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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명반 사냥 이야기 마흔한 번째: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우크라이나에서 온 노장의 마지막 선물
Nathan Milstein (바이올린), Georges Pludermacher (피아노)
“The Last Recital”
LP 2장 (음반사 : Analogphonic (재발매), 음반번호 : PWC2L0008)


‘명반’을 찾아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대학 시절, 비 내리는 듯한 잡음 속으로 들려오는 거장들의 연주는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래서 왠지 깔끔하고 선명한 음질로 듣는 음악은 겉멋만 들고 깊이가 없이 느껴졌다. 아무리 거장들의 새로운 녹음이라고 해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게다가 진정한 음악은 아날로그 초판 LP에 담겨야 한다는 생각에 CD보다는 초판 LP 사냥을 떠났었다.

내게 이러한 편견을 깨게 해준 음반이 하나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나단 밀스타인(Nathan Miorovich Milstein, 1904년 1월 13일~1992년 12월 21일)의 마지막 연주회를 담은 CD였다. 음반이 발매된 1994년은 LP가 사장길로 들어서던 시절이라 이 앨범은 CD로만 발매되어, 아날로그를 고집하던 나도 어쩔 수 없이 투덜거리면서 CD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난 아직도 이 음반의 첫 번째 트랙을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나단 밀스타인은 미샤 엘먼, 에프렘 짐발리스트, 야샤 하이페츠 등 바이올린계를 주름잡던 기라성 같던 제자들을 키워낸 바이올린계의 최고의 스승으로 손꼽히는 레오폴드 아우어의 제자였을 뿐 아니라 1948년 콜럼비아 레코드사를 통해 세계 최초 LP를 발매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브루노 발터 지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녹음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왠지 내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그의 음반들도 내게 큰 인상을 주지 못했었다.

그러던 내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준 것이다. 그것도 CD로.

첫 번째 트랙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Kreutzer)”였다. 초반부터 거침없이 질주하며 격정적이지만 세련된 그의 연주는 잠시도 귀를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레프 오보린의 연주에 길들어져 있던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톨스토이는 베토벤을 좋아했고 특히 크로이처 소나타를 좋아해 동명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를 썼다. 후에 르네 프랑수아 자비에 프리네는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크로이처 소나타’ 그림을 남겼고, 에릭 로메르는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다. 소설에서 크로이처 소나타는 ‘치명적인 사랑을 부추기는 음악’, ‘파국으로 이끄는 음악’으로 표현된다.

어쩌면 베토벤이 이 곡을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조지 브릿지타워를 위해 작곡하고, 그와 함께 초연도 했지만, 여자 문제로 둘 사이가 멀어지게 되면서 뜬금없이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인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했다는 일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는 “크로이처 소나타”가 연인에게 가는 중 빗속에 마차가 진흙탕에 빠졌을 때 남자의 초조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노년의 밀스타인은 전혀 녹슬지 않은 초절기교로 냉정하면서도 날카롭게 연인에 대한 불같으면서도 차갑고, 긴장감 있는 감정을 그의 활에 담았다.

이 음반의 바흐 “샤콘느” 또한 깊은 감동을 주었다. 밀스타인은 1975년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최고 명반을 선사한 바 있다. 평소 연주회가 끝나고 앙코르로 “샤콘느”를 종종 연주했던 그의 마지막 연주는 깨끗하거나 심오하거나 서정적이지 않지만, 거장의 철학과 일생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음반은 독일 Teldec에서 1994년 초판 CD가 발매되었다. (번호 : 7 4509-95998-2 9 / LC 6019) 난 처음에 미국 발매반을 사서 듣다가 이 음반에 매료되어 독일 발매 초판으로 재구매하기도 했다. 그러던 2018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 앨범이 2장의 LP로 재발매된다는 것이었다. C&L 레이블의 신규 레이블이며 클래식 음반을 위주로 재발매하는 우리나라 아날로그포닉(Analogphonic)에서 발매한 것이었다.

밀스타인의 마지막 연주회는 1986년 7월 17일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그의 나이 82세였다.

그는 그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도 쌓아 올리지 못했던 경지를 이 나이에 보여주었다. 음반이 발매된 후 밀스타인은 “나는 더이상 기술적인 면에서 향상시킬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연인지 그는 다음 해 자동차 사고로 왼팔을 다쳐 더 이상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고, 1992년 12월 21일 타계했다.

우크라이나의 오데사는 역사적으로 명연주자들의 산실이었다. 밀스타인을 비롯하여 명바이올리니스트 미샤 엘만,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레오니드 코간 그리고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가 오데사 출신이다. 7세의 어린 밀스타인은 오데사에서 동네 친구들을 괴롭히는 개구쟁이 짓을 그만두도록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연일 뉴스거리이다. 전쟁의 포화로 제 2의 밀스타인의 꿈이 짓밟히지 않기를, 그의 음악이 파국이 아닌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염원한다.

나단 밀스타인 (Nathan Miorovich Milstein, 1904. 1. 13~1992. 12. 21)
마지막 연주회에서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는 나단 밀스타인
출처 : nathan milstein last recital - Google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