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화면의 색감이나 조명의 사용, 매치컷(match cut、시각적으로 유사한 두 장면를 이어 붙이는 편집 방식) 등을 통해 능수능란한 장면화와 편집의 기교들을 더해서 단순한 장르물이 아니라 감독의 작가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감독의 특성은 <킹메이커>에도 이어진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북 출신의 약방 서생인 서창대는 1961년 인제의 한 연설회장에서 네 번이나 낙선한 야당의 정치인인 김운범의 연설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군부 정권의 강력한 억압과 독재의 기조가 유지되던 상황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야당의 맨 앞에 서서 정의와 대의를 주장하는 운범을 보고 창대는 그를 도와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창대는 운범에게 편지를 쓰고 직접 찾아가 읍소했고 그의 명석함을 알아본 운범에 의해 선거 캠프의 전략가로 활동하게 된다. 창대는 조직과 자금 모두에서 열세인 상황에서도 그간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방법으로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승승장구한다. 운범은 결국 야당의 경선에서도 승리하여 대통령 후보가 된다. 이에 창대는 유권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후보가 상해를 입는 상황을 연출하자고 제안하나 운범과 다른 참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던 중 운범의 자택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창대가 용의 선상에 오르면서 이들의 갈등은 격화된다.

<킹메이커> 역시 전작처럼 정치드라마로서의 장르적 컨벤션이 유지되면서도 변성현 감독 특유의 감각적 연출들이 돋보인다. 70년대의 온기를 드러내기 위해 전체적으로 레트로한 분위기의 톤앤매너를 유지하고, 흑백과 컬러 화면을 적절히 섞거나, 네거티브 필름이나 브라운관의 형태로 장면을 구성해 복고적 느낌을 주면서 인물에 따른 톤온톤(tone on tone) 색감을 활용하는 등 화면 연출에 고심한 흔적을 드러낸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조명의 명암, 화면의 배치와 커트 연결, 카메라의 앵글 등을 활용해서 다양한 조형적 이미지들을 만들어내어 영화 내내 화려한 시각적 장면화의 강점을 드러낸다. 인물의 심리와 그가 처한 갈등 상태를 화면 내의 여러 오브제를 이용해 조형적으로 만들어내는 특유의 감각이 돋보이는 것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서사 자체는 장르적 클리셰의 기본형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구심점을 이루는 카리스마형 리더의 정의가 손상되거나 부정되지 않으며 갈등을 일으키는 서브 주인공의 선택이 서사의 줄기를 이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중핵 서사는 다소 비틀어져 있는데, 내내 권력의 최고 자리에 가고자 하는 운범이 다소 평면적인 인물형으로 그려지는 것에 비해 보다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 창대에게 시선이 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단 한번도 자신의 이상과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이탈하지 않은, 정치인으로서의 낭만적 자기애가 충만한 운범이 놓여있는 자리의 배경 인물로 창대가 서브 플롯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가가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갈구를 드러내고 그 욕망에 이르고자 하는 애쓰는 창대의 주도적 서사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킹메이커’는 주인공을 보좌하는 인물이며 전략적인 수완을 통해 막후에서 권력을 쥐고 대리 권력 행사하려는 포지션으로 놓이게 된다. 그 자신이 권력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대리만이 가능하다는 점이 한계이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최상위 권력자를 옹립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나아가 최후의 한 명일 수밖에 없는 ‘왕’의 자리는 계속 바뀌더라도 그 권력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시스템의 설계자로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기능적인 역할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을 만들어나가는 단계의 ‘킹메이커’가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서 나아가 이미 옹립된 상태의 권력의 입장에서는 ‘메이커’가 언제든 판을 뒤집어 버릴 수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극중 창대가 지닌 딜레마이자 끝내 그가 운범과 등을 지게 되는 상황도 근본적으로는 ‘킹메이커’가 가지는 숙명론적 입장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극중 창대가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함께 선거운동에 있어 내거티브 선전전을 펼치고, 인신공격적 비방과 금품 살포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운범의 당선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 과정의 불온함을 도외시하는 것은 이미 선거 후보 당사자인 운범의 윤리를 넘어서는 것이자 창대 자신의 목표에 대한 집요함이 앞서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선거 전략가로서의 당위를 초과한 창대의 욕망은 권력의 최종 심급에 놓여야 하는 운범에게는 이미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창대가 상대 진영의 제안을 받아들여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지역주의의 반목을 선거전에 사용하여 효율을 내는 부분에 이르면 ‘킹메이커’라는 포지션이 지닌 위험한 속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어느 진영에서든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은 그 반대 진영에 가서도 동일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지난 정치사에서 떠오르는 몇몇 인물들로 예증되는 것이다. 즉, ‘킹메이커’ 그 자신이 권력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양가성은 선거전의 충직한 참모라는 당위마저도 그 자신의 의지와 주체에 따라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처음 선거단에 합류해서 선거운동원들을 독려하는 창대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쇼트는 카메라가 창대의 머리 뒤에서 하이앵글(high angle)로 내려다보거나 그를 둘러싸고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며 창대를 포커싱한다. 이는 카메라-창대-운동원들로 이어지는 화면의 깊이와 위계적 시선을 만들어낸다. 또한 연설을 시작하며 강력한 언술과 추진력으로 그를 미심쩍어하는 선거 사무실 인물들을 설복시키는 장면은 판을 쥐고 흔들려 드는 그의 복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게 처음엔 김운범이라는 사람이 좋아서 시작했습니다. 근데 웃긴 게 이기면 이길수록 커지는 선생님 등 뒤를 보고 있으면 왜 나란 사람은 아무도 몰라줄까…”라는 고백 또한 그러한 ‘그림자’로서의 삶 속에 잠복해 있던 창대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운범에 대한 존경심과 그를 전도양양한 정치인으로 만들겠다는 계획 뒤에 숨어 있는 창대의 인정 욕망과 공명심의 미묘한 지점들은 그를 그림자에만 머물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이 영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의 내외부의 동력이 일정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칸영화제 초청 당시를 환기해보자면, 당시 배우들은 레드카펫에 섰으나 감독은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영화 개봉 당시 갑자기 감독이 sns에 쓴 일련의 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지역 혐오적 표현들이거나 대선 정국의 한 후보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악화된 대중적 여론은 흥행에도 영향을 미쳤고 결국 감독은 영화 관련 홍보에서 전면적으로 배제되었다. 당시의 일을 사과했던 감독의 다음 행보가 <킹메이커>였던 탓에 이 영화의 의도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기도 하지만 감독은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그리려는 아니라고 한사코 강조한다.

그러나 김운범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 지닌 대의와 공정성, 민주주의에 대한 올곧은 신념은 낭만적 회고조의 분위기를 띄며, 빛과 그림자의 대비와 함께 은은한 감성적인 음악으로 연출된다. 또한 이를 표현해내는 배우의 뛰어난 연기에 의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그를 둘러싸고 옹위하듯 도열해 있는 인물들이 배경으로 존재하는 그룹 쇼트(group shot)들은 김운범으로 상징화되는 가치를 긍정적으로 이상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선망하는 존재에 대한 갈구가 이뤄지지 않자 돌아섰으면서도 상대 진영의 일원이 되기를 거절하는 서창대의 행보에서 끝내 철회하지 않는 열망의 이야기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일담처럼 남는 실제 역사 속 야당의 정권교체의 상황과 그곳에 있지 않았던 창대에 대한 부기는 결국 다리를 저는 것으로 표현된 운범의 가치를 긍정하는 결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 역시 전편처럼 대선 정국에 개봉되었는데 낭만화된 대의가 현실적인 정치 공학을 이겨낸다는 설정 자체가 일정한 스탠스를 지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던/못했던 대상에 대해 한사코 자기 원래의 의도를 설명하려는 안간힘이 영화 내외부의 동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 자료-네이버영화 및 영화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