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네스(Ness)호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인버네스(Inverness)에서 학술회의가 나흘간 개최되어 말로만 들어오던 네스호를 방문할 수 있었다. 나는 스코틀랜드 남동부 도시인 에든버러와 동북부 도시인 에버딘을 방문할 기회는 있었으나, 북부에 있는 인버네스 방문은 처음이었다. 인버네스는 하이랜드(Highland) 지방의 중심도시이며, 인구는 6만여 명이다. 학회 참석차 인버네스 같은 시골 소도시에 가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나 네시(Nessie)라는 괴물이 산다는 호수로 소문이 나서 유명해진-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온– 대표적 관광 명소 네스호를 이번 기회에 답사해 보자는 호기심이 학회 참가를 더욱 가능하게 하였다.

네스호는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며 인버네스 남쪽에 있다. 호수에 산다는 괴물 네시를 목격하였다는 소문이 1933년에 시작되었으니 금년이 괴물 출현 소문 이후 90주년이다. 네스호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이 36.3 km, 면적 56.4 km², 고도 16m, 너비 2.7 km, 평균 깊이 132m(가장 깊은 곳은 320m)의 빙하 활동으로 형성된 좁고 긴 호수이다. 이 호수의 물은 북쪽의 인버네스 시내를 흐르는 네스 강을 따라 북해로 흘러간다.

네스호는 괴물 소문으로 유명 관광지로 발전하였다. 1958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과학자들의 수차에 걸친 조사 및 2003년 영국 BBC방송의 전문가 수중탐험 및 음향탐사 결과 괴물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동아일보 기사(1997년 1월 28일 자)에 의하면 이 괴물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면 백만 파운드(당시 환율로는 14억여 원)의 현상금을 제시하는 영화사가 있었을 정도로 이 호수는 흥미진진한 소문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었다.

학회 주최 측에서는 사일간의 학회 기간 중 반나절 오후 시간을 네스호 방문 일정으로 배정하여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학회 개최 기간이 12월 초순 겨울이었다. 거의 일주일 인버네스에 머무는 동안 하루도 맑은 날이 없었고, 매일 흐리거나 비나 눈이 내리는 날씨였다. 다행히 숙소는 난방이 잘 되고 아침 식사도 푸짐하여 숙식에는 불편이 없었다. 낮이 짧아 오후 4시면 어두워지는 전형적인 극지방(북위 57.5도)이었다.

네스호 방문은 학회장을 출발하여 오후 2시부터 네스호 칼레도니안 운하에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남서 방향으로 우르콰르트(Urquhart) 성까지 이동했다. 배에 의한 이동 거리는 호수 전체 길이의 약 1/3 정도였다. 선상에서는 호수의 양안이 바로 보여 그리 넓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만약 호수 표면에 괴물이 지나다녔다면 충분히 호수 가에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운 좋게 수면에 불쑥 오른 괴물을 보는 행운이 있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좁고 긴 호수에서 과연 거대한 괴물이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더 컸다.

호수에서 배로 이동 중에는 다행히 흐리기만 하고 비는 오지 않아 호수 면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볼 수 있었다. 종착지인 우르콰르트 성에 도달해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 성은 스코틀랜드 북부의 방어를 위해 13세기에 구축되었고, 현재는 대부분이 파괴되고 성의 잔해만이 남아 있다. 성안을 답사하고 성의 역사 기록을 방문센터에서 구경했다. 성을 출발하여 인버네스로 코치(coach, 버스)로 돌아오는 중간에 네스호 방문센터에서 괴물의 목격담 기사와 조사 및 탐사 역사를 기록과 영상으로 보았으나 괴물은 보지 못했다.

영국의 관광지를 방문해 보면 잘 정리된 역사 기록과 전시물을 접하게 되고, 역사 문화를 남달리 아끼는 선진국의 모델을 보게 된다. 인버네스- 네스호- 우르콰르트 성에 대한 안내 자료도 그 양이 풍부하고 방문센터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읽고 보기에도 상당히 많았다. 네스 강을 따라 보이는 오붓한 마을 경관, 자세한 관광지 소개와 친절함, 아름다운 호수와 성 주변의 경치를 잊을 수 없다. 언제 다시 생전에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지방 주변을 방문할 기회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네스호 방문기를 쓰기 위해 학회 참가 자료 파일들과 수집해 온 안내 책자들을 꺼내 보며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