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음악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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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츄어의 명반사냥이야기 서른 다섯 번째 : 내가 살아 있으니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박경 (PARK KYUNG) - EXPERIMENTAL NAKEDEYES”
LP (대도레코드사, 음반번호 : DL-10017, 1990년 7월)
“Feed Back Life of Park, Kyung”
CD (대도레코드사/TONE MUSIC, 음반번호 : TMF-001, 2003년 1000장 한정판)
영화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은 단 2장의 앨범만 남기고 사라진 미국의 음악가 로드리게즈(Sixto Rodriguez)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Sussex Records에서 1970년에 제작했던 1집 <Cold Fact>는 단 6장만 팔렸고, 2집 <Coming from Reality>는 그보다 더 비참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히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흘러간 그의 노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인종차별 운동의 애국가로 추앙받게 된다. 그곳에서 밥 딜런에 비견되며 앨비스 프레슬리보다 유명한 슈퍼스타였지만, 로드리게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그가 2집 발매 후 가진 공연 중 자살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두 명의 극성팬들은 진실을 찾아 로드리게즈의 고향 미국으로 떠난다.

이처럼 세계대중음악사에는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사에도 단 한, 두 장의 음반만 내고 사라진 음악가가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 어떤 이들은 로드리게즈처럼 훗날 재평가를 받고 음악사의 한 면을 장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잔향도 남기지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가곤 한다. 안타까운 건 충분히 음악사에 발자취를 남길 만도 한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는 음악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박경(朴慶)은 ‘한대수와 전인권보다 더 걸쭉하고 개성적인 보컬’을 선보였다고 평가받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었다. 한때 전설의 그룹 ‘들국화’에도 몸담았다가 1990년 단 한 장의 음반만 발매하고, 2003년 간경화로 요절했다.

박경은 고향인 부산에서 ‘종고’와 함께 듀오 ‘들불’을 결성해 활동하다 전인권과 하덕규의 소개로 상경하게 된다. ‘들불’은 1988년에 들국화의 최성원이 기획한 옴니버스 앨범 <우리노래전시회 3집>에 “울면 안돼”를 취입하면서 데뷔했다. 박경은 “울면 안돼”의 작사, 작곡을 했을 뿐 아니라 앨범의 표지 일러스트를 맡기도 했다. 참고로 1984년 발매를 시작했던 <우리 노래 전시회> 시리즈는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정수를 담았으며, 동아기획을 주축으로 신인을 발굴하였다. 이 음반에도 박경을 비롯하여 푸른하늘, 박학기, 김현철1)이 신인으로 참여하였다. 최성원은 “박경은 한대수의 노래를 한대수보다 더 투박한 경상도 억양으로 멋지게 소화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짧은 듀오 활동 후 박경은 솔로 가수로 독립하여 1990년 그의 독집을 발표한다.

그의 1집이자 유일작이 된 는 기본적으로 포크의 어법을 따르고 있지만,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내뿜고 있다. ‘자연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삶에 대한 자신의 고뇌’를 주제로 지극히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바탕에 범접할 수 없는 보컬로 거친 선을 긋는다. 이 음반에는 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참여했는데, 아트 포크 뮤지션 김두수,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기타리스트 김광석, 드러머 배수연, 그룹 들국화의 손진태, 주찬권, 최구희, 그룹 11월의 조준형, 김효국 등 당대 최고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다.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하나 같이 버릴 게 없지만, “수인선”, “새벽”, “내가 살아 있으니”는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수인선”과 “새벽”에서는 거친 보컬과 메인선율을 연주하는 오보에의 감미로움이 짙은 하모니를 이룬다. 오보에는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많은 작업을 한 임정희가 맡았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에 동료 음악인들로부터 ‘동양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목소리’로 찬사를 받았지만, 대중에게는 외면당했다.

1990년에 발매된 이 앨범의 초판 LP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기에 희귀반이 되어 음반사냥가들의 타겟이 되었다. 가격도 수십 만원에 거래된다. CD로는 1996년에 백마화사랑(白馬畵舍廊) 지원으로 대도레코드사에서 소량 재발매하여 그가 직접 운영하던 경기도 장흥의 카페에서 판매하였다. 그의 사후에는 2003년에 톤뮤직에서 1000장 한정 CD로 재발매하였다. 이후에도 그의 음악은 매니아들 사이에 꾸준히 입소문을 타 2019년 8월 화이트판 250장, 블랙판 250장으로 총 500장 한정판으로 LP로도 재발매되었다.

필자도 경매사이트를 통해 처음 이 음반을 접한 후 박경의 매력에 빠져 초판 LP를 싸인반, 미개봉, 감상용으로 각각 한 장씩 보유하게 되었다. 어떤 음반사냥꾼께서 ‘좋아하는 음반은 세 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말에 따르게 된 첫 번째 앨범이기도 하다. CD는 아쉽게도 싸인반 없이 미개봉, 감상용만 보유하고 있는데 모두 2003년 발매반이다.

‘집시’, ‘기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뿐, 깃발 없는 그의 생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독특한 캐릭터로 ‘재미있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모토였던 그는 워낙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마광수의 소설에도 등장했고 1990년대 기인열전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미술에도 재능이 있어 그의 앨범 표지도 직접 디자인하였고, 음반 속지에도 박경이 직접 그린 그림 3점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96년 CD를 발매하면서 “수인선2)”의 제목이 “경의선(백마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백마역의 선술집 ‘백마화사랑(白馬畵舍廊)’에 대한 애정 때문일지 모르겠다. 문인 기형도가 사랑하고, 강산에, 윤도현 등 가수들이 꿈을 키우며 자유와 사랑을 노래하던 곳. 1980년대 경의선 철길을 따라 걷던 대학생들의 쉼터가 되어준 명소였던 백마화사랑에서 박경은 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들은 기꺼이 그의 음반 작업에 참여해 주었다. 결국, 술이 그의 생명을 앗아가긴 했지만, 그가 사랑했던 백마화사랑에서 부딪힌 술잔이 이 저주받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박경이 사랑했던 백마화사랑도 문을 닫고3), 수인선도 운행을 중단했다. 하지만 고양시에서는 백마화사랑의 상징성을 보존하고자 2020년 9월 재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수인선도 표준궤 복선 전철로 2020년 9월 전 구간 개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의 꿈은 잘려 나갔지만, 그의 노래는 운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깃발 없는 내 인생
   새벽 없는 나의 기도
   잘려 나간 나의 꿈
   나를 위해 노랠 불러 줘”
   - 박경 “내가 살아있으니” 中

1) 김현철은 당시 고등학교 졸업반으로 박학기가 부른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를 작곡하였다.
2) 수인선은 인천의 송도와 경기도 수원을 연결하는 철도로 철도 폭이 표준궤도(1.43 m) 보다 좁은 국내 유일의 협궤철도이다. 철도 폭이 표준궤도의 절반에 불과해 수인선 운행 열차는 "꼬마열차"로도 불렸다. 1937년 운행을 시작하여 1995년 운행이 중단되었다.
3) 백마화사랑”은 “숲속의 섬” 까페로 바뀌었고 2016년 영업이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