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수필가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수필가
수년 전 8월 중순 터키 중남부 내륙의 카파도키아(Kappadokya)를 방문했다.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 방향으로 220km 거리이며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린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불가사의한 암석 구조로 유명하여 터키 관광여행에
포함되는 필수 코스이다. 나는 전공 상 다양한 지층과 암석 구조에 익숙한 편이지만 카파도키아의 특이한 암석 구조를 보며 자연의 신비에 놀라곤 한다.
카파도키아란 지명은 BC 257-54 기간 200여 년간 유지된 카파도키아 왕국의 이름이라 한다.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는 기괴한 암석 모습 및 수많은 석굴과 대규모의 지하 동굴이 특징이다.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고원 중부의 황량한 화산지대에 있다. 아나톨리아는 소아시아에 있는 “태양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 지역은 해발 800-1,200m 고도의 유목민의 땅이며 실크 로드의 문턱이다. 300만 년 전의 화산 폭발로 인해 대량의 화산재와 암석 파편이 퇴적 고결된 응회암(tuff) 분포 지역이다.
카파도키아 중심부의 괴레메(Göreme,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의미) 계곡은 이러한 응회암층의 오랜 침식과 풍화로 형성된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는 해발 1,000- 1,300m의 계곡으로서 세계불가사의에 속한다. 괴레메 야외박물관 전경에는 5-12세기에 걸쳐 종교 박해를 받아 온 기독교인들이 만든
30여개의 석굴 교회와 내부에 프레스코 성화가 있다. 지상에 노출된 석굴은
수도원 및 교회, 거주지 및 곡물 저장소로 이용되어 왔다 한다. 괴레메 부근 젤베(Zelve) 야외 박물관에서는 응회암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
침식과 풍화를 받아 형성된 버섯이나 죽순 모양 또는 남근(男根) 모양의 기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는 환상적인 지형을 이루고 있다. 원추형 기둥 상부에는 한 덩어리의 검은색 현무암이 덮고 있다. 이 기둥들은 평균 30m 높이이고, ‘기괴한 요정의 나라’, ‘요정의 굴뚝’, ‘신이 만든 대자연의 조각전’이라고 표현한다.
카파도키아 남쪽에 데린쿠유(Derinkuyu,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 지하 도시가 있다.
카파도키아에는 약 36곳의 지하도시가 있으며 가장 유명한 곳이 데린쿠유이다. 지하 도시 일부는 약 4,000년 전인 히타이트 시대까지 거슬러 가며, 기원전 7세기까지 사람들이 거주했다 한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종교 탄압을 받던 기독교인들이 피신한 지하 공간으로서 지하 20층 규모이고 2만여 명을
수용 가능하며, 현재 지하 8층까지 공개되고 있다. 최대심도는 82m이다. 지하 공간에 교회, 기도실, 가축우리, 부엌, 창고, 마구간, 포도주 저장고, 시체
저장고, 학교, 가축농장, 감옥까지 있는 지하 도시이다.
지상에서 농사를 짓고 생활하다 전쟁 시에는 가축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대규모 지하 공간이었다. 1960년 한 농부가 도망간 닭을 쫓아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한다.
수많은 미로와 굴로 인해 한번 들어가서 길을 모르면 찾아 나올 수 없는 복잡한 석굴 구조이다. 지하 굴에는 거대한 맷돌바위가 있어 적이 침입하면 굴을 막는 방어 역할을 했다. 데린쿠유에서는 인간 삶의 역사이자 뜨거운 생존 투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지하는 보통 섭씨 15도를 유지하는 쾌적한 장소여서, 현대에도 지하 공간의 활용성이 강조되고 있다. 데린쿠유는 대표적으로 자주 인용되는 역사적 지하 공간 유적지이다.
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석굴을 굴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응회암의 물성 때문에 가능했다. 응회암은 화산 분출물인 화산재(분진이나 모래)나 쇄설성 암편
(보통 4밀리 이하 크기의 뜨거운 열로 파쇄된 암편이며 유리질 물질, 광물질 및 암석 파편으로 구성됨)이 퇴적되어 고결된 암석이다. 암석 표면은 쉽게
긁히고 구멍을 낼 수 있는 무른 암석이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나 쉽게 굴착할 수 있어서 다양한 규모의 석굴이나 지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암석 색깔은 담회색, 핑크색, 담녹색, 노란색 내지는 갈색을 띤다. 응회암은 풍화되기 쉬운 암석이어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러한 기암괴석 구조도 파
괴되거나 변화될 것이다.
카파도키아 괴레메 협곡의 장관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열기구 타는 투어가 있다. 내가 방문한 당시(2014년 8월 중순) 일인당 승선비가 160-180
유로이었다. 부부 한 쌍이 타면 승선비가 한화로 50만원이나 되나,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라 하여 열기구 투어를 신청한다. 바람이 없을 때 비행해야 해서 보통 해뜨기 전 새벽에 한 시간 정도 비행한다. 비행하는 열기구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워낙 많을 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괴레메 협곡의 장관을 볼 수 있어 거금을 소비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 시기가 8월 중순 한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발이 높은 탓인지 그리 덥다고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