등에 관한 형법도 같이 검토되고 있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산업기술보호법’)도 실무상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해당 기술이 컴퓨터프로그램 또는 소프트웨어에 관한 것이라면 저작권법을 통해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로서의 보호방안을 함께 강구해볼 수 있고, 그 기술의 일부가 ‘콘텐츠’라고 정의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면 콘텐츠산업진흥법(약칭 ‘콘텐츠산업법’)에 의한 보호도 함께 고려해볼 수 있다.

한편, 소위 ‘기술탈취’라는 관점에서 원사업자의 기술자료 제공요구, 유용행위 등을 규제하고 있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약칭 ‘하도급법’)도 실무상 같이 검토되고 있으나, 보호받기 위한 요건, 절차 및 효과가 다소 제한적인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법제도로서도 보호되기 힘든 기술이라면, 소위 말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보호가 관건이 된다. 다만 이 경우에 대한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자면, ‘아이디어 수준의 기술’은 어떠한 법률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법률로서는 2018년 개정법에 의해 아이디어 탈취행위 또는 도용행위가 도입된 부정경쟁방지법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으며, 현재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과 아이디어 보호를 위해 2021년에만 두 차례나 개정법이 시행될 정도로 빠르게 그 보호 수준과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본 칼럼의 작성일인 2021년 5월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해보면, ‘아이디어 탈취행위에 대한 선의의 선 사용자 보호 및 침해금지 청구의 시효’, ‘아이디어 무단사용행위에 대한 벌칙’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부정경쟁방지법에 대한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소관위원회 심사 계류 중이고, 특히 2021년 1분기에만 5건의 의원발의가 있었을 정도로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에 대한 이슈는 다양하고 사회적인 관심도 높다는 것이 확인된다.

( 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 발췌)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술에 대한 보호 특히 영업비밀에 대한 보호의 측면에서 피해기업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법제도는 다수가 구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영업비밀이 유출된 피해기업은 여전히 보호받기가 어려울까?
2. 왜 영업비밀이 유출된 피해기업은 여전히 보호받기가 어려울까?
법제도에 대해 개략적으로 열거한 앞의 딱딱한 내용과 달리, 분쟁의 일선에서 실무를 접하는 변호사로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보겠다.

우선 영업비밀이 유출된 피해기업 입장에서 피해를 보상받고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꼭 필요한 증거를 꼽자면, ① 유출된 영업비밀의 내용과 경위에 대한 증거와 ② 유출된 영업비밀의 부정 사용 증거를 들 수 있다.

그런데 특허청 영업비밀보호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피해기업에서 영업비밀이 유출된 경로의 67.4%가 재직 또는 퇴직한 임직원의 경쟁업체 취업에 의해 발생한다고 한다. 굳이 이런 통계 수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실무상 접하는 영업비밀 분쟁에는 예외 없이 직간접적으로 전직 임직원들이 다수 등장한다.

퇴직 임직원에 의한 영업비밀 유출 사고의 빈도가 이렇게 압도적인데도, 과연 피해기업은 평소에 퇴사 예정자의 퇴직처리 및 인수인계 과정에서 사내 영업비밀 유출을 방지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퇴사자 인터뷰’를 실시했는가? 기술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기업들 중 이런 퇴사자 인터뷰를 제대로 실시하는 회사가 몇이나 되는가?

위 영업비밀 유출 경로에 대한 통계 수치는 실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퇴직 임직원이 경쟁업체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흔하게 유출되고 있기 때문에, 분쟁은 필연적으로 피해기업과 경쟁업체 사이의 법률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지면을 고려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기는 어려우나, 실제 분쟁에서는 경쟁이 격화된 시장에서의 지위를 위해 퇴직 임직원을 희생양처럼 분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드물지 않다. 누가 진정한 피해자이며 누가 정작 가해자인지의 명분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경쟁업체로 이직한 퇴직 임직원에 의해 영업비밀이 유출됨에도 불구하고, 피해기업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영업비밀이 유출되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퇴사자 인터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시에 증거를 확보할 기회를 놓친 것은 둘째 치더라도, 경쟁업체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에야 비로소 피해기업이 영업비밀 유출을 인지하게 될 경우, 그 시점에는 이미 퇴직한 임직원이 과거 재직 시 사용했던 컴퓨터 등의 저장장치, 이메일 발송기록, 서버 접속기록, 복합기 사용기록 등을 뒤늦게 살펴보더라도 모두 삭제되었거나 이미 망실된 뒤이기 때문이다.

민사 소송을 진행함에 있어서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영업비밀이 유출되었는지’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변론주의와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에 따라 그 피해기업의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취급될 뿐이다. 피해기업으로서는 퇴직 임직원이 과거 재직 시 사용했던 컴퓨터 등의 저장장치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을 통해 증거를 확보해볼 수 있겠으나, 저장장치 용량이나 운영체제의 문제 등을 이유로 피해기업이 디지털 포렌식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어려움이 여전히 남는다. 형사 고소 후 산업기술유출수사대의 디지털 포렌식 수사를 기대해볼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인 범죄사실인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영업비밀이 유출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초동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도 어렵고, 그에 이은 디지털 포렌식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될지도 의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특허청 영업비밀보호센터에서 2021년도 상반기부터 실시하는 디지털 포렌식 지원사업은 위와 같은 피해기업의 막막한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는 것이라 기대가 크다.
(출처: 특허청 영업비밀보호센터 홈페이지 발췌)
한편 퇴직 예정 임직원에 대한 퇴사자 인터뷰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또는 퇴사자의 퇴사 이후 동향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유출된 정황을 조기에 인지한 피해기업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그런데 특허청 영업비밀보호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퇴직 임직원에 의해 영업비밀이 유출된 것을 인지한 피해기업 중 30% 이상이 경고장 발송의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피해기업으로서는 퇴직 임직원의 영업비밀 유출에 대해 경고하고 경쟁업체의 무단 사용을 막기 위하여 또는 남은 임직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제스처로서 강경한 어조로 작성된 경고장을 보냈을 것이라 짐작된다. 분풀이 차원에서 따끔하게 경고하면서 속은 시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위와 같은 경고장을 받은 퇴직 임직원이나 그들이 이직한 경쟁업체는 바로 무단 반출 또는 입수한 영업비밀 자료에 대한 증거인멸에 착수하게 된다. 영업비밀 유출 시 초동 대응에 있어서 분쟁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경고장 발송과 같은 주먹구구 식 대응을 방지하고 상황에 맞는 효율적인 조치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 처벌에 있어서 처벌의 형량을 높이고 민사 소송에 있어서 손해액을 증액시키기 위해서는 유출된 영업비밀의 부정 사용 증거가 필수적인데, 위와 같이 경고장을 받고 증거인멸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우여곡절 끝에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더라도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증거가 없으면 처벌도 손해배상도 어려워지고, 피해기업의 보호는 더 멀어지게 된다. 첫 단추, 즉 초동 대응에서의 실수 또는 실패가 분쟁 전반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앞에서 살펴본 다수의 어려움들을 딛고 유출된 영업비밀의 내용과 경위에 대한 증거나 유출된 영업비밀의 부정 사용 증거를 확보한 피해기업으로서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봉착하게 된다.

많은 칼럼이나 강의들, 보안교육 등에서 언급하는 영업비밀의 성립요건 중 하나인 ‘비밀관리성’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피해기업이 보유한 자료나 정보를 소위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평소에 그 자료나 정보를 영업비밀로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비밀관리성’의 문제이며, 앞서 언급된 ‘퇴사자 인터뷰’도 비밀관리성 구비 여부 판단에 고려되는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상당 수의 피해기업들은 아직도 사내 영업비밀 관리를 위한 체계가 없고(영업비밀 관리규정 부존재), 영업비밀 관리를 위한 인력도 없으며(영업비밀 관리책임자 부존재), 중요한 자료나 정보를 영업비밀로 분류하거나 표시하지도 아니하고(영업비밀 등급분류 및 표시 부존재), 단지 성명, 날짜, 서명만 다를 뿐인 일반적이고 형식적인 서약서만을 징구하거나 영업비밀 보호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서약서조차 징구하지 아니하고 있다. 이러한 피해기업들에게는 보안교육이나 접근권한 제한 등의 이야기는 너무 먼 이야기다.

하지만, 영업비밀의 성립요건인 ‘비밀관리성’이 결여된 자료나 정보는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어려우며, 이러한 자료나 정보가 유출되면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법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 때문에, 자료나 정보가 유출된 증거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 소송에서 가해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되거나 가해자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되며, 피해기업으로서는 민사 소송을 통해 제대로 된 손해를 배상받지 못하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을 통해 과거에 비해 ‘비밀관리성’의 요건이 완화되었고, 하급심 법원에서도 피해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하여 일률적인 잣대로 비밀관리성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지양되고 있다.

특히 특허청 영업비밀보호센터에서는 수년간 기업들의 영업비밀 관리현황을 점검하고 실현 가능한 관리방안을 제시하는 ‘영업비밀 관리체계 진단사업’, 기업 규모에 부합하는 수준의 영업비밀 관리체계 구축 실무를 지원하는 ‘영업비밀 관리체계 심화 컨설팅 사업’, 영업비밀 보호 및 법적 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원본증명서비스 사업, 영업비밀 자료관리 시스템 보급사업 등을 일관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위 사업들의 수혜기업들이 실제 분쟁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법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에 영업비밀이 유출된 피해기업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업비밀 유출 사고에 대비하지 아니한 기업들과 실제 유출 사고 발생 시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한 기업들은 이미 존재하는 법제도에 의한 보호도 충분히 받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