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저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95학번이고요. 인텔런트 특허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유성원 변리사입니다.
Q. 변리사가 된 계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중국 전문 변리사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과학고에 진학하고 공대를 오게 됐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니 제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데 재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하이브리드한 재능을 갖고 있구나’, ‘문과와 이과의 겹치는 재능을 갖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변리사라는 직업이 기술도 알고 법률도 알아야 하는 전문 직종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요. 변리사 공부는 군 복무 시절 말년 병장 때부터 인터넷 강의 등을 통해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변리사 라이프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후, 아내가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저도 같이 중국에 가게 되었어요. 운이 좋게도 중국에 있는 로펌에 가자마자 바로 취직이 되었죠. 그때 당시만 해도 중국 관련된 지식재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또 중국이라고 하면 지식재산 분야의 불모지 같은 이미지가 있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 중국에 있는 IP(지식재산권) 로펌에서 실무 경험을 1년 이상 쌓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중국 관련된 아웃고잉과 인커밍 업무를 하는 사람이 전무했어요. 제가 중국에 갔다 오니까 되게 희소한 사람이 된 거죠. 때마침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떠오르고 중국 내에서 지식재산 보호가 갑자기 중요해진 시기가 됐어요. 그러면서 ‘내가 이제 중국 전문가로 계속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다니던 대형 로펌에서 나와 지금의 인텔런트 특허법률사무소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Q. 일하시면서 보람된 순간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변리사님을 열심히 일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제가 중국 상표 소송 일을 하면서 듣는 ‘53전 53승, 전승했다’와 같은 이야기들이 마치 트로피나 메달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는 그 53개 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수 있는 활로가 생겼고 그들의 사업과, 더 나아가서는, 다른 한국기업들이 중국에서 상표를 뺏기는 일들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거예요. 53개의 판례 덕분에요. 저는 한국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에 있어 작은 영역의 일을 했지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크게 열매를 맺는 결과를 낸 것 같아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Q.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공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A. 진짜로 즐거움을 느끼고 ‘나 이거 공부할 때마다 재밌다’ 하는 것이 내 재능과 연결된다면 그걸 선택하세요. 제가 이것저것 겪어보니, 커리어의 전문성이 꽃피는 시기는 4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까지가 전성기더라고요. 이때를 생각하고 진로를 결정하셨으면 좋겠어요.
Q. 서울공대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금까지 제가 중국과 관련된 일에 성과를 내왔던 것처럼, 저의 전문 기술영역들, AI, 통신표준특허, 엠펙 표준특허 등과 같은 영역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서 우리나라 이공계 인재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서울공대 동문 분들께서도 각자의 영역에서 건승하시고 빛나는 뉴스들을 많이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