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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명반 사냥 이야기 서른아홉 번째: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금관(金冠)이 대신한 가시면류관
“金冠(금관)의 예수 < 抵抗의 노래모음 >”
LP (제작 :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선전국, 발행 : 재일한국청년동맹, 음반번호 : SS-3593)


1970년 잡지 사상계(思想界)에 실은 담시(譚詩) ‘오적(五賊)’으로 세상을 신랄하게 비꼬아 반공법 위반으로 수배 생활을 하던 김지하 시인에게 교회의 자기비판이 담긴 희곡을 써달라는 주문이 들어온다. 훗날 서강대 총장을 지낸 박홍 신부였다.

이렇게 해서 김지하는 캄캄한 겨울에 거리로 내몰린 거지, 문둥이 그리고 창녀를 돕는 수녀와 이들을 등쳐먹는 악덕업주와 경찰, 이들을 외면하는 대학생과 신부 그리고 시멘트 감옥에 갇혀 금관을 쓴 예수를 등장인물로 1971년 희곡 <금관의 예수>를 탄생시킨다. 예수가 썼던 가시면류관 대신 금관을 씌워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비판하며, 가난한 자와 병든 자, 힘없는 자를 위해 아낌없이 주었던 예수와 달리 몸집 키우기와 권력의 편에 선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꼰 것이었다.

김지하는 김민기에게 이 희곡을 위한 동명의 곡을 부탁했고 김민기는 원주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곡을 완성한다. 그리고 1973년 원주 가톨릭 회관에서 초연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금관의 예수’의 결과는 가혹했다. <오적필화>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나라 안팎의 구명 운동으로 석방된 김지하는 다시금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카투사로 미8군에 입대했던 김민기는 최전방으로 옮겨졌다. 노래는 방송금지 판정을 받는다.

‘금관의 예수’는 1976년 ‘오 주여 이제는 그곳에’로 제목을 바꾸고 가사의 일부분도 바꾼 채 양희은의 캐럴 음반에 실리게 된다.

개사하지 않은 양희은의 원곡 ‘금관의 예수’는 ‘지하저항의 노래’라는 부제를 단 <금관의 예수> LP에 실려 일본에서 비공식적으로 발매된다. 제작은 유신독재에 반대하여 1973년 일본에서 결성되었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였다. 앨범 표지는 새벽의 여명을 담았다.

A면에는 양희은의 ‘금관의 예수’, ‘작은 연못’, ‘행복의 나라’, ‘길’, ‘가난한 마음’, ‘바다’, ‘서울로 가는 길’, ‘아침이슬’ 등 총 8곡을 수록했고, B면에는 김민기의 ‘친구’, ‘푸른 하늘’, ‘바람과 나’, ‘누가 보았을까’, ‘꽃’, ‘여러갈래길’, ‘그날’, ‘종이연 날리자’ 등 총 8곡을 수록했다. 모두 새롭게 녹음한 것이 아닌 기존에 금지된 음반에서 복각한 것이었다.

이 음반은 1978년 이후에 발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 존재 여부 자체에 격론이 오갈 정도의 전설적인 희귀음반으로 경매사이트에서 560만 원 이상으로 낙찰된 바 있다. 세상을 조롱한 곡을 담은 음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필자도 중고 LP 가게에서 상태 좋은 것을 당시 기준으로 거금을 주고 샀지만, 이 정도까지 높은 가격대가 형성될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금관의 예수’와 ‘서울로 가는 길’은 1978년 일본 여가수인 나카야마 치나츠가 리메이크하여 싱글음반을 발매하기도 하였고, 김민기가 부른 ‘금관의 예수’는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연극 “금관의 예수” 중에서’라는 제목으로 1993년 그의 3집에 실렸다.

제 1 장
막이 오르면...
한국 1971년 겨울. 청회색의 음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삐에따의 예수상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무대 중앙에 작은 탁자. 탁자 위에는 검은 표지의 거대한 성서. 탁자 좌우에 검은 옷의 신부와 수녀. 서로 말없이 노려보며 꼼짝 않고 앉아 있다. 기타소리와 함께 노래소리가 들린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 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로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 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 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차디찬 세상 더는 못 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분,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어느덧 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어쩌면 <금관의 예수>에서 오른 막은 아직도 내려지지 못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어디선가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은 외면받고, 박해받는 의로운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은 듣는 이 없는 공허한 울림이기만 하다. 사람들의 눈은 세속의 안락과 부귀 그리고 영예와 권세만 바라보기에 귀는 굳게 닫혀있다. 그중에 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기에 이 곡은 아직도 쓸쓸하기만 하다.
김지하 시인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20921348
김민기와 양희은
출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26/20110726023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