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향
영화평론가
이수향
영화평론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소설<<설국>>의 첫 부분이다. 코로나로 예년 같은 낭만을 찾기는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겨울의 풍경하면 떠오르는 것이 눈이다. 그리고 영화 속 겨울 풍경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들을 떠올리면 대개는 일본 영화들이다. <<설국>>의 배경이 되었던 니가타현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의 삿포로나 오타루 같은 지역은 겨울이 배경인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해서 우리에게 낯이 익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들은 주로 드라마나 로맨스 장르여서 겨울 영화=눈=로맨스라는 공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계절적 정취를 잘 느끼게 할 수 있으면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영화가 <윤희에게>(임대형, 2019)와 <러브레터>(이와이 슈운지, 1995)이다. 두 영화는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오랜 시간적 격차를 지니고 개봉했지만, 오타루를 배경으로 삼아 어긋나버린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편지가 주된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치지 못한 편지, <윤희에게>
연말이어서 영화 시상식들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비교적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수상 성과를 내고 있는 영화가 <윤희에게>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본 오타루에 사는 마사코는 자신의 조카인 쥰(나카무라 유코)이 쓴 편지를 한국의 예산에 사는 윤희(김희애)에게 보낸다. 새봄(김소혜)은 엄마 윤희 앞으로 온 편지를 먼저 확인하고 엄마의 옛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오타루 여행을 계획한다. 윤희는 경찰관인 남편과 이혼하고 공장의 배식 도우미로 일하며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딸의 강권에 못 이겨 오타루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새봄은 엄마와 쥰의 만남을 주선해 둘은 고교 시절 이후 아주 오랜만에 해후한다. 시간이 지나 새봄의 고교 졸업식이 끝난 후 윤희와 새봄은 서울로 이사를 가고 윤희는 새로운 삶을 꿈꾼다.
<윤희에게>는 실패한 사랑의 후일담이자, 서로의 깊은 속내를 알아가는 모녀의 이야기이며, 동성애의 코드를 배면에 위치시킨 퀴어물이면서, 가부장제의 규율 속에 포박된 채 살았던 하위 주체로서의 여성을 다룬 이야기이다. 전체적으로 여로형의 구조로도 볼 수 있는데 여행을 가는 기차에서 시작된 첫 장면이 먼저 제시된 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면서 마무리되는 구조로 짜여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는 ‘편지’의 영화이다. 제목부터 편지의 서두이고 구조와 내용의 양 측면에서 편지는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구조적으로는 쥰의 편지로 시작되어 윤희의 답장으로 끝이 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편지는 총 세 명의 목소리로 읽히는데, 쥰의 편지를 새봄이 한국어 내레이션으로 읽고 다시 쥰의 일본어 내레이션으로 반복하며, 윤희의 답장을 윤희의 목소리로 읽으면서 작품이 마무리된다.
내용적으로 ‘편지’의 의미가 더욱 중요한데,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쥰의 진심이 ‘편지’라는 간접적 매개체를 통해 겨우 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의 물리적 거리와 20여 년이라는 시간적인 거리감 역시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극복되기도 한다. 쥰에게 윤희에 대한 사랑은 당시에도, 지금도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발화할 수 없고 숨겨야 하는 것이다. 꾹꾹 눌러쓴 글들로만 털어놓는 쥰의 마음들은 매번 부쳐지지 못하는데 옆에서 오래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고모의 선택으로 겨우 윤희에게 도달하게 된다. 극 초반에는 이 과묵한 두 주인공의 과거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주변 인물들의 산발적인 서술로만 여러 겹으로 감춰지도록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어 둘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윤희와 쥰의 삶이 여전히 그 이별에서 놓여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사랑을 한때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 쉽게 치부할 수 없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과 그 잔여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그 곡진한 사정을 감정적 동요와 과도한 제스처를 삼간 채 담담하게 그려내었다는 점이 이 영화가 가진 큰 미덕이다.
잘못 배달된 편지, <러브레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하면 일본영화를 떠올리게 된 것은 이 영화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러브레터>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995년이지만 정식으로 한국에 개봉된 것은 1999년 11월이었는데 이는 당시 정부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일본 영화의 국내 개봉을 처음 허용해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해방 이후 최초로 극장 개봉한 일본 영화라는 타
이틀과 전국 관객 140만의 흥행을 기록했다. 그때는 단관 개봉이었으므로 당시 기준으로는 대흥행이었으며, 개봉되기 전부터 불법 복제 테이프 등으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봤었고 이후로도 최근까지 겨울이 되면 재개봉을 계속하고 있어서 전부 합치면 관객 숫자는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와타나베 히로코는 2년 전 조난 사고로 죽은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의 추도식에 참석하러 오타루에 있는 그의 집에 방문했다가 거기서 이츠키의 중학 시절의 졸업 앨범을 발견한다. 아직도 이츠키를 잊지 못하고 있는
그녀는 앨범 뒤에 적힌 이츠키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데 뜻밖에도 답장이 도착한다. 알고 보니 이츠키의
중학 시절 동급생 중에 동명이인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있었고 그녀에게로 편지가 배달되었던 것이다. 히로코는 그녀에게 약혼자 이츠키의 과거 에피소드를 들려달라고 말하고 이츠키가 이에 답을 해주면서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이 영화에서 히로코가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죽은 연인에 대한 애도가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이츠키가 죽은 산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며 자신이 모르는 그에 관한 작은 기억의 조각들이라도 얻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러나 히로코는 (여자)이츠키와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비로소 그를 떠나보낼 수가 있게 된다. 왜냐하면 히로코가 선배 아키바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줄 수가 없었던 것은 이츠키가 죽었음에도 누구와도 그를 대체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츠키에게는 히로코 자신이 이츠키의 첫사랑의 대체자에 불과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연인이 죽은 후에도 단 하나뿐인 사랑의 장력을 팽팽하게 유지하던 히로코에게 큰 실망감을 준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녀는 사랑의 대상이 옮겨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비로소 이츠키를 떠나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이츠키가 죽은 산에 가서 “잘 지내고 있나요? 나도 잘지내고 있어요.”라고 외치는 유명한 장면은 죽은 이츠키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살아가야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것일 수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윤희에게>에서 윤희는 활기 없는 표정으로 일상적인 노동과 삶의 피로에 침잠해 있는데 전 남편의 표현에 따르면 ‘사람을 외롭게 하는 사람’이다. 일본 오타루에 살고 있는 쥰은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연애나 출신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방어적인 태도로 대응하며 자기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이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은 이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기 위해 편지를 과감히 우체통에 넣어버린 마사코 고모와 일본 여행을 감행하는 새봄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끝나버린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꾹꾹 눌러 담은 채 시간의 중력을 견디던 두 사람의 마음의 행로가 제 길을 찾아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윤희의 표현대로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고통을 당연한 듯 감내해 왔더라도 쥰이 편지에 쓴 것처럼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눈처럼 삶의 기약 없는 퍼부음을 속절없이 느끼고 부대끼고 나면
어느새 새로운 봄이 문득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여행을 끝낸 두 모녀가 친밀하고 편안한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을
시작하는 장면에 할애된다. 얼마 되지 않는 살림을 작은 트럭에 싣고 올라온 윤희는 카페에 앉아 이력서를 쓰고 처음 가보는 골목을 헤매며 일자리를 위해 찾은 작은 가게 앞에서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지방 출신의, 이혼 경력을 가진, 나이 든, 고졸 학력의, 퀴어 정체성을 지닌, 무엇보다 ‘여성’인 윤희에게 서울에서의 삶이 이전보다 편안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아름다운 것’만을 담으려는 새봄의 뷰파인더에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윤희가 미소 짓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영화가 끝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암전 이후에 남은 내레이션에서 윤희가 자신의 내면을 뚜렷하게 응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해 봐도 좋을 것이다.
<러브레터>는 죽은 약혼자에 대한 애도를 끝마치는 히로코의 얘기이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누군가의 사랑을 모른 채 지나쳤던, 잃어버린 시간을 새로 얻게 되는 (여자)이츠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눈 덮인 오타루의 풍경과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는 실내, 조용한 도서관의 내부의 모습 등에서도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인상적인 이 영화에는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죽음의 그림자 같은 것이 서려있다. 이 영화에서는 장례식이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째가 이츠키의 추도식이라면 두 번째는 (여자)이츠키 아버지의 장례식이다. 그녀는 히로코로 인해 죽은 이츠키와의 중학생 시절들을 떠올리면서 잊고 있었던 시간들을 되살려내는 즐거움을 얻지만, 그 시절은 사실 그녀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슬픔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가 죽은 이츠키와의 과거로 돌아갈수록 마음 한 곳에 묻어두었던 아버지의 일이 다시 떠오르게 된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 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채 끝맺지 못한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감기로 인한 합병증으로 위급했던 아버지의 긴급 상황의 대처를 두고 오랫동안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갖고 있던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츠키가 독감으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가는 긴박한 장면은 과거 그녀의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과
교차편집으로 제시된다. 그곳에 똑같이 들어갔지만 아버지는 죽었고 그녀는 살아남는다. 병상에서 눈을 뜬
이츠키가 먼 곳의 히로코에게 대답하듯 잘 지낸다고 말하는 부분은 그녀 역시 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끝마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하얀 설국의 오타루를 배경으로 한 두 영화는 이렇게 편지라는 소재를 통해 이어지지 못한 과거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다시 회복해내는 서사를 담고 있다. 많은 것이 멈춰진 이 겨울에 추위를 견디며 긴긴 날을 보내고 나면 지금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도 금세 다시 회복될 것이라 믿는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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