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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유감




김효철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김효철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1998년 가을에 해양수산부에서 연내에 착수하는 조건으로 해양수산 환경개선에 도움이 될 연구과제 신청을 받는다는 통보를 받고 함께 할 연구자들을 찾았다. 한일 어업협정이 1999년부터 발효예정이어서 어업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어선을 손쉽게 건조하는 방법을 개발하자는데 연구원들의 뜻이 모여 과제를 신청하였다. 출어할 수 있는 어장이 바뀌었고 조업할 수 있는 어선의 규모가 바뀌었으므로 새로운 어업환경에 적합한 선형을 설계하고 손쉽게 건조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해 11월 연구과제의 심사가 있었으며 연구과제 공모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이어서 평가 성적이 우수하여 3개년 과제로 선정되었다. 예년과 다르게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연구비가 영달 되어 연구원들은 연말을 보내며 구체적인 연구 계획을 다듬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어선의 조업 가능한 장소가 바뀌었으며 어선의 규모가 제한되었으므로 경제성을 가지는 운항속도가 바뀌는 데 따라서 적합한 선형을 찾아야 하였다. 그리고 순수한 어로 활동뿐 아니라 일반 낚시 승객이 승선하여 스포츠 활동도 할 수 있는 선형을 구현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어로 활동에는 속도보다는 작업성이 중요한데 낚시 승객에게는 빠른 속도가 더욱 매력적 이어서 양쪽 요구를 절충하여야 하였다. 그리고 어선의 연료 소모를 줄이려면 선형이 저항을 적게 받아야 하므로 전개하기 어려운 유선형 선형이 되어야 하지만 선박을 건조하기 쉬우려면 되도록 선형이 단순하여야 하므로 양쪽을 절충하여야 하였다. 다양한 절충으로 선형을 결정하더라도 전통적 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어민에게 거부감이 없어야만 어선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어려움도 있었다.

두 번째 단계는 마치 옷을 만들 때 체형에 따라서 천을 평면에서 재단하듯이 선형을 평면으로 나타내는 일이었다. 첫 번째 단계에서 개량한 어선의 선체 표면을 전개 가능한 요소로 나누어 전개하는 일이었다. 이는 실제 모든 선박의 건조 단계에서 늘 이루어지는 일이었으나 어선은 크기가 작고 곡률이 크기 때문에 전개할 수 있는 요소의 숫자를 최소화하기는 어려웠다. 전개하는 판의 수가 많아지면 선체형상을 잘 나타낼 수 있으나 전개 작업효율이 떨어지고 판의 수가 작으면 판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져서 판을 재단하고 운반하는 등에 작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규모가 작은 어선일지라도 첫 번째 단계에서 구한 최적의 선형을 유지하며 작업성이 우수한 선체 형상요소를 찾아내어 외판을 쉽게 전개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연구과제의 두 번째 핵심사항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전개한 외판을 굽히고 서로 연결하여 종이접기로 배를 만들 듯이 배 모양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형상이 단순한 소형어선에 적용하는 것을 최초의 연구 목적으로 하였으므로 얇은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판에 전개하고 재단하기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실제 조업에 나서는 어선의 겉모양을 전개한 평판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루기 쉽지 않은 크기이고 탄성을 가지고 있어서 전개 판을 배 모양으로 굽히고 고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결국, 41동과 42동 사이의 공간에 천막을 치고 간이 조선소를 만들어 선박의 선수 부분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여 효과적인 선형 결정 기술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전개 평판으로 만들어진 선형의 안쪽에 추가로 적층하여 충분한 강성을 가지도록 보강하여 선형을 완성하면 어선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접어서 만든 어선의 선수 형상
세 번째 단계까지를 거치며 선박의 형상을 여러 개의 평판으로 전개하고 이들을 굽히고 조립하여 선박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얻은 기술을 경남 양산에 있는 FRP 조선소에 이전하였다. 2000년 초에 실제로 소형어선을 건조하여 물금읍에서 낙동강에 진수하고 원동역까지 강을 거스르며 시험 운전하였다. 뜻하지 않게 강추위가 한동안 지속하였던 탓에 수면에 살얼음이 잡혔는데 새로 지은 FRP 어선은 쇄빙선인 듯 거침없이 얼음을 깨며 달리었다. 얇은 FRP 판을 접어 붙이고 안쪽에 추가로 적층 보강하여 선박을 건조하였으므로 부분적으로 박리가 일어나거나 손상이 일어나는 문제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결빙상태에서 이루어진 시운전은 설계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이었으나 예정에 없던 내구성 실험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진 셈이었다.
나는 나름으로 특허는 독창성과 혁신성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산업에 대한 기여도도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양수산부의 연구비로 수행한 연구결과는 어선을 손쉽게 건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한 것이고 시운전에도 성공하였으므로 기술을 정리하여 “조절 가능한 형틀을 사용하는 복합재료 선박건조방법(특허 제0352149)”으로 특허를 출원하였다. 이 특허는 내 나름으로는 통상의 공학 논문보다 활용도가 높으리라 생각될 뿐 아니라 시험선 건조와 시운전에 이르기까지 성공하였으므로 연구개발을 함께하였던 중소기업 명의로 출원하여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과제 수행과정에서 파생하여 얻어진 새로운 기술을 정리하여 3건의 특허 (“선박용 전개외판을 결합하는 장치”, “조립식 FRP 보트”, “전개형 합성수지선의 외판 성형용 신축 지지주”)를 출원하였다.

연구를 수행하며 얻어진 결과를 해양수산부에 보고서로 제출하는 한편으로 논문으로도 정리하여 2001년까지 국내외의 학술회의에서 3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학술지에도 게재하였다. 해양수산부는 연구과제 수행결과를 평가하여 해당 연도 우수 연구 성과로 선정하였으며 홍보자료를 제출받아 연구 성과 홍보에 활용하였다. 함께 연구에 참여하였던 연구원들 모두가 자랑스러워하였으나 나는 특허를 출원하였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특허출원 이전에 이미 148편의 논문과 41편의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일이 있었으나 출원한 특허는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결과였다. 공학적 활용도가 높아 공동으로 연구에 참여하였던 기업은 바로 생산 활동에 응용할 수 있었다. 국내외에서 특허기술을 사용 승낙 요청이 여러 차례 있었기에 특허기술의 우수성이 입증되었다고 생각하였다.

특허출원 후 용기를 얻어 실험실에서 쌓아온 연구 성과 중에서 출원을 망설이던 내용을 정리하여 출원하였는데 2001년 공학 연구재단으로부터 재직기간에 교수가 취득한 특허는 직무 발명에 해당하므로 특허에 대한 지적 재산권은 공과대학 교육연구재단에 귀속되어야 한다며 특허권 이양 요청을 받았다. 결국, 실질적 참여기업이었으며 특허기술의 실질적 핵심요소가 참여기업의 경험에 근거한 것임을 강조하며 어렵게 특허권 이양을 거절하였으나 뒤늦게 출원한 특허는 재단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제도적으로 직무 발명에 해당한다는 재단의 법적 판단은 정당하였으나 재직기간에 출원한 9건이 차례로 등록되었는데 3건의 특허는 기업의 소유로 되었고 나머지는 재단의 소유로 확정되었으며 출원하려 구상하던 내용은 특허출원 시기를 퇴임 후로 미루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2월 정년으로 퇴임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인하대학의 정석물류통상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정석물류통상연구원에 6년간 재직하며 연구활동을 지속하여 재직기간에 다시 국내외 학술회의에 31건을 발표하였으며 학술논문 13편을 학술지에 투고하였고 8건의 특허를 출원하였다. 근무 기간 중 가끔 산업체의 기술자문 요청이 있었는데 2009년 가을에는 동현씨스텍이 선박모형 실험시설과 계측 관련 기술지원 요청을 받아 테크노 닥터 계획으로 정부 지원을 받으며 기업지원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2011년 연말 정석물류통상원을 사임하였으나 수상에 태양열 발전설비를 공급하는 업체인 위닝비지네스에도 테크노 닥터로 기술지원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중소기업의 기술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얻어진 기술을 정리하여 특허 출원하였다.

중소기업의 문제해결을 함께하며 출원한 특허기술이 기업활동에 직접 도움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였다. 퇴임 후 출원한 20건의 특허 중 일부는 기업의 영업활동에 도움이 되었고 일부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제품 제작에 이르렀으며 특허기술의 배경을 설명한 논문으로 학회의 논문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첫 번째 출원한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기업은 특허 유지비를 체납한 상태로 도산하였으므로 공개기술이 되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공과대학 교육연구재단에 귀속된 특허상태를 확인하였더니 재단이 적지 않은 특허 유지비를 부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재단에 이양한 특허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관심을 가질만한 기업에 정보를 제공하고 특허기술을 재단으로부터 이전받으라 권고하였다. 재단의 부담을 줄이고 기업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단순한 생각이었으나 논의가 성립되지 않았다.

재단과 접촉한 기업의 실무자로부터 교육연구재단은 특허출원과 유지에 쓰인 금액을 가산하여 특허 양도가격을 높이 책정하여 상담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하였다. 상당 기간이 지난 후 교육연구재단도 유지비를 내지 않고 특허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였음을 알고 아쉬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연구재단의 부담이 없어졌으므로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첫 번째 특허는 FRP 선박이 수명을 다하여 폐선 단계에 이르면 분해하지 않는 폐기물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산업 자체가 쇠퇴하여 쓸모없는 기술이 되었다. 또 논문상을 받았던 수상 태양광 발전시스템은 높은 효율을 인정받았으나 태양광 발전 소자에 쌓이는 물새의 분변처리 비용이 과다하여 특허 가치가 상실되었다. 유감스럽게도 한동안 자랑스럽게 생각한 나의 합성수지 선박 건조기술 특허는 수명 후 폐기 처리가 발목을 잡았으며 수상 태양광 발전 시스템은 하늘의 주인인 물새의 분변처리에 따르는 문제로 빛을 잃어버렸다. 결국,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던 특허는 아쉬움 만으로 남았으나 퇴임 후 중소기업을 지원하며 매년 한두 건씩 출원한 특허 중에서 언젠가는 활용되는 것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