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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이대양 작가



Q. 서울공대 구성원과 공대 동문분들께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시스템공학부에 2003년 입학을 했고 이후에 에너지자원공학과로 졸업을 한 이대양이라고 합니다. 저는 수요일과 일요일 네이버 웹툰에서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를 연재하고 있고 조희찬 교수님 밑에서 박사를 받았습니다.
Q. 대학 학창 시절 기억에 남은 추억이나 은사님이 계신지요?
A. 저의 지도 교수님 이셨던 조희찬 교수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육아휴직 후에 다시 복학을 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가 다 교수님 밑에 있을 때였는데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3년 동안 아이를 키우다가 다시 박사과정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에 있다 보면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는 등 조퇴를 해야 할 상황이 빈번하게 있었는데 이때도 이해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박사학위를 마치고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아마 교수님이 아니셨다면 작품 제목을 바꿔야 했을 것입니다.
Q. 웹툰 작가로 활동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늘 학교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 육아를 하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서 다시 대학원으로 복귀를 했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를 무사히 마쳤는데,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아이는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등으로 어린이집에 가서 꼴등으로 나오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그 뒤에 제 경력을 이어가는 상황에 있어서도 그보다 더 아이와 보낼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 한테도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의미가 컸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일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십여 년 정도 전에 인터넷 소설 작가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팬클럽에서 저희 아내를 만났습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저는 아내한테 다시 작품 생활을 시작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를 등하원 하는 일도 하고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으니 이러한 경험을 살린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그러면 육아 만화를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육아 만화는 이미 많지만 남자가 주로 육아를 하고, 경력 단절을 겪고, 소위 말하는 ‘아빠 육아’를 하는 내용의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으니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시험 삼아 도전 만화에서 그렸던 것이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무사히 네이버에서 웹툰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Q. 현재 연재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지금 연재 중인 작품은 ‘닥터앤닥터 육아일기’입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닥터 ‘안다’와 공학박사인 닥터 ‘베르’가 아들 ‘레서’를 키우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닥터앤닥터 육아일기입니다. 산부인과 전문의 엄마의 임신과 출산은 어떤 느낌이고 공학 박사 아빠가 아이를 어떤 느낌으로 대하는가에 대한 일상 만화입니다.
Q. 앞으로 웹툰 시장에 대한 전망과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A.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기기들이 계속 보급이 되면서 스낵 컬처로써 웹툰은 한동안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십여 년 정도 전에 인터넷 소설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 20만 원 정도의 고료를 받으면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웹툰 작가를 검색하면 웹툰 작가 수익이 화제가 될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까 에이전시나 스튜디오에서 단체로 웹툰을 제작하는 형식이 많아지면서 개인 작가들 데뷔는 점점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독특한 작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다 보니 또 다른 신인 작가들은 계속 발굴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동안은 치열한 시장이 계속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Q. 서울공대 학창 시절 경험 중 현재까지 도움이 되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떠한 경험들일까요?
A. 저는 서울대학교를 다녔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양질의 교양 과목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유도 금메달리스트한테 호신술을 배우거나 국가대표 코치한테 골프를 배우는 경험들이 살면서 쉽게 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그런 드문 경험들을 해볼 수 있었고 그런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작가적 역량에 도움이 되는 기회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대학원에 있으면서 느꼈던 크고 작은 실패와 실수와 성취가 제 마음을 단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웹툰 작가는 불투명한 요소가 많은 직군인데 쉽게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사고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Q. 최근 공대에서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은데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시대는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저는 인터넷 소설을 쓸 당시에 워낙 좁은 시장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제가 성공할 수 있거나 생계를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그 덕분에 저희 아내라는 소중한 인연을 만났고 웹툰 작가를 지망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작가로의 저력에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때그때 내 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의미 없어 보이는 퍼즐 조각이라도 꾸준히 모으다 보면 나를 위해 바람이 부는 그런 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는 것이니까 눈앞에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조금씩 쌓아가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도 지나고 보면 그것이 핵심이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Q. 앞으로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창의력에 대한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A. 4차 산업 시대에 마지막까지 없어지지 않을 직업 세 가지가 예술가와 국회의원, 종교인이라고 합니다. AI는 죽지 않으므로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어서 종교인이 남고, 국회의원들은 AI가 국회로 진출하는 법을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체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술가가 마지막까지 남는다고 하는데, 웹툰 작가로서 활동하다 보면 AI가 웹툰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는 과정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효과선을 넣어주는 정도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사진을 그래픽으로 바꿔주거나, 자동으로 채색을 해주거나 소재를 빠르게 배치할 수 있게 해주는 툴들이 나오고 있어서 이런 툴을 익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쓸 수 있어도 그것을 어디에 배치 할지는 웹툰 작가의 역량이고 영역입니다. 저는 사실 이런 상황이 공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학적 분석 도구나 툴은 점점 더 간편해지고 강력해지고 다양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어디다 쓸 것인지는 연구자의 역량에 속한 문제입니다. 비유를 한다면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개의 점을 잇는 통찰력, 이것과 이것을 이어서 연결시키면 어떻게 될까 하는 통찰이 4차 산업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계획이 세워지고 연관성이 파악되면 그것을 잇는 과정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강력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하자라고 마음먹는 것은 연구자의 역량이기 때문에 세상을 넓고 유연하게 보면서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일의 중요성이 커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Q. 서울공대 웹진 독자(동문)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A. 저는 많은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2019년 9월에 네이버 웹툰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달에 제가 혈액암 4기를 진단받아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주기적으로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느 꿈을 꾸고 어느 상황에 있든 건강은 정말 중요한 문제이고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까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모두들 바라시는 바 잘 이루시기를 바라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