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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햄릿 성’을 찾아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수필가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수필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희곡 『햄릿』의 제1막 제1장의 첫 문장이다.
“엘시노어 성. 성벽 위 초소 오른쪽 왼쪽에는 망대로 통하는 문이 있다.---(중략)”

『햄릿』의 원제목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극』이다.
엘시노어 성은 덴마크의 어디에 있을까? 엘시노어(Elsinore)는 헬싱외어(Helsing∅r)의 영어식 표현이다. 헬싱외어는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북쪽으로 기차로 50분 정도 걸린다. 거리상으로는 해안을 따라 약 40km 떨어져 있는 작은 항구이며 중세 바닷가마을이다. 엘시노어 성이란 이 마을의 크론보르(Kronborg, ‘왕관의 성’이라는 뜻) 성을 의미하며 일명 “햄릿 성”이라고 불린다. 헬싱외어 역 앞은 바로 부두이고 대형 여객선이 정박해 있었다. 노르웨이로 가는 크루즈 선이다. 햄릿 성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이십여 분을 걸어야 했다. 겨울 바닷바람이 매서워서 외투 자락을 여며야 했다.

나는 수년 전 12월 하순에 코펜하겐을 방문했다. 덴마크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세 관광지는 인어공주 동상, 안데르센 생가, 햄릿 성이다. 햄릿 성은 매년 수많은 셰익스피어 순례객들이 방문하는 명소이다. 이 성은 발트해와 북해가 만나는 절묘한 장소에 있다. 이 성의 해자는 발틱해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있다. 바닷물은 흑색 내지는 짙은 녹흑색으로 보였다. 햄릿 성에서 동쪽으로 외레순(∅resund) 해협 넘어 마주 보이는 스웨덴 영토 헬싱보리(Helsingborg)는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깝다. 성 밖에는 좁은 해협을 향해 배치된 하늘색의 대포와 흑색 대포알이 인상적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그 역사를 보여 준다.

이 성은 초창기인 1420년 크로겐(Krogen) 요새로 출발하여 프레데릭(Frederik) 2세(1534-1588 생존,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재위 1559-1588)에 의해 1574-1585년 크론보르 성으로 이름이 바뀌며 축조되었다. 국왕은 성 동쪽의 좁은 해협을 통제하며 선박들의 통과세를 받아 번영 시대를 구가하였다.
덴마크의 중세 바닷가마을 헬싱외르(엘시노어)에 있는 크론보르 성(햄릿 성).
헬싱외르 기차역과 역 앞 부두에 크루즈선이 보임. 멀리 햄릿 성이 보이며 바닷가마을.
햄릿 성의 해자는 발틱해의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있음. 성 내부로의 출입문.
햄릿 성 앞의 외레순 해협. 건너편의 스웨덴 헬싱보리가 보일 정도로 가장 가까운 해협. 해협을 향해 배열된 대포와 대포알.
코펜하겐은 15세기 중반 이래 덴마크의 수도였다. 셰익스피어 시대(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에는 이 엘시노어(헬싱외어)가 워낙 유명하여 덴마크의 수도로 여겨질 정도였다 한다. 프레데릭 국왕은 이 성의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외국학자 및 예술가들을 접견하고 건축 음악 과학 법정 관리 등의 르네상스 신지식을 습득하는 등 학문 예술의 지대한 후원자였다. 16세기 후반기에는 덴마크왕국이 북유럽의 강국이었고 영국과 외교 활동이 많았다 한다. 국왕이 머무를 때는 이곳에서 통치가 이루어졌고, 당시 사용하던 많은 가구와 실내 시설이 남아 있다. 집무실, 서재, 침실, 창고와 특히 북유럽에서 가장 넓다는 길이 62m의 대연회장 시설과 많은 회화 작품과 태피스트리(벽걸이 천) 등이 설치되어 있다. 성안 지하에는 위기 때마다 덴마크를 지켜주는 전설적 바이킹 전사 홀거 단스크(Holger Danske)가 암흑에서 자고 있다.
햄릿 성 내부와 길이 62m의 대연회장. 햄릿 공연(1954)에 참석한 왕실 가족. 햄릿으로 분한 젊은 시절의 영국 배우 리차드 버튼(1925-1984).
비극 『햄릿』은 이 성이 무대이나 햄릿은 실존 인물이 아니며 이 성에 산적도 없다. 또한 셰익스피어가 이 성에 왔다는 기록도 없다. 이 성은 프레데릭 국왕이 1572년 결혼한 소피(Sophie) 왕비를 위한 결혼 선물이었다 한다. 사방 80m x 80m 크기로서 사암으로 축조되었고 르네상스 스타일로 북유럽의 아름다운 성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국왕과 소피 왕비의 행복한 결혼과 이 성에서의 향연 소문은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를 살아간 셰익스피어(1564-1616)에게 창작의 영감을 준듯하다. 『햄릿』은 크론보르 성이 완성된 직후인 1601년 무렵 탄생했는데, 이 작품은 덴마크 국민사에 나오는 설화를 극화하였다고 한다.

햄릿 성은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이 성은 1629년 화재로 완전 소실되기도 하고 스웨덴과의 전쟁으로 파손되기도 했으나
1924년 현재의 모습이 이루어졌다 한다. 이 성에서 1816년에 처음 햄릿 공연이 있었고 매년 여름 셰익스피어 연극축제가 열리고 있다. 젊은 시절의 로렌스 올리비에(1907-1989), 리처드 버튼(1925-1984) 등 낯익은 명배우의 열연 사진 패널이 걸려있다. 덴마크 왕족이 관람했다는 1954년 사진도 보인다.
『햄릿 성과 셰익스피어의 엘시노어』
햄릿 성으로 가기 위해 코펜하겐에서 숙소를 출발할 때 보슬비가 내리는 서늘한 날씨였다. 성에 도착하여서는 흐리고 맑기를 반복하더니 오후에는 다시 비가 내려 북해와 발틱해 부근의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보여 주었다. 코펜하겐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맑은 날은 하루뿐이었다. 이곳 겨울은 오전 8시가 지나야 밝아 오고 오후 4시면 이미 어두워져서 날씨에 따른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남아 있다. 북유럽은 음식값, 주거비, 교통비 등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를 들면 식당에서의 햄버거 요리가 우리보다 세 배 가까이나 비싸 놀란 기억이 있다.

코펜하겐 시내 미술관에서 영어책 『햄릿 성과 셰익스피어의 엘시노어』(Hohnen, D., 2000, Hamlet’s castle & Shakespeare’s Elsinore. 110p., Gyldendal)를 구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