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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홍상수 영화의 어떤 경향들에 관하여
-홍상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




이수향
영화평론가



이수향
영화평론가
1. 홍상수 자신과 홍상수의 것

홍상수는 칸느 영화제의 잦은 호명을 받고, 로테르담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등에서 큰 상들을 수상했으며 국내의 주요 영화상 등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상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의 <<까이에 뒤 시네마>>가 해마다 뽑는 올해의 영화 목록에 가장 많은 작품을 올린 한국 감독이기도 하다. 그런데 흔히들 홍상수의 영화는 보지 않았어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도 다작인 홍상수 영화들의 개별성에 관해 물으면 <우리 선희>(2013)나 <옥희의 영화>(2010)를 헷갈리거나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2015)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의 내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태가 허다하다. 여전히 <생활의 발견> 정도의 홍상수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이들도 있고, 그래도 <우리 선희>나 <자유의 언덕> 까지는 따라온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일 년에 한 두 편씩 발표되는 홍상수 영화의 스텝을 숨가쁘게 쫓아오던 이들도 최근의 홍상수 영화들은 보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그 작품 세계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된 탓일까, 아니면 일련의 사적 논란들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인물들이 마주보고 앉아 술을 마시고 대화하며 상대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거나 감추다가 급기야 싸우기 일쑤인 홍상수식의 메타포가 이제는 동어반복의 클리세에 불과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즉, 여전한 대중적 무관심과 소비되는 가십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홍상수와 그의 영화를 가능케 하는 조건들은 무엇인가.

홍상수는 지금까지 총 24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며, 가장 최근에 개봉된 작품은 <인트로덕션>(2021)이다. 논의의 확장을 위해서 다소 성긴 방식이더라도 홍상수의 작품 세계에 관해 몇 가지의 특성들을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홍상수의 영화가 가지는 근본적인 미학은 영화라는 예술의 존재론적인 측면에 대한 질문과 작가의 해석으로 되짚어지는 영화만들기의 전유일 것이다.

주된 서사적 테마는 초기부터 일관되게 남녀상열지사로, 이를 위해 형식적으로는 구조주의적인 분할 체계를 자주 이용한다. 가령, 종종 영화 내부의 구조적 분할(<옥희의 영화>, <다른 나라에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두드러지게 현시하며, 영화 안팎의 연결(<극장전>), 시간의 뒤섞음(<자유의 언덕>), 꿈과 현실의 혼용(<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화면의 색감을 죽임으로써 오로지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하게 하는 방식(<오! 수정><북촌 방향><그 후><밤의 해변에서 혼자><그 후><강변 호텔>), 기억의 불완전성 (<자유의 언덕> <오! 수정>)등을 그려낸다. 한 영화 안에서도 마치 시처럼 구조적인 배열과 장면의 운용을 통해 리듬감을 유발하는 것인데, 영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조건들을 추출하고 재조직해서 다시 영화적 세계 안으로 집어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주로 사용하는 고정된 카메라의 관조적인 태도, 때때로 서사가 끝난 뒤에도 오랜 잔여감을 남기는 화면, 롱테이크, 다소 문어체적인 대사는 일반적인 방식의 관객의 영화적 흥미에 복무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기대를 위반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홍상수 영화에 대한 비평들은 대개 영화의 주제론적인 차원을 논하기는 하되 세부적인 디테일의 포착과 특정 장면을 놓고 의미부여(shot by shot)를 하는 방식의 독법은 피한다. 요컨대 홍상수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내러티브의 변별성과 오브제에 대한 의미부여를 우회하여 작가의 총체적인 작품 세계의 차원에 좀 더 방점을 둔 채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를 ‘차이와 반복’이라는 구조로 보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뻔한 분석틀이지만, 그의 영화가 자신의 영화를 다시 복기하고 파괴하고 변주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홍상수 영화들이 개별성을 띠면서도 배우와 상황 설정의 겹침, 전후편의 구조적인 상동성, 양식적인 특성들을 반복적으로 그려내면서 비슷비슷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특성들은 원천 텍스트에 대해 의식하고 이를 변형하며 그 가치론인 측면을 구성하는 ‘각색’ 작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즉, 자신의 원천 텍스트를 다시 복기하며 변형하는 일종의 각색처럼 홍상수의 영화들이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팔랭프세스트적palimpsestuous’1)주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팔랭프세스트적 주체는 원천 텍스트에 대해 의식하면서도 그 위에 새로운 의미를 덧씌우는 작업을 통해 반복되는 테마와 설정들을 증폭시키다가 다시 무화시키고 또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축하는 것으로 홍상수의 영화들과 겹쳐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덧씌움의 작업들을 반복함으로써 영화적 형식의 부차적인 것들은 점점 배제되고 다루고자 하는 형상이나 관념 그 자체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대사는 점점 간결해지고 어긋난 채 반복되며, 상황과 설정은 명료해져 인물들의 전사(前史)나 갈등의 요인들을 세세하게 전달하지 않는 경향으로 변모 한다.

이러한 태도는 비단 주제론적인 측면에서만 시도되는 것이 아니라, 촬영 기법이나 연출부의 구성, 음향과 자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난다. 초기 몇 작품 이후 고정된 카메라로 이동이 최소화된 촬영 기법을 추구해왔던 홍상수 감독은 급속한 줌인(Zoom-in)과 줌아웃(Zoom-out)을 두드러지게 사용하거나 디졸브(dissolve)로 장면 연결을 꾀한다. 이는 일반적인 영화 작법의 견지에서 상당히 어색한 장면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영화적 환영주의에 복무하는 영화들이 최대한 편집점과 카메라의 촬영 기법을 영화 내러티브 안에 숨겨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하는 것과는 달리 화면을 생경하게 만들고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가 보여주는 자기반영성은 환영주의가 포섭하는 관객 동일시의 문제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대중 영화에 친연성을 느끼는 관객 일반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적 구성주의와 형식미의 실험에 몰두해 작품 세계를 이어온 홍상수에게 영화의 수익성과 관련된 제작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곤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를 돌파해내기 위해 홍상수의 영화 제작 과정은 점점 간명해지고 있으며 감독이 맡는 역할은 연출, 각본, 촬영, 음악, 편집 등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만큼 엔딩 크래딧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영화의 불가능성의 물적 조건들에까지 실험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있는 양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린다 허천, 손종흠외 옮김, 『각색 이론의 모든 것』, 앨피, 2017, 50-51면.
2. 도망친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

몇 번의 변곡점을 거치며 이어온 홍상수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최근 가장 압도적인 현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배우 김민희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3월 13일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언론시사회 이후, 이전에도 영화 산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이던 홍상수 감독은 더욱 모습을 감추었다. 이전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던 배우들도 있었지만, 작품 세계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주기로 중요 배역을 맡는 배우들을 교체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이후 <인트로덕션>까지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지나는 동안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주요 여성 인물은 고정되어 있다. 각각 비슷한 이름2)의 이 여성 인물들은 흔히 홍상수의 영화에서 ‘수’자 돌림 남성인물들이 감독의 실제 정보와 겹쳤던 것처럼 실제 김민희가 처한 상황과 유비되는 설정들이 자주 등장한다.

두 사람의 사적 논란 이후, 특히 김민희가 베를린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는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실제와 많이 겹친다는 점에서 예술을 빙자한 자의식 과잉이나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다소 새삼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홍상수 영화에서는 언제든 감독의 자아가 의탁된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교란하는 대사를 던지곤 했던 것이다. 다만, 김민희의 등장 이후 그런 인물이 둘로 늘었다는 점에서 현실과의 유사성은 좀 더 증폭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홍상수 감독의 작품 세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지금은 김민희라는 현실이 당도해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김민희가 연기하고 있는 주로 ‘희’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들이 대부분 사랑에 실패해 있거나 애정 갈등에 얽혀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는 유부남 감독 상원과의 관계로 인한 소란을 피해 독일로 떠나와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인데 이미 두 사람은 헤어진 상태이다. <그 후>에서 아름은 출판사에 첫 출근을 했다가 사장 봉완과 그의 아내, 봉완의 내연녀 창숙과의 치정 관계에 얽혀 오해를 받아 봉완의 아내에게 뺨을 맞는다. <클레어의 카메라>의 만희는 ‘정직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칸느영화제 출장 중 갑작스레 해고를 당하는데, 상사인 양혜가 자신의 연인과의 관계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강변호텔>에서의 상희는 유부남이었던 연인이 그 사랑을 포기해버려서 상심한 채로 강가의 호텔에 묵고 있다.

이 여성 주인공들은 자신들에게 사랑이 이미 지나간 파도에 불과하다는 듯 굴지만 기실 그 사랑은 그저 잠복된 상태에 불과해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느닷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화를 버럭 내거나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며, 때로 상처를 준 당사자를 만나 왜 그랬는지 힐난하듯 따져 묻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인물들은 이전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나온 여성 인물들을 시기별로 크게 계열화했을 때 세 번째 단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의 다소 순진하면서도 속물적이며 솔직한 성격의 여성들은 다음 단계에서는 다소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존재처럼 그려지곤 했었는데 남성인물들에게 성적 호감을 주는 대상으로 꾸준히 존재했다. 다만, 남성인물의 구애-승낙의 과정이 초기 단계의 여성들보다 다음 단계의 여성들에게 좀 더 달성되기 어려운 목표였고, 그러한 변화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적나라한 성관계의 묘사가 사라지는 시기와도 맞물린다. 즉 내러티브적으로 남성인물들의 시급한 성적 욕망보다 여성들이 취하는 행동의 기호를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의 주체는 남성인물이며 여성은 관찰의 대상처럼 그려지곤 했다. 그런데 현재의 단계에 이르면 명백히 여성 인물의 심리와 그 내면적 혼돈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토대로 서사가 진행된다. 영희가 왜 겨울 해변에 나무 막대기를 꽂아 놓은 채 모로 누워 있는지, 아름은 처음 출근한 낯선 출판사에서의 봉변을 왜 쉽게 털고 나오지 못하는지, 만희는 왜 해고가 됐음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칸느를 헤매는지, 감희가 남편과 오 년동안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으며 너무 운이 좋다고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들이다. 이를 통해 여성 인물들은 연애의 상대로 정물화가 되기를 멈추고 고통의 자각 속에서 회오하는 윤리적 주체로 극의 중심에 서게 된다. 특히 영희는 실제의 배우가 처한 상황과 가장 가깝게 유비되기 때문에 배우가 가진 퍼스탤리티가 인물의 성격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비슷한 계열의 이 여성인물들은 <도망친 여자>라는 영화의 제목에 모두 수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 속 감희와 지인들의 대화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끝내 모른 척 덮어두고 있는 ‘도망’은 영화의 바깥에서 안으로 씌어진 설정인 것이고 ‘도망친’ 주체는 감희이다. 나아가 이는 홍상수 영화에서 같은 계열의 여성 인물들 모두에게 비슷하게 작용되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들이 등장하는 모든 영화는 ‘도망친 그 여자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실제 배우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이 인물들이 가진 예민함과 위태로움은 매우 영화적인 핍진성을 띄게 된다.

그리고 이때 여성 인물들에게는 그녀가 과거에 한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두둔해주며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여자 선배들이(주로 서영화나 송선미가 맡은 인물들)곁에 있다. 여성 인물에 대한 온정주의적인 시선을 담지해낼 서브 인물들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카메라의 시점은 한사코 ‘자전적’이라는 혐의를 부정하는 감독의 자기 방어 기제의 표현으로 보일 혐의가 짙다.

2)<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2015)의 희정,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의 영희, <그 후>(2017)의 아름, <클레어의 카메라>(2017)의 만희, <풀잎들>(2018)의 아름, <강변호텔>(2019)의 상희, <도망친 여자>(2020)의 감희, <인트로덕션>(2021)의 화가.
3. 호텔에 남겨진 아버지와 바다 앞에 선 아들

홍상수의 가장 최근작들은 홍상수의 영화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며 다소 징후적인 독법을 요한다고 볼 수 있다. <강변호텔>(2019)과 <인트로덕션>(2021)은 홍상수의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의식과 갈등 구도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강변호텔>에서 노년의 시인 고영환(기주봉)은 자신이 묵고 있는 강변호텔로 두 아들을 불러 만나고 우연히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상희와 연주를 만나 호감을 표하며 그들을 위해 쓴 시를 읽어준다. 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예술가인 노년의 남자 주인공이 서사의 전면에 배치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홍상수 영화의 남성 인물들은 대개 감독의 자아가 의탁된 것임을 상기할 때 실제 감독의 연배보다 높은 이 인물은 다가올 미래를 상징적으로 설정한 인물일 수 있다. 그러니까 노년의 아버지 영환이 미래에 포지셔닝 되어 있다면, 두 아들 경수와 병수는 감독의 현재에, 그리고 영환의 시에 등장하는 ‘소년’의 다음 세대의 전망으로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극 중 영환은 자꾸 졸고 낮 밤 없이 꿈을 꾼다고 토로하는데 홍상수의 영화(<하하하>, <자유의 언덕>,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잠과 꿈은 ‘죽음’과 연결된 메타포로 영환의 생물학적/존재론적 소멸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혼한 아내가 아들들에게 영환에 대해 말한 “인간으로서의 미덕을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괴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인간.”이라는 부분은 <생활의 발견>에서 인물들이 계속 실수하면서도 끊임없이 읊조리던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다짐이 결국 노년에 이르러 실패에 이르렀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앞서 ‘희’자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들이 사랑의 실패에 신음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였던 남성 인물도 결국은 괴물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자학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스토리의 시간과 담론 속의 시간, 그리고 담론을 만들어 나가는 시간의 체계가 어긋나게 배열되어 있어서 인물들은 현재에 있으면서 자꾸 과거를 소환하고 강변 옆의 흘러가는 시간 속에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미래의 어떤 시선이 당도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홍상수 영화의 남성 인물들이 늘 그렇듯 영환 역시 상희와 연주를 발견하고 아름답다는 찬사를 여러 번 반복하는데 이 때 영환의 태도는 치근거림이 아니라 예술적 영감의 대상을 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결말부에 영환의 죽음을 발견한 아들들이 놀라 소리칠 때 연결되는 장면이 침대에 마주 보고 누워 자는 듯 보이던 상희와 연주가 눈을 감은 채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부분은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영환의 죽음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에서 두 여성은 죽음을 미리 고지하러 온 예술의 수호천사인 것처럼 보이며 이로써 늙은 예술가 남성은 상징적으로 종결되는 것이다. 이 예술의 테제 변화에 대한 포착과 세대론의 함의는 <인트로덕션>에도 이어진다.

<인트로덕션>은 세 번의 챕터로 분절 되어 있다. 1은 아버지를 만나러 한의원에 간 영호가 아버지를 계속 기다리는 내용이고, 2는 독일로 의상공부를 하러 간 주원이 방세를 아끼기 위해 엄마와 함께 엄마의 옛친구인 화가의 집에 가는 내용, 3은 영호가 엄마가 불러서 나간 술자리에서 나이든 배우를 만나 연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영호와 주원은 이전의 홍상수 영화에서 주역을 맡던 배우들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얼굴이라 할 수 있다.3)제목인 <인트로덕션>에 관해서는 영화의 초반부에 자막으로 “인트로덕션의 소개, 입문, 서문, (새것의)도입 등의 뜻을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한국제목도 영어를 그대로 썼습니다.”라고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홍상수 영화가 또 다시 새로운 변곡점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선 영화 <강변호텔>에서 영환의 시 속에서 등장하는 남겨진 아이와 영호를 같은 배우가 연기하고 있음을 볼 때 전작의 문제의식 역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부자 관계가 또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영호와 만나기로 한 아버지는 자꾸만 아들과의 대면을 지연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원과 엄마의 모녀 관계도 등장하는데 엄마는 딸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예민한 태도를 보이고 주원이 독일까지 찾아온 영호를 보러 가겠다고 하자 “요즘 애들은 너무 충동적이야”라고 말한다. 영호와 영호 엄마의 관계도 등장하는데, 엄마는 연기 지망생이던 아들이 애정씬 촬영에 대한 거부감으로 연기를 그만둔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한다. 그러니까 영화 속 부모들은 자녀 세대와 미묘한 갈등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간 홍상수의 영화에서 가족 관계가 연애 문제를 대체하고 서사의 중심이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볼 때 이는 새로운 유형의 갈등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예술관의 차이에도 연결된다.

기주봉 배우가 맡는 나이든 예술가 남성은 홍상수의 최근작들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었는데, 가령 <풀잎들>에서 배우인 창수는 자살 시도후 거처할 방을 후배에게 부탁하나 거절 당한다. <인트로덕션>에서 나이든 배우는 영호엄마의 부탁으로 영호를 타이르기 위해 술자리를 갖는데, 여기서 두 사람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학생영화 속 키스 장면이 여자친구에게 미안하고 그런 행위를 가짜로 하는 게 잘못된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서 죄스러운 마음을 가진다는 영호에게 노배우는 극대노하는데 이는 예술적 표현의 윤리성을 문제 삼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유비로 보이기도 한다. 과거 예술은 예술인 그 자체로 신성시 되었으나 최근에는 예술적 행위에 대한 과도한 신비화로 면제되는 윤리적 함의에 대해 문제제기가 다양한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싸움에서는 연배가 높은 쪽이 큰 목소리로 윽박질렀기 때문에 영호가 술자리를 뛰쳐나가는 것으로 갈등은 종결된다. 그리고 차 안에서 잠든 영호는 꿈에서 해변가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옛 여자친구 주원을 만난다. 눈에 병을 얻어 잘 안보인다는 주원에게 영호는 걱정 말라고 내가 낫게 해줄테니 이리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혼자 누워있던 아름이 스텝을 만나던 장면과 비교되는데 그때 스텝은 위험하다고 거기 있으면 안된다고 말했고 아름은 자리에서 일어나 괜찮다고 말하며 혼자 걸어간다. 그에 비해 주원은 영호의 따뜻한 위로에 의해 이끌어내어 진다는 차이점이 있다.

홍상수가 열어보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힌트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있다. 영호는 갑자기 팬티만 입은 채 다소 충동적으로 추운 겨울바다로 들어간다. 포말을 향해 달려가다 넘어지는 영호는 웃으면서 덜덜 떨고 친구는 너무 춥겠다고 걱정하며 안아주는데 화면에 가득찬 두 사람에게 카메라가 잠시 머무른다. 영호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가 패닝하면 파도는 계속되고 한참 머물렀다 시선을 돌리면 바다를 보고 서 있는 영호에게 친구는 외투를 덮어준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채운다.

이 결말은 자기 작품을 각색해가며 작품 세계를 진화해 나가던 홍상수의 영화 세계가 해체주의적인 실험을 넘어 어느새 물질성의 직관적인 세계에 당도했음을 보여준다. 홍상수가 보여주는 자기반영적인 작품 세계는 스스로를 수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와 영화의 경계에서 변죽을 울리다가 어느새 또 다른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회의 없는 자의식을 가진 남성 예술가가 죽고 난 물가에는 무모한 듯 과감하게 뛰어드는 영호들이 마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소년처럼 거대한 생의 장력 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물적 환경에 대한 도전으로 영화의 외적 조건과 제작 환경을 점점 더 축소해 나가고 있는 홍상수식 미니멀리즘의 새로운 차원이자 영화의 불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실험이다. 홍상수는 다시금 스스로를 갱신하고 새롭게 변주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영호를 맡은 전석호의 경우 <풀잎들>에서 아름의 남동생역, <도망친 여자>에서 고양이 밥주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이웃집 남자역, <강변호텔>에서 시 낭송의 배경 이미지로 출연하긴 했지만 단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