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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명반 사냥 이야기 마흔두 번째: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바람보다 먼저 웃는 풀

“김영동 – 먼 길”
LP(서울음반, 음반번호 : SPER-057)


1993년 개봉했던 영화 <화엄경>은 손에 잡히지 않는 뭔가를 찾아 술잔을 채우곤 하던 글쓴이에게 ‘진리’에 대한 길을 보여준 바 있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 선재동자는 외로울 때마다 소금을 빼어 분다. 소금 소리는 마음을 잃어 공(空)으로 향하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선재동자처럼 마음을 다스려 소리 속 진리를 찾고자 찾았던 곳이 ‘저사랑’이라는 대금동아리였다. 인심 좋고 허탈한 사람들과 배경에 개의치 않고 거나하게 막걸리를 나누며, 지저분할 정도로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을 쓸어 내듯 서로 질 새라 목 좋은 계곡 바위를 점령하며 한심할 것도 없는 고뇌를 내불러 재끼면, 나도 진리를 깨달아버릴 것만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대나무처럼 굳은 손가락을 꺾으며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로 처음 배웠던 곡들이 ‘누나의 얼굴’, ‘개구리 소리’, ‘어디로 갈거나’과 같은 국악동요였다. 김영동이 작곡한 곡들이다.

김영동(1951년 1월 29일~) 하면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다는 음반의 주인공으로 명상음악, 힐링음악 작곡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영동은 국악예고의 전신인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대금을 배우기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했다.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그는 인간문화재 김성진 선생에게 정악을, 한범수 선생에게 산조를 전수받아 아악과 민속악을 아우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김민기와 함께 소리굿 “아구”에 참여하고, 김지하, 황석영 등과 교류하면서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1970년대 문화운동의 현장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나가게 된다. 우리 음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대학 재학 때부터 국악 창작곡을 만들기 시작했고, 국악동요를 위주로 첫 번째 작곡발표회를 열었고, 연극, 무용음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국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TV 드라마 <아베가족>에 최초 국악 OST를 도입하고,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의 OST도 맡았다. ‘매굿’, ‘단군신화’와 같은 굵직한 ‘서사음악극’을 발표하며 대한민국 작곡상 국악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쓴이는 동심과 명상을 화두로 하는 김영동 음악을 즐겨 듣고 연주하곤 했는데, 그의 음반 <먼길>에 실린 “멀리 있는 빛”이라는 전혀 다른 색깔의 곡을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으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 적이 있다.

이 곡의 원제는 김영태 시인(1936년 11월 22일~2007년 7월 12일)의 “멀리 있는 무덤”이다. 1968년 6월 16일 교통사고로 향년 46세로 생을 마감했던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 김수영 시인(1921년 11월 27일~1968년 6월 16일)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시이다.

김영동은 이 시에 곡을 입히고 “무덤”을 “빛”으로 바꾸었다.

6월 16일 그대 제일(祭日)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
...
아직도 정결하고 착한 누이에게
시집 한 권을 등기로 부쳤지
객초라는 몹쓸 책이지
상소리가 더러 나오는 한심한 글들이지
...
표지를 보면 그대는 저절로 웃음이 날거야
나 같은 똥통이 사람돼 간다고
사뭇 반가워할거야
...
유치한 단청 색깔로
붓의 힘을 뺀 제자(題字)를 보면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
...
머리맡에는 그대의 깊은 시선이
나를 지켜 주고 있더라도 그렇지
싹수가 노랗다고 한마디만 해 주면 어떠우

김영동의 짙은 보이스는 거친 대금 소리와 함께 머리맡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김영태의 처절한 그리움을 표현하며 시인에 대한 추모를 완성하고 있다.

이 앨범은 김영동의 대부분 앨범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저가에 쉽게 음반을 구할 수 있다. 서울음반에서 1987년 LP(음반번호 : SPER-057)를 시작으로 CD(음반번호 : SRCD-3012)와 카세트테이프(음반번호 : SPEC-057)로 발매되었다.

김지하 시인은 어느 날 선술집에서 소개받은 김영동에게 대뜸 ‘풍각쟁이’라 일갈했다고 한다. 풍각쟁이는 집시처럼 떠돌이 삶을 살지만 음악을 업으로 평생을 살아간 예술인을 의미한다.

요즘 국악이 대중음악의 화두다. ‘미스트롯’, ‘풍류대장’, ‘슈퍼스타 K’ 등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국악을 장착한 재주꾼들이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 새로운 바람이 한때 인기몰이 재주꾼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국악으로 부딪쳐 볼 수 있는 모든 것과 부딪쳐 보겠다”고 선언하며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던 김영동과 같이 바람보다 먼저 웃는 풍각쟁이들을 잉태하는 소리길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동 – 먼길 CD(서울음반, 음반번호 : SRCD-3012)

김영동(金英東, 1951년 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