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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대 동문 박금수님


Q. 동문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저는 박금수라고 합니다. 전통무예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울공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석사부터 체육교육과로 옮겨 박사를 했어요. 체육사를 공부했고 전공 분야는 전통 무예, 특히 조선 후기 무예 쪽입니다. 지금은 서울대 체육교육과에서 강사를 하면서 십팔기 보존회라는 사단법인의 사무국장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몇 년전부터는 KBS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하면서 우리 무예의 역사에 대해 대중들에게 조금씩 알리고 있습니다.

Q. 현재 운영하고 계시는 사단법인 전통무예 십팔기 보존회는 어떤 일을 하나요?
A. 십팔기를 보존하는 사단법인 입니다. 십팔기는 18가지 무예라고 해서 조선 후기의 무예도보통지 라는 책이 정조 시대 때 편찬됩니다. 사도세자, 정조 2대를 통해서 만들어낸, 당시 군영에서 썼던 무예인데요. 그 무예를 오늘날까지 계속 보존해 나가고 문화재 작업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전통 무예에 대한 우리나라의 흐름이나 현황이 어떤가요?
A. 무예 또는 체육계가 되겠는데, 무예계는 특수한 분야라 무예계를 위주로 말씀을 드리면 전통 무예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많이 올라간 상태입니다. 글로벌화 진행되면서 우리 것에 대한 요구, 우리 문화적 정체성, 역사적 근원, 신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체육계와 무예계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태권도가 있어서 전통 무예에 대해 관심은 많은데 제도적인 지원이나 제도권 내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도 십팔기는 조선 시대 때 국가에서 집대성한 무예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국가적인 의례라던지 문화 콘텐츠들과도 관련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러 가지 국가 행사, 시범, 공연을 하면서 유지를 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예전보다는 활동이 활발해졌지만 전반적으로 전통무예계는 아직까지는 굉장히 힘든 편이죠.
Q. 전통무예십팔기가 어떤 것인가요?
A.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우리 언어로 많이 드러나죠. 그 외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중국, 일본과는 다른 우리 문화를 지켜 나갈 때는 당연히 군대가 있었겠죠. 전근대 시절 군대들은 무예를 익혀서 전투를 수행하고 국방을 했습니다. 그 무예들을 총 18가지로 정조 때 집대성을 합니다.
우리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었는데 당시 전쟁은 내전이 아니고 국제 전쟁이었습니다. 큰 규모의 다른 민족, 일본이라는 보군 위주의 해양 민족과 청나라, 여진족, 만주족의 기병 위주의 대륙 세력과 끊임없이 싸웠는데, 다양한 전쟁과 실전 경험을 통해 가장 실제로 쓸모가 있었던 것들만 모은 것이 바로 십팔기라고 합니다.
Q. 보존회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제가 93년도에 대학을 들어갔는데, 그 때는 공대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굉장히 활발하게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 시범단도 해서 원래 무예에 관심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때는 공부한다고 운동을 잘 못하다가 대학에 들어가니 전통 무예 연구회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배운 게 십팔기예요. 무예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그때 당시에 처음 알았고, 거기에 너무 빠져들어서 강의실에 거의 안 들어가고 버들골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수련하며 지냈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무예를 전공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죠. 졸업을 하고 석사부터는 체육교육과로 옮겨서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실제 시범단을 이끌고 문화 행사를 하는 일을 20년째 하고 있습니다.
Q. 보존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시절이나 때가 있으셨나요?
A. 2000년대 초반에 처음 시작할 때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사단 법인 낼 때만 해도 무예가 체육이냐 혹은 문화 예술이냐에 대해서 핑퐁게임을 많이 했습니다. 법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관 부처가 있어야 하는데, 기존에 없는 카테고리를 하고 있는데 기존의 카테고리에서는 서로 자기 것이 아니라고 배척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양쪽에 걸쳐 있는데. 행정이 실제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카테고리 싸움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전통 무예를 가지고 회비를 걷고 수익자 부담으로 비즈니스를 하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사명감으로 하기 때문에 행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둘 다 안 해 주니까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다른 일들을 하면서 꾸려 나갈 수밖에 없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Q. 전통 무예를 지켜간다는 사명감과 보람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A. 대중들이 이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인정해 줄 때, 무예가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고 이야기해 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한이 많다, 슬프다 하는, 역사적 우울증에 빠져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무예를 집대성한 기록도 있고, 우리 왕이 직접 무예를 하기도 하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책을 통해서, 학자와 무사가 협업을 통해서 무예 책을 만들어내고, 실제로 군대에서 훈련했던 역사가 있었던 것 자체가 자긍심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공연이나 시범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죠.
Q. 창업하는 후배들이 많이 있는데요, 새로운 개척의 영역 측면에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A. 저도 공학, 물리학, 과학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 당시 전기전자제어공학부(일명 전전제)를 들어갔었습니다. 평생 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롭게 너무 하고 싶은 것이 생긴거죠. 많이 갈등을 하고 진로 고민을 했어요. 대학원을 체육교육과를 나와서도 자다가도 몇 번씩 깼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자라 온 것을 틀어서 체육교육과에서 학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멀리 와버려서 깜짝 놀란 적들이 있어요.
‘이게 맞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게 본인의 에너지를 가장 끌어낼 수 있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실은 척박한 환경에서 하고 있어요. 무예 흐름들은 있지만 사회에서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이런 걸 왜 하고 있냐, 미친 거 아니냐 하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중국은 우슈로 집대성하며 제도권으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일본도 일왕 중심으로 무덕회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식민지를 겪지 않은 나라들은 무예가 제도권에 탄탄히 들어가 있습니다. 현대 스포츠 밑에 단단한 흐름이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 말고도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은 이런 것들이 파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는 다 있는데 우리만 없다는 것은 사회적 요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 일은 저에게 하고 싶은 일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필요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했기 때문에 일단 뛰어들었고 굉장히 어렵게 해나갔습니다.

요즘 같은 경우에는 제도권 내에 점점 접근을 해서 무형 문화재 종목 지정도 되었고, 한 발 한 발 나가는 것들이 제 예측대로 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보기에 전통 무예하면 산에서 내려왔냐고 하고 개인 취미의 영역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무예가 국가적 제도였다는 인식으로 바뀌어 가면서 어느 정도는 제 예측이 맞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Q. 학창 시절 경험 중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A. 공대생들은 뭔가를 실제로 구현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물리학자 같은 이론 과학자들은 이론적으로 증명을 하고 우리는 실제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재료공학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로켓을 쏘아올리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매우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각각의 분사기가 특성이 각각 다르지 않느냐. 이걸 만들어서 쏘아 올리는 것이 제어공학이다. 실제 세계와 타협하고 대화하면서 이론을 현실화하는 것이 공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인상깊었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설승기 교수님이 전기회로 시간에 배터리와 휴즈를 가지고 와서 터트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전기는 계산을 잘못하면 폭발할 수도 있다. 엔지니어는 책임을 져야 한다. 계산에 책임을 지는 영역이다. 틀렸다고 죄송하다고 할 상황이 아니다’였어요. 그래서 시험에서 틀리면 0점, 과정을 써도 답을 안 내면 중간 점수가 있는데, 만약 답을 내서 답이 틀리면 0점을 주셨거든요. 공대생들은 실험을 하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몸에 배잖아요. 지금은 완전 다른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런 기질들이 도움이 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남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방향만 이야기할 때, 공대생들은 첫 단계는 무엇인가, 제일 먼저 풀어야 하는 것을 무엇인가 하고 구체적인 단계부터 생각하잖아요. 현실 문제를 풀어나갈 때 단계적으로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게 공대에서 배운 기질과 능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
A. 저희는 사람들에게 십팔기를 알리고 보급하는 등 여러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 중에 하나가 십팔기를 서울시 무형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었어요. 현재는 첫 단추를 끼운 상태예요. 그리고 제가 체육학으로 석, 박사를 했으니까 우리 무예를 단순히 알리는 것을 벗어나서 현대적인 스포츠로 개발시키려는 계획도 있어요. 사람들이 흔히 무예와 체육은 다르다고 생각하잖아요. 무예는 신비롭고 호흡이나 기를 내는 이미지가 있는데 전근대적인 이미지예요. 하지만 무예는 그런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신체를 움직여서 가장 전략적인 우위를 선점할 때 이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경기로 발전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가장 급박한 것은 국가 무형 문화재로 선정하는 일인데 다른 나라도 다 겪은 문제들이에요. 전통이 근대랑 다른 게 표준이 없어요. 모든 국가들이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갈 때 전통을 표준화 시킵니다. 물론 반발도 있고 상실도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로 나아가야하거든요. 표준형을 만들어야 기반 되는 학문이 발전하고, 문화재 지정 뿐만 아니라 해외에 알리는.. 한국에도 전통이 집대성된 무예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제도적인 흐름이 필요하거든요. 무예의 표준형도 단체마다 다르거든요. 이전에는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한 단체로 모여서 본격적으로 표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10년 내로 잘 마무리되고 이후에는 이 자산을 다음 세대에 효율적으로 잘 전달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겠죠.
Q.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저희 때는 공대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동문들을 보면 PD도 있고 다양한 분야에 많이 나가 있더라고요. 저는 학부 때 압박을 많이 받았어요. 뭔가 빨리 결과를 내야 하고 프로젝트와 실험을 하는 것에서, 획일화된 압박들을 실제로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그런 만큼 학부 때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하면 나중에는 본인이 공부를 하고 벤처를 하고 조직에 들어가고 융복합 시대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거나 본인의 콘텐츠를 개발할 때 그 문화적 소양들이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워낙 공부도 바쁘고 시간표를 저녁때까지 수업이 잡혀있고요. 특히 공대는 실험 부담이 굉장히 크잖아요. 학점에 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방면으로 안테나를 켜면 좀 더 본인도 재미있고, 많은 재미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일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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