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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짝사랑한 두브로브니크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수필가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수필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와의 인연은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권삼윤, 1999)를 통해서였다. 권 작가는 문명비평가로서 1996년 5월 처음으로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했다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약 5쪽에 걸쳐 두브로브니크 소개를 하고 있다. 1990년대 후기만 하더라도 크로아티아는 내게 낯익은 나라가 아니었다. 크로아티아는 1991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알려진 나라이다. 이 낯선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가 내게는 오래도록 짝사랑으로 남아 있었다. 이 도시 이름을 책을 통해 알고 난 후 20여 년 만에 처음 방문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아드리아해 해안선은 1,780km나 되고, 두브로브니크는 최남단 항구이며 가장 인기 있는 관광도시이다. 수도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 라스토케를 거쳐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이스트라반도, 자다르, 스프리트 등 여러 유명 지역을 관광하더라도 두브로브니크는 가장 마지막에 방문하라고 권한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 관광의 하이라이트여서 이곳을 먼저 보게 되면 다른 곳들이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르지 언덕(해발 415m) 전망대에서 보이는 성곽과 구시가지.
스르지 언덕에 있는 독립전쟁박물관 벽에 보스니아 내전(1991-1995)과 1991년 전흔 사진.
성벽 길 걷기와 성벽에서 보이는 주황색 기와 지붕 가옥들. 뒤로 국립공원 로크룸 섬이 보임.
두브로브니크는 중세 7세기에 도시가 만들어져 아드리아해에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유일하게 경쟁하던 해상무역 도시국가였다. 구시가지 모습은 13-14세기에 건설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두브로브니크 도시 전체가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특히 서유럽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소련 붕괴(1991) 후 크로아티아는 유고연방을 탈퇴, 독립을 선언하며 주권 국가가 되었으나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들과의 내전(보스니아 전쟁)으로 많은 인명 피해와 도시 건물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네스코와 여러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2005년 거의 완전히 복구되었고, 이제는 세계 최고로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어 있다.
성곽 동쪽에 두브로브니크의 옛항구.
성의 서쪽 필레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오노프리오 분수.–지금도 식수를 제공함.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 ‘만약 지상의 낙원을 보고 싶다면 두브로브니크로 오라’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코발트색의 아름답고 따뜻한 해변은 특히 서유럽 부호에게 인기라고 한다. 국내에서의 크로아티아 관광 붐은 지난 10년도 아니 되었다.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서 무려 1,240여 개의 섬이 있어 바다 같지 않고 마치 강이나 호수를 따라가는 듯한 곳이 많다. 해안도로는 왕복 2차선이며 곳곳에 아름다운 해안 마을이 펼쳐진다.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서면 먼저 옛 도시를 전망할 스르지 언덕(해발 415m)으로 오른다. 원래는 케이블카를 타는 게 운치가 있으나 관광 계절이어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 해서 봉고 버스에 올라 언덕 전망대로 오른다.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어서 바다와 주황색 지붕의 중세 구시가지와 성벽과 국립공원 로크룸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뒤편에 내전에 사용하던 요새가 독립전쟁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 만인가 하며 사진에서 자주 보던 구시가지와 성벽을 십여 분 내려다보며 내 눈 깊이 담는다.
성벽은 8-16세기에 걸쳐 축조되었고 두께가 1.5- 3m, 높이가 25m이다. 성벽 산책 길은 약 2km 정도이며 걷기에 그리 힘들지 않고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으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성벽 길의 절반 이상이 코발트 빛깔의 아름다운 바다를 면하고 있어 옛 항구와 로크룸 섬을 구경한다. 성벽이 구시가지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어 주황색의 기와지붕 거주 주택들과 역사 유적 건물을 눈에 넣기에 벅찰 정도로 즐길 수 있다. 어떻게 이리 통일된 색으로 지어져 있을까 감탄한다.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 수도원, 궁전 등 역사적 유적들을 즐길 수 있다. 성벽 길을 따라 걷는데, 절친의 말이 기억난다. 이 친구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 수년 전 지인들과 지중해 연안 크루즈여행을 다녀와서는 ‘어디를 가도 교회와 성당과 수도원이어서 지루하고 불편했다’ 했다. 유럽은 어딜 가나 기독교 문명임을 몰랐던 모양이다.
신시가지 서쪽의 성벽 문인 필레(Pile) 문을 들어서면 플라차(스트라둔) 대로를 따라 중세 도시로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필레 문 옆의 오노프리오 분수(15세기 초 건설 당시의 식수 시설이며 현재도 식수 제공)에서 동쪽 끝의 루자 광장까지 약 300m인 구시가 메인 도로는 번화가이며 대리석이 깔린 보행자 거리이다. 기념품 및 노천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좁은 골목길과 회랑 수도원, 종교박물관 등이 있다. 수도원 안에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근대 약국(말라 브라체)이 있다. 14세기 초(1317년)부터 수도사들이 주민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일반인에게 개방한 이래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이 약국에서 판매하는 화장품 <장미 크림>이 선물용으로 유명하다 한다. 거리의 동쪽 끝 루자 광장은 옛 항구로 연결되며, 광장 남쪽으로 대성당, 렉터 궁전, 성 블라이셰 성당이 보인다. 광장에는 종탑, 롤랑의 기둥, 스폰자 궁이 있다. 블라이셰 신부는 10세기부터 추앙받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으로서 이 구시가지 곳곳에서 그의 석상을 볼 수 있다.
플라차(스트라둔) 중심 거리. 동서 방향으로 약 300m 길이임.
구시가지 성벽 동쪽 옛 항구 앞의 해상국립공원인 로크룸(Lokrum) 섬을 돌아오는 한 시간 정도의 유람선 여행을 했다. 섬의 뒤쪽으로 돌아오면서 해변의 바위 주변 해변에 보이는 나체족이 관심거리이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큰소리로 놀라움을 표시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체촌을 수차 보기도 했고, 사람은 가릴 곳은 가려야 더욱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다. 이번 여행에서 바닷물 색깔이 연두색, 에메랄드 녹색, 파란 하늘색, 청색, 진한 청색 등 다양함을 새삼스레 느꼈다.
스트라둔 거리의 동쪽 끝 루자 광장. 사진의 오른쪽이 성 블라이셰 성당이고 중앙에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루자 광장의 스폰자궁(중앙) 북쪽 방향 뒤로 스르지 산이 보임.
두브로브니크는 동유럽 발칸에 위치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가장 비싸고 관광객이 많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한 국가이면서도 내가 방문했을 때는 기념품점에서 유로를 받지 않고 자국 화폐인 쿠나(Kuna)로 환전해 오라고 하였다. 너무 빠르게 자본주의화된 모습이었다. 다행히 영어로 소통이 되고 영어 관광 안내 책자가 있어 편했다. 1990년대 초중반 동유럽 지역을 방문하였을 때 영어 책자나 소개서가 없어 불편하던 기억이 난다. 수년 전 크로아티아를 일주일간 방문하며 체류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에 이곳에 다시 와야지 했는데, 느닷없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거의 2년간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다. 나는 “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며 여러 여행지의 아쉬움을 달래곤 했으나 잘 이루어지지 않곤 했다. 아드리아 해안 주변의 높고 파란 하늘과 강렬한 햇빛, 푸른 바다를 만끽하며 또 한 번 연안 길을 따라 남쪽 끝까지 여행하고 싶다. “이렇게 공기 좋고 아름다운 곳에서 한 달 정도 머문다면 수명이 연장되지 않을까”라는 자신감과 희망도 생기니 이것이 여행의 보람이 아닐까. 내 경험으로는 지중해 연안 지역은 겨울에도 날씨가 좋고 기온도 적당하여 번잡한 여름 여행보다는 겨울 여행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