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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여행과 아쉬움이 된 보디 크림




김효철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김효철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새마을 운동이 한참 벌어지고 있던 1978년 정초 현대건설은 현대그룹 발전에 도움을 준 전국 대학의 관련 학과 학과장을 중동지역의 사업 현장으로 초청하였다. 나는 조교수로 갓 승진한 상태였으나 학과의 캠퍼스 이전 실무를 담당하고 있던 30대의 젊은 학과장이어서 초청 대상이 되었으며, 시찰단에 포함된 가장 젊은 교수 몇 사람 중 하나였다. 현대건설이 수주한 바레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사 현장을 두루 다니며 살피었다. 여러 분야의 교수가 방문한 현장에는 크고 작은 기술적 문제가 있어 여러 교수가 자연스럽게 자문에 응하였으며 더러는 현지 체류 일정을 연장하기도 하였다. 일부 교수는 여행 기간을 연장하였고, 80여 명의 교수가 일정 변경 없이 애초 일정에 따라서 귀국하게 되었다.

사우디 리야드 공항에서 출발하여 인도양을 지날 때 연세대 원로 교수 한 분이 찾아와 기항지인 방콕에서 일을 보고 하루 늦게 홍콩 일정에 합류하겠다며 탁송한 가방을 호텔로 함께 가져다 달라 하였다. 소속 대학은 달랐으나 가끔 낚시터에서 만나는 사이였으며 사우디 방문 기간에 이미 많은 참석자의 일정 변경을 현대중공업에서 처리하였기에 흔쾌히 요청을 수락하였다. 연세대 교수는 방콕에서 통과 여객의 무비자 일시 입국이 허용된다는 말에 충분한 협의 없이 방콕 일시 방문을 갑자기 결정하였다. 하지만 방콕에서 탑승할 항공기는 이미 출발하였고 Taipei로 뒤쫓아 갈 항공편도 예약하지 않은 상태여서 일시 입국이 허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법 여행자로 공항에 억류되었다.

공식 일정에 따라 순조롭기만 하던 나의 여행 일정은 짐을 찾아 홍콩 세관을 통과할 때부터 혼란이 일어났다. 내게 통관절차를 부탁하였던 연세대 교수의 여행 가방을 열어 보이라 하였는데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여 열 수 없었다. 세관에서 강제적으로 개방하겠다 하여 거절한 것이 의심스러웠던지 세관 검사대에 내 가방을 완전히 비운 뒤 세탁물까지 살폈다. 기념으로 땅콩 깡통에 담은 모래는 종이에 쏟아 펼쳐보았으며 숨겨진 마약이라도 찾으려는 듯 가방의 표피와 내피 사이를 일일이 더듬어 검사하였다. 까다로운 검사로 혐의를 벗고, 위임받은 짐을 세관에 보관시키고 짐 주인이 다음 날 출두하여 검사받기로 협의하고 풀려나기까지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하였다. 현지 주재원의 도움을 받아 세관에서 풀려나 밖으로 나왔더니 여행을 함께하던 일행이 40명 정도로 줄어 있었다.
현대중공업 홍콩 주재원은 내가 세관에서 어려움을 겪고, 밖에서 일행이 기다리는 동안 예정에 없던 연세대 교수의 갑작스러운 방콕 무비자 방문 시도로 방콕 현지 주재원의 재량권을 넘어 발생한 비용을 해당 교수에 청구하게 되리라 하였다. 그러나 주재원이 나의 통관절차를 도우려 세관 담당자와 접촉하는 사이에 홍콩 세관 밖에서 기다리던 일행이 방콕에서 일어난 일과 주재원에게 처리 방법을 전해 듣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홍콩 일정부터 발생하는 비용은 여행 참가자들이 자비 부담하라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였다. 홍콩 주재원이 늦어지고 있던 통관절차를 해결하려 세관 관계자와 협의하는 동안 40명 이상의 참석자가 현지 사정을 아는 몇몇 교수의 안내로 값싼 숙소를 찾아 이탈하였고, 나머지 40명 정도의 인원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홍콩 도착이 저녁 시간이었으므로 현지 주재원은 통관절차가 끝나는 시점에 근처 식당에 이동할 생각으로 예약한 상태였으며 음식도 주문이 끝나 있었다. 갑작스럽게 시간이 늦어지고 인원수도 줄어든 사태를 급히 해결하여야 하였으므로 주재원은 우선 남아 있던 인원을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게 하고 흩어진 일행을 찾아 저녁을 함께하려 하였다. 일행의 상당수가 한국 방문객이 자주 찾는 호텔에 자리 잡았으므로 쉽게 확인되었으나 대부분 일행은 저녁 식사를 끝낸 상태였다. 시간이 늦어져 저녁 8시가 지나서야 식당에 자리하였는데 참석인원은 40명을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현대중공업이 80명분의 고급 중국요리를 예약하였는데 9시가 지나고 40명 정도의 인원만이 식사하게 되었다.

10명 정도씩 원탁에 둘러앉았을 때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모두 허기진 상태여서 바쁘게 접시를 비웠다. 하지만 식탁에 올려진 음식 접시는 가장 젊었던 나의 손이 닿기도 전에 비워져, 마치 전채 요리로 나오는 작은 접시에 담긴 듯 느껴졌다. 예로 오리에 양념을 바른 후 연잎으로 싼 다음 진흙으로 씌우고 서서히 장시간 가열한 요리는 굳은 진흙을 깨트리고 오리의 껍질만을 먹는 요리였으나 설명도 듣기 전에 남김없이 해체되었고, 모두가 손에 들고 있었으나 나에게는 남겨진 것이 없었다. 모두가 허기진 탓이었다. 80인분으로 준비된 음식이 10접시 정도 비워진 후에야 나에게도 균등한 기회가 주어졌다. 접시가 바뀔 때마다 진기한 요리가 나왔고 나는 골고루 맛을 볼 수 있었으나 먼저 나온 요리로 허기를 달랬던 여러분은 요리를 눈으로 보는 데 그쳐야 했다.
식사 후 호텔에 돌아와 창밖으로 바다를 내려다봤을 때 눈에 들어온 풍경이,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보았던 영화 <모정(慕情)>에서 제니퍼 존스와 윌리엄 홀든이 묵던 방에서 내다보이던 풍경임을 깨우치며 무의식중에 주제가 “Love is a many splendid thing”을 흥얼거리었다. 잠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순간 다음날 계산할 호텔 비용이 걱정되어 함께 방을 배정받은 교수와 협의하여 아침 이른 시간에 방값을 두 사람이 나누어 미리 계산하였다. 여행 중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준비한 비상금에서 방값을 내고 남은 50$ 정도로 집에 가져갈 선물을 준비해야 하겠다.

백화점에서 화장품 판매장을 찾는 일행을 따라 들어가 집에 가져갈 선물로 적당한 화장품을 사려고 하였다. 형편에 맞추어 살 수 있는 적당한 화장품이 없어서 목욕 후 바르는 보디 크림을 샀는데 눈에 띄는 포장이었다. 저녁 시간에 다음날 귀국을 앞두고 짐을 포장하였는데, 일행은 사들인 화장품의 포장을 일일이 뜯어 짐을 꾸렸지만 나는 값싼 선물이어서 포장이라도 돋보이는 것이 좋아 보여 포장 상태 그대로 손에 들고 탑승하리라 마음먹었다. 짐을 다 꾸렸다고 생각하였을 때 홍콩 주재원이 방에 찾아와 호텔비는 초청자인 현대 측에서 내야 하는데 잘못 계산하였으니 영수증을 달라고 하였다. 주재원은 영수증을 현금으로 바꾸어 주려 하였으나 영수증이 필요 없으리라 판단하여 파기한 후였으므로 영수증을 제시할 수 없었다.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공항에 이르게 되었는데 현지 주재원이 나폴레옹 코냑을 들고 와 손에 쥐여 주며 비행기 탑승 시간 전에 해결할 방법이 없어 호텔 방값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코냑을 샀으니 귀국길에 가져가라며 양해를 구하였다.

갑작스럽게 방콕 방문을 결정하여 우리에게 생각지 못한 수많은 경험을 만들어 준 교수와 공항에서 합류하여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였던 교수도 방콕 공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원하던 일도 처리하지 못하였다며 일행에게 사과하였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서는 모두 입국 절차가 끝나는 대로 흩어졌는데, 나는 여행 가방 이외에 고급스럽게 보이는 코냑과 호화롭게 포장된 화장품을 손에 들고 있었기에 다시 세관에서 통관이 문제 되었다. 세관에서 여행 목적 등을 설명하였으나 화장품은 세관에 보관시키고 관세 고지서를 받고 입국하였다. 집에 돌아와 어렵게 준비한 선물을 세관에 두고 왔노라 하였는데 집사람은 고지서에 적힌 관세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국내에서 쉽게 살 수 있다 하여 준비한 여행 선물은 포기하였다. 후일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며 세관을 지날 때마다 오래전 “중동 여행과 아쉬움이 된 보디 크림”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