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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종교로 굴절된 가족 이데아의 연대기
-영화<세자매>




이수향
영화평론가



이수향
영화평론가
올해 주요 영화상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과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은 <세자매>(2021)의 문소리배우에게 돌아갔다. 코로나 시국 내내 영화계가 위축되어 있어서 눈에 띄는 영화가 적은 가운데서도 <세자매>는 큰 스코어는 아니지만 눈 밝은 관객들의 지지와 평단의 관심을 모은 영화였다. 언뜻 <세자매>라는 제목은 이 영화가 자매들을 다룬 <작은아씨들>류의 영화처럼 말랑말랑한 영화일 것을 기대하게 하지만, 이승원 감독의 전작들을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결코 녹록하지 않을 것임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승원 감독은 전작 <소통과 거짓말>(2015)에서 ‘장선’의 기이한 성적 행각과 인물들의 자기파괴적인 양상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냈고, <해피뻐스데이>(2016)에서 장애인, 트렌스젠더 등 흔히 약자로 얘기되는 존재들까지도 무자비한 가족의 내력 안에서 불편한 블랙코미디로 그려냈다. 그에 비하면 이 영화는 이승원 감독의 전작들보다는 비교적 대중들에게 접근가능성이 높은 편이라 볼 수 있다. <세자매>는 이승원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는데 부인인 김선영배우가 엎어져가는 이 프로젝트를 살려내 문소리 배우의 공동 제작과 프로듀싱으로 완성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희숙, 미연, 미옥 세 자매는 기혼의 유자녀 여성들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첫째 희숙(김선영)은 꽃집을 운영하며 낡은 아파트에서 반항기 많은 딸과 함께 사는데, 가끔 나타나 돈을 뜯어가는 남편에게나 사람들에게 늘 쩔쩔매며 초라하게 산다. 둘째 미연(문소리)은 교수인 남편과 두 아이들을 두었으며 신도시의 새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교회의 성가대를 지휘하며 중산층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셋째 미옥(장윤주)은 청과물 가게 사장인 남편과 남편의 고교생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연극판에서 희곡을 쓰는 작가지만 쓰여지지 않는 글 때문에 괴로워하며 항상 술에 취해 있다.

세 자매가 화면에 처음 등장할 때, 카메라는 <소통과 거짓말>에서 ‘장선’의 등 뒤를 집요하게 따라붙던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등 뒤에서 위치하며 핸드 헬드로 흔들린다. 이러한 카메라의 무빙은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 일종의 ‘시선(gaze)’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요컨대 영화의 전반부는 자매들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의 여러 양태와 어려움을 관조적으로 전시하는 데에 치중한다. 후반부로 가면 이들의 고통의 근원에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놓여 있음을 암시하면서 그것을 인식론적 차원에서 끌어올릴 것이냐 아니면 수면 아래 잠복한 상태 그대로 둔 채 살 것이냐의 태도 앞에 이들을 서게 하는 것이다.
답보 상태인 인물들의 삶의 양태가 과거라는 알리바이를 통해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핵심 서사는 둘째 미연(문소리)을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수면 아래 묻어 둔 상처의 기억이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는 인물은 둘째 미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개신교의 신앙과 문화 속에 완전히 매몰된 채 살고 있는데, 종교가 주는 인식론상의 단순성과 일관된 교리적 질서, 안정된 공동체 안에서 언니나 동생에 비해서 비교적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첫 장면부터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흑백 시퀀스들-어린 미옥의 손을 꼭 잡은 채, 아빠에게 맞아 상처가 생기고 멍이 든 언니와 남동생 진섭을 바라보는-의 시선의 주체가 미연이라는 점에서 부친의 가정폭력을 가장 정확히 기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미연의 그러한 인식은 꾹꾹 눌러 삭히는 화와 교양 있는 낮은 목소리의 외피를 뚫고 뛰쳐나와 결국 부친에게 ‘사과’하라고 외치게 만든다. 언니 희숙에게도 ‘미안한 일도 없는데 미안해 하지말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미연은 이 영화의 주제론적인 측면을 가장 명징하게 발화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서사를 쌓아가는 리듬은 종종 돌출되는 인물들의 대사나 태도 때문에 불균질하게 느껴진다. 요컨대 전작에서 감독이 보여준 그로테스크함이 주로 성적인 방만함이나 폭력의 선정적인 제시로 구성되어 왔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종종 불편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된다. 특히 제일 어렵게 사는 첫째 희숙(김선영) 캐릭터를 그리는데 있어 그녀가 가진 수세적인 제스춰와 비굴한 웃음, 남편의 극심한 폭언에 대한 반응 등에서 잔혹연극의 일종처럼 느껴지는 캐릭터의 과잉이 있다. 이는 배우의 뛰어난 연기로 인해 더욱 증폭되는데 연극을 베이스로 오래 활동해온 배우 개인에게는 연기 폭넓음이 부여된 것이고 배우는 이를 훌륭히 수행해냈다. (김선영 배우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비롯,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부일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받을 수 있는 연기상은 모두 받았다.) 다만, 희숙 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전체적인 인물들의 밸런스의 측면에서 지나치게 소모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에 비해 셋째 미옥(장윤주)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방식은 또 다른 측면에서 문제적이다. 미옥과 그의 남편 그리고 남편의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아들은 이 영화에서 비교적 코믹한 장면에 많이 등장한다. 두 언니에 비해 과거의 상처의 그늘이 별로 보이지 않는 미옥의 괴로움의 근원은 ‘글’을 쓴다는 것, 즉 예술가로서의 에고에 있다. 미옥은 대개 술에 취해 있으며 신경질적인데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를 오가면서 널을 뛰는 감정을 보여준다. 간혹 기분이 좋을 때는 남편이나 아들에게 뜬금없는 말과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술’이라는 면피성 의미부여가 이 인물을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로 만든다. 나아가, 이 미옥이라는 인물에게 ‘엄마’라는 명목에 대한 집착을 추가하고, 이전까지의 행동들을 형편없는 요리 실력 등 몇 가지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로 손쉽게 마무리하려고 했던 점도 아쉬운 설정으로 보인다. 인물의 성격적 개연성이 비교적 단순하게 전환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둘째 미연과 미연의 가족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의 ‘아비투스’(Habitus, 부르디외의 개념으로 특정 계급과 계층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공유되는 문화적 상징의 성향 체계)와 관련된 많은 디테일들이 대사나 행동의 차원에서 핍진성 있게 제시되어 흥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결말은 영화 <밀양>처럼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신에게 용서를 비는 종교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를 위해 영화의 결말 부분은 개신교적 안온함을 배경으로 삼아 마련된 부친의 생일잔치라는 난장을 향해 나아간다. 이 생일 잔치에서 모든 배면의 분노가 쏟아지고 자매들의 상처의 근원이 폭로된다는 점에서 절정에 이른 연극무대처럼 구성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치달은 분노는 부친의 '유리벽에 이마 찧기'라는 자기징벌적 제스춰에서 커트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해변 장면에서 딸들이 웃으며 일상적인 톤으로 부친을 언급함을 통해 이 갈등이 너무 쉽게 처리된다. 영화 전반적으로 깔린 문제의식에 비해 이전에 미연에게 희숙이 했던 말처럼 ‘가족이 역시 제일이다’로 결말이 다소 단순하게 봉합되는 부분이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또한, 조롱하듯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여기저기 배치하면서도 끝내 미연의 종교가 철회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장로로 변신한 부친의 행동이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노년의 부친에게 새로이 놓여 있는 종교적 위상이 유지되어 끝내 그 이데아가 손상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 세 자매를 통해 드러내는 주제론적 측면은 여성에서 폭력으로 그리고 종교로 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결말은 가족 멜로드라마적 이상이라는 다소 모호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