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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의 성지와 화약고를 찾아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수필가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수필가
발칸반도의 소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 남부를 수년 전 방문했다. 보스니아는 인구가 400만도 안되는 작은 나라이나 종교와 민족 구성이 복잡하고,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로 둘러싸인 나라이다. 거의 400여 년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 이슬람인(44%), 세르비아인 (31%), 크로아티아인(17%)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종교도 이슬람교(40%), 세르비아 정교(31%), 가톨릭(15%)이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1992년 3월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보스니아 이슬람계(무슬림),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세력 간 내전(1992-95년)으로 20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종 대청소라는 최악의 민족 분규 지역이다. 종교 및 언어까지 다른 세 민족의 분쟁이었다. 현재는 협정에 따라 이슬람-크로아티아 연방, 스르프스카공화국(세르비아계)이 국가연합의 형태이다.

아드리아해 연안국인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관광도시인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해안도로 중간에 돌출하여 나온 보스니아 영토가 있다. 이 영토는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약 20km 연장되고 있다. 내륙국인 보스니아가 아드리아해와 접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이곳을 지나려면 크로아티아 국경에서 출국 신고를 하고는 다시 보스니아에 입국 신고를 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10여 분 이동하여 보스니아국경에서 출국 신고를 하고 다시 크로아티아 입국 신고를 하는 황당함에 가까운 경계 지역이다. 보스니아의 이 짧은 해안선에 작은 도시 네움(Neum)이 있다. 크로아티아는 이미 관광으로 널리 알려진 나라여서 이곳 네움에서의 숙식비는 크로아티아와 비교하면 절반 정도로 저렴하단다. 네움 숙소 옥상에서 보이는 석양이 절경이었다. 숙소 앞 아드리아 바다는 섬들이 워낙 많아서 해안이 마치 강줄기처럼 보인다. 네움 북쪽으로 성모 출현지라는 성지 메주고레, 발칸의 대표적 화약고였던 모스타르, 제1차 세계대전의 진원지인 수도 사라예보가 있다.
보스니아 남부 아드리아해 연안의 소도시 네움(Neum).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연결하는 해안선을 자르며 길이 20km의
보스니아 영토가 해안까지 돌출되어 있다(인터넷에서 인용한 지도에 네움과 메주고레를 첨가함).
네움의 해안가 주택과 석양.
네움 북쪽으로 성모 마리아의 출현지라고 알려진 메주고레(“산과 산 사이”라는 뜻)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1981년 6월 24일 여섯 명의 아이들(두 명의 소년과 네 명의 소녀)이 성모 발현을 목격하였다 하여 유명해졌다. 이곳이 성모 발현지라는 로마 교황청의 공식적인 인정은 아직 없으나, 2019년 5월 순례지로 승인했다 한다. 현재까지 로마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 발현지는 포르투갈의 파티마와 프랑스 남부의 루르드 이다. 보잘것없던 가난하고 작은 시골 마을이 성모 발현지라는 소문과 함께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교회가 들어서고 숙박 시설과 식당, 기념품점, 자동차 대여점 등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다. 사진에서처럼 표면이 청흑색인 5m 높이의 청동 금속 예수상의 다리 부분은 금속 고유의 노란색이 드러날 정도로 많은 순례객이나 방문객이 만지고 기도하는 곳이며 항상 대기 줄이 길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무조건 의식적으로 믿으려 할까. 여섯 명의 아이들이 성모 발현을 보았다는 소문이 과연 진실이고 사실일까. 신앙심이 부족한 나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우선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종교적 설득에 나는 머리를 흔든다. 이곳을 순례하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는 세계인들이 결코 논리가 없는 사람들이 아닐진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성모 발현지라고 찾아와서 믿음으로 기도하고 참배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데야 내겐 할 말이 없다. 보스니아 내전 때에도 주변은 폭격의 피해가 컸으나 메주고레 만은 주민과 성지의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내전 중에도 개인 순례자들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메주고레의 청동 예수상과 성 야고보 성당 앞 광장의 예배 장소. 순례객들이 예수상의 다리 부분을 만지며 기도하여 노란 금속 색깔이 노출되어 있다.
모스타르(‘다리 파수꾼’이라는 뜻)는 사라예보에서 남서쪽 120km, 메주고레에서 18km 북쪽에 위치하며 2천여 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낭만의 중세도시이다.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이주민과 보스니아계 무슬림 원주민이 평화롭게 공존하였으며 내전 이전에는 세르비아인도 상당수 거주했다 한다. 보스니아 남부지역인 헤르체고비나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세르비아 애국 운동의 중심지이며 1992년 내전이 있기 전까지 잘 나가던 도시였다. 민족과 종교분규 내전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인종청소 전쟁이 가장 참혹했던 곳이다.
모스타르의 네레트바강 주변의 아름답고 조용한 무슬림 마을 정경
모스타르는 16세기 중기에 팽창하는 오스만제국의 주요 이동 출입구로서 이슬람 전파의 거점이었다. 모스타르의 협곡을 흐르는 네레트바강 위에 오래된 ‘스타리 모스트’(‘오래된 다리’라는 뜻)가 있다. 이곳을 점령한 오스만제국이 길이 30m, 폭 5m, 높이 24m, 단일 교각의 아치형 이슬람식 석조다리를 1566년 완성하였다. 세계적으로도 공학적 놀라움 중의 하나로 평판을 받은 아름다운 다리였다. 발칸의 위대한 역사적 건축물이며 종교와 문화 연결의 상징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칭송했다. 이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무사했으나 축조된 지 427년 만인 1993년 11월 9일에 내전으로 말미암아 크로아티아 민병대에 의해 완전 파괴 되었다. 파괴된 이후 강을 경계로 동쪽에는 보스니아계 무슬림이 많이 거주하고, 서쪽은 크로아티아계가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이 다리는 유네스코 지원으로 2004년 7월 23일 16세기 이슬람식 형으로 복원되어 재개방되었다. 1,088개의 원래 다리의 부서진 조각들을 건져 올려 복원되었으며. “1993년을 잊지 말자(Don’t forget ‘93.)”라고 돌에 표시하였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관광과 다이빙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네레트바강 위의 ’스타리 모스트‘(‘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며 작은 사진은 인터넷에서 인용한 다리 전경임)와 다리 동쪽의 무슬림 지역.
스타리 모스트 주변의 기념품점. 다채로운 이슬람 색채의 문양.
보스니아에서 무력 충돌의 주요 원인은 언어와 종교가 다른 세 민족 간의 분규이다. 가톨릭교와 이슬람교 및 세르비아 정교의 뿌리는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뿌리는 구약성서의 아브라함이며 믿는 신은 같은 하느님이다. 종교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친절한 배려이다. 그런데도 인종청소라는 민족 분규와 내전은 다분히 정치적 목적으로 민족을 규합 단일화하려는 의도이다. 보스니아 내전은 죄의식도 없이 추진하는 맹목적인 민족주의와 영웅주의가 얼마나 무자비한 전쟁과 참혹하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해 왔는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에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