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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희용 교수
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과학과


석희용 교수
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과학과


차세대 가속기


필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University of Maryland at College Park에서 플라즈마 및 입자빔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음.
UCLA에서 레이저-플라즈마를 이용하는 차세대가속기 연구를 수행했고, 현재 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음.

(1) 차세대 가속기란 무엇인가?

가속기는 전자나 양성자 등의 하전입자들을 고에너지로 가속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원래는 가속기가 핵물리나 입자물리 등 순수물리학 연구를 위한 도구로 개발되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의 산업, 암치료나 의료진단을 위한 동위원소 생산, 신소재나 신약 개발, 첨단과학기술 연구에 사용되는 방사광(synchrotron) 발생 등 매우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분야 노벨상 수상자들 중 약 20%가 가속기를 활용한 연구자라는 점에서도 전반적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중요성과 파급력을 헤아릴 수 있다.

가속기에서 전자나 양성자 등의 하전입자들을 고에너지로 가속하기 위해서는 전기장을 가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작은 크기에서 더 고에너지 입자들을 얻기 위해서는 최대한 강력한 전기장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공기중에서는 방전 때문에 약 3 MV/m, 고진공 속에서도 100 MV/m 이상의 전기장을 인가할 수 없다 (M=106). 따라서, 고에너지 가속기는 크기가 클 수밖에 없고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가속기를 거대과학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러한 거대가속기의 크기를 대폭 줄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존 가속기보다 훨씬 더 작은 크기에서 고에너지 전자나 양성자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가속기를 차세대 가속기라 하며, 세계적으로 차세대 가속기 개발을 위해 다양한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그림 1. 스탠포드선형가속기센터(SLAC)의 3.2 km 길이 전자선형가속기 모습. 2.856 GHz의 마이크로파를 가속관 속에 보내어 전자를 고에너지로 가속함.

거대한 크기의 가속기를 줄이려면 무엇보다도 가속 전기장의 세기를 대폭 증가시킬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가속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마이크로파(300 MHz~30 GHz)나 라디오파(10 kHz~300 MHz) 대신 레이저의 강력한 전기장을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레이저는 빛의 일종이고 전자기파인 빛은 전기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있는 빛과 레이저 광선의 다른 점이라면 그 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레이저 광선은 보통의 다른 빛보다 훨씬 더 세고 강력한 전기장을 가지고 있다.

그럼, 레이저가 가진 강력한 세기의 전기장을 사용하여 전자와 같은 가벼운 하전입자들을 가속하는 데 사용할 수는 없을까? 기본적으로 가능하다. 단, 레이저는 빛이므로 횡파이고 진행하는 방향과 수직으로 진동하는 횡파의 전기장을 사용하여 레이저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전자를 고에너지로 직접 가속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강력한 레이저 펄스를 플라즈마 속에 보내주면 해결될 수 있다. 원자가 이온화되어 전자와 원자핵으로 분리되어 있는 플라즈마 속으로 강력한 레이저 펄스를 보내주면 질량이 무거운 원자핵들은 거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반면에 질량이 가벼운 전자들은 즉각 밀려나서 진행하는 레이저 펄스 뒤에 일종의 플라즈마 파동이 형성된다. 이 현상은 마치 호수에서 배가 지나가면 물이 배에 의해 밀려나고 그 뒤에는 물결파가 만들어져 배 뒤를 따라가는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플라즈마 파동 속에서는 분리된 원자핵과 전자들 사이에 초강력 전기장이 생성되는데, 이 전기장은 레이저 펄스를 따라서 거의 빛의 속도로 진행하며 그 세기가 약 100 GV/m로 기존 가속기의 가속 전기장보다 약 1,000배 더 강하다(G=109). 거의 빛의 속도로 달리는 플라즈마 파동 속에 전자들을 입사시켜 주면 입사된 전자들이 기존 가속기에 비해 약 1,000배 정도 더 강력한 힘으로 가속되므로 기존 가속기보다 길이를 약 1,00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기존의 거대 가속기 대신 테이블탑 소형 레이저-플라즈마 가속기로 차세대 가속기 개발을 위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림 2. 레이저 펄스에 의해 발생되는 플라즈마 파동의 모습. 빛의 속도로 달리는레이저 펄스 뒤에
강력한 전기장을 동반하는 플라즈마 파동이 형성되고 그 속에 전자들이 주입되어 고에너지로 가속됨 [1].

(2) 차세대 가속기 개발연구 현황

레이저 플라즈마를 사용하는 차세대 가속기 개발 연구는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에서 주도하고 있는데, 2019년에 850 TW (T=1012)의 고출력 Ti:sapphire 레이저를 사용하여 세계 최고 에너지인 7.8 GeV 전자빔 발생을 보고하였다[2]. 이때 가속에 사용된 수소 플라즈마의 길이는 20 cm에 불과했으니 약 20 MeV/m의 기존 가속기의 가속 전기장에 비해 약 2,000배 더 강력한 전기장으로 가속시켰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전자가속 결과. 가로축의 단위는 GeV이고 7.8 GeV 정도의 최고에너지 전자빔을 얻었음을 보여주고 있다[2].


또한,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에서는 가속 전자빔의 에너지를 더욱 높이기 위해 여러 단계로 계속 가속하여 훨씬 더 높은 에너지를 얻기 위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영국과 중국 등에서도 고출력 레이저를 개발하여 이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광주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등에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특히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에서는 2013년에 1 PW (P=1015) Ti:sapphire 레이저로 3 GeV 전자빔을 얻었고[3], 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과학과에서는 플라즈마 소스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결과를 내고 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주먹만한 크기의 사파이어 가스셀은 수소나 헬륨 플라즈마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몇 가지 중요한 내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림 4. 레이저 플라즈마 가속기에 사용하기 위해 광주과학기술원 물리·광과학과에서 개발한 플라즈마 소스.


이와 같은 레이저 플라즈마 가속기는 단점으로 single-shot 작동에 전자빔 에너지의 불안정성 문제를 안고 있다. 2020년 독일 DESY(Deutsches Elektronen Synchrotron)에서는 이 측면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즉, DESY에서는 48 TW의 레이저와 4 mm 길이의 플라즈마를 사용하여 368 MeV 정도의 고에너지 전자빔을 1초에 한번씩, 24시간 이상 연속적으로 발생시켰던 것이다[4]. 이 연구 결과의 의미는 레이저 플라즈마 가속기가 기존의 기초연구에서 실용화로 바짝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전에는 쉽게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 서서히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3) 미래 전망

지금까지의 레이저 플라즈마 기반 차세대 가속기의 발전을 보면 머지않아 실용화되어 다방면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중요한 응용분야는 아마 테이블탑 차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를 비롯하여 세계 많은 곳에서 중요하게 이용되고 있는 방사광가속기는 모두 마이크로파를 사용하는 기존의 가속기이며 건설에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대형 가속기이다. 이와 같은 대형 방사광가속기를 레이저 플라즈마 기반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테이블탑 크기의 소형 방사광가속기로 개발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미 테이블탑 레이저 시스템과 플라즈마를 사용하여 수백 MeV의 고에너지 전자빔을 발생시킨 후 언듈레이터(undulator) 자석을 통과시킴으로써 발생한 soft X-ray로 물질의 미세구조를 분석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레이저 플라즈마 기반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는 펄스폭이 수 fs(1 fs=10-15초)의 지극히 짧은 X-선 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원자나 분자 같은 물질 속에서의 초고속 현상을 연구하는 데 매우 유용한 새로운 도구가 될 것이다. 전자빔 에너지를 수 GeV로 증가시키고 전자빔의 안정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반복율도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레이저 기술의 진보와 함께 미래에는 가능하리라 예상된다.

또한, 레이저 플라즈마 가속기 기반 자유전자레이저(free-electron laser)를 개발하려고 하는 시도가 세계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면 보통의 방사광가속기보다 훨씬 더 밝은 UV나 X-ray를 제공할 수 있는 테이블탑 방사광가속기가 출현하는 것으로 획기적인 과학기술적 진보가 될 것이다. 앞으로 현재의 대형 가속기 시설들이 소형 테이블탑 가속기로 진화하여 다양한 목적으로 웬만한 연구실에서도 보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1] Victor Malka et al., Principles and applications of compact laser-plasma accelerators, Nature Physics 4, 447 (2008).
[2] A. J. Gonsalves et al., Petawatt laser guiding and electron beam acceleration to 8 GeV in a laser-heated capillary discharge waveguide, Physical Review Letters 122, 084801 (2019).
[3] Hyung Taek Kim et al, Enhancement of electron energy to the multi-GeV regime by a dual-stage laser-wakefield accelerator pumped by petawatt laser pulses, Physical Review Letters 111, 165002 (2013).
[4] Andreas R. Maier et al., Decoding sources of energy variability in a laser-plasma accelerator, Physical Review X 10, 031039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