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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적 전회 앞에 선 사제 간의 문답
–영화 <자산어보>(2021)




이수향
영화평론가



이수향
영화평론가
1. 주변부적인 인물의 개별화

<자산어보>(이준익 감독)는 코로나 이후로 지지부진한 흐름의 한국영화계에 간만에 등장한 무게감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도 <동주> 이후로 시도하고 있는 역사적 인물에서 제재를 취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계열화가 가능하다. 이준익 감독은 사극 장르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사극의 제작방식이나 조건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사극 장르 제작이 영화계에서 다소 주저되는 것은 세트, 의상, 미술 등에서 굉장히 많은 품이 들기 때문에 예산의 문제를 가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관객에게는 어휘 자체의 의고성(archaïsme)이나 극적 설정이 현대극보다 좀 어렵기 때문에 흥행성의 측면에서 부담감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량>처럼 흥행력을 고려해 사극영화가 제작된다면 일반적으로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 등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의 사극 계열의 영화들은 제작비의 돌파라는 측면에서 저예산인 흑백 화면을 취하며, 영웅적인 인물보다는 그 인물과 대비되는 주변 인물에 더 서사적 구심점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독특한 양상을 보여준다. <자산어보> 역시 마찬가지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정약용과 그가 연관된 ‘신유박해’(1801년)에서 제재를 취해오면서도 정약용이 아니라 그의 형인 정약전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조대왕 시기에 총애를 받던 정씨 형제들(정약전/정약종/정약용)은 왕이 승하하고 어린 선조가 즉위하자, 대비 정순왕후와 심환지 등의 노론 일파들에 의해 제거의 대상이 된다. 노신들은 이들 삼 형제가 ‘서학’을 받아들여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빌미로 삼아 정약종을 참수하고,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아우인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보낸다. 흑산도로 유배를 온 정약전은 바닷가 마을에서 총명하고 의기에 찬 ‘창대’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글을 가르쳐주면서 어류와 바닷가의 생태 조사에 관한 도움을 얻는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사제 간의 관계가 깊어지지만, 학문과 사상에 대한 견해 차이로 두 사람의 갈등도 깊어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정약전이지만, 이 인물이 주목될 수 있는 것은 정약용이라는 당대 최고의 학자에 연루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극 중 대사처럼 ‘천하인재로 소문난 정씨 형제들’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와 학문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또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가 그 스스로 알려진 것보다는 윤동주와의 관계에서 대비되어 빛났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정약용의 실체적 존재감에 대비되는 인물로서 정약전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는 서신 교환으로, 혹은 제자를 통한 문안 인사를 통해 두 형제를 교차편집하는 방식으로 정약용에 의해 대비되는 정약전을 개별화해내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2. 창대의 질문

<자산어보>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핵심적인 갈등 구도는 사상적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 그 패러다임의 전회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에 놓여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정치와 사회, 경제 모든 것이 성리학적 기반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돌아가던 조선 전기사회에 비해 조선 후기 사회는 일본과 서양의 침략, 삼정의 문란(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 세 가지 조세 재제의 부패) 등으로 극심한 혼란의 상황에 빠졌고 특히 백성들은 극심한 가렴주구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조선의 행정, 사상적 측면의 담지자로서의 유학자들에게는 그 상황에 대한 입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때 노론 일파를 비롯한 상당수의 기득권 유학자들은 기존 체제를 지속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꾀했다고 볼 수 있고,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시파와 벽파로 나뉜 붕당 속에서 개혁파인 정조를 위시한 및 젊은 실학자들은 상황의 타개책을 위해 고심했다고 볼 수 있다. 정씨 형제들은 후자의 개혁파에 속했고, 같은 남인 벽파 무리 속에서도 서학을 받아들이고 성리학적 명분 대신 실학적 실사구시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좀 더 급진주의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같은 사상적 흐름 안에서도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가 분기되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이 분기점은 또한 정약전과 창대가 갈등을 일으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창대는 흑산도의 백성들과 다름없이 배를 타고 물질을 하며 살지만, 나주 지방 장 진사의 서자라는 출신에 대한 자의식으로 글자를 깨치고 책을 읽는 인물이고 성리학적인 사상에 깊이 침윤된 인물이다. 좁은 섬 안에서 그가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와 배울 수 있는 학문의 수준이 막혔을 때 나타난 병부좌랑 출신의 일급 유학자인 정약전의 존재는 그에게는 학문의 단계를 급성장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열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학문적 깊이가 높은 이 스승은 성리학적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고, 임금 대신 천주를 믿는다고 하며, 주자학적 이상을 풀어낸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고작 흑산도의 바닷가 생물들에 대한 도감을 펴낸다고 한다. 이에 창대는 정약전의 그러한 학문적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때때로 분개하며 화를 낸다.

창대는 자신의 스승도 강진 선생(정약용)처럼 <<경세유표>>, <<목민심서>> 같은 백성을 다스리는 원리를 설명하는 책을 쓰고 제자들에게 깊은 학문적 감회를 주었으면 하는데, 높은 학문적 수준을 지니고도 고작 생선 배나 가르고 해초의 생태나 연구하는 스승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점은 영화 후반부에 창대로 하여금 정약전과 갈라서고 ‘상놈’ 취급받는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를 보고 나라의 관리가 되어 성리학적 이상을 펼쳐보려는 시도를 하게 한다.
3. 스승이 남긴 어류도감

그렇다면, 스승인 정약전의 입장은 어떠한 것인가. 영화의 서두 부분에서는 스승인 정약전이 처한 사상적 곤경을 영화적 화면 구도로 잘 드러내고 있다. 첫 장면에서는 흑산도로 가는 망망대해의 바다 위에 일엽편주의 배에서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정약전을 보여준다. 이어 선대왕 정조와의 일화로 화면은 플래시백 된다. 정조는 서학을 믿는 것으로 다른 관료들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는데, 정조에게 줌인(Zoom-in)되며 정조의 심려 섞인 표정을 클로즈 샷으로 보여주던 화면은 세례를 받는 정씨 형제들이 나란히 셋이 앉은 화면으로 연결되고, 특히 가운데에 굳은 표정인 정약전의 얼굴을 비추며 그의 굳은 심지를 강조한다. 그 표정에서 장례용 베옷을 입은 어린 순조로 연결되며 줌아웃(Zoom-out) 되며 빠져나온 카메라는 나란히 앉은 관료들, 그중에서 가운데 앉은 심환지에게 다가가 그가 반대파의 핵심 인물임을 강조하다. 즉, 정조의 승하와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의 변화를 짧은 몽타주들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조 옆에 앉아 수렴청정 중인 정순왕후를 드러내는 방식 역시, 신하들의 어깨 쇼트 화면 가운데에 위치시키고 얇은 막을 내린 상태에서 옆모습으로 화면에 구조화함으로써 은둔적 치리자이자 실질적인 주권적 명령의 주체임을 드러낸다. 이러한 카메라의 구도는 화면 안에 꽉 차게 나란히 앉은 삼 형제의 역 쇼트로서 나란히 앉은 노신들의 구도를 통해 미장센으로 완고한 사상적 갈등 구조를 드러낸다. 줌인-줌아웃의 리드미컬한 카메라의 테크닉이 돋보이는 이 장면들은 서사의 흐름을 표현하면서도 이 영화의 배면에 깔린 문제의 근원이 단순한 사건의 갈등이 아니라 사상적 대결의 형태임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수시로 “이것이 다 성리학이 무너져서 그런당께!”라고 외치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너 공부를 왜 하냐”, 혹은 “외울 줄 밖에 모르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어”, “네가 사서삼경을 외우는 시간에 그들은 뭘 연구하고 만드는지, 무섭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이는 사문화된 지식보다 현실을 대비하는 실용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백성을 치리하는 도보다는 백성의 삶의 곤궁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목민심서>>를 쓰는 아우 정약용의 입장과 어류도감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는 정약전의 학문적 방향이 대비되는 것이다.
창대가 세상에 나가 벼슬을 하고 책에서 배운 성리학적 이상을 펼쳐보려 할 때, 스승은 섬에 남아 지루하고 느린 공부를 지속한다. 책을 통해 문자를 외우고 해석하는 방법론 대신, 이렇듯 눈으로 직접 보고, 오랜 시간 관찰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통계를 모으고, 서베이 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 하고, 구술 채록의 레퍼런스를 활용하려는 정약전의 태도는 자연과학적으로 진일보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적 전회가 방법론적인 근대성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의 빛나는 부분은 그러한 사상적 대결의 당위론적인 부분을 설명조의 대사들로만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자는 힘이 세구나”라는 정약전의 대사나 “나가 어찌하는지 보소. 이 목민심서 그래도 할텐게. 백성은 땅을 논밭으로 삼고 아전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라는 창대의 대사들이 그 갈등을 명징하게 드러내주고 있기는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실제 삶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땅에 작은 소나무가 자라자 세금을 피하기 위해 모조리 뽑아버리는 장면, 죽은 사람과 막 태어난 아기에게도 군포(세금)를 물리자 분노한 백성이 관아로 와서 남자로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며 양물을 자르는 장면, 백성에게는 양곡으로 세 배를 거두고 나눠주는 곡식은 모래를 섞은 쌀을 나눠주는 장면 같은 부분들은 정약전으로 상징되는 실용적 학문의 목표가 결국은 실제의 현실 타개책이라는 이상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실제 정약전이 남긴 <<자산어보>>의 서문을 바탕으로 상상적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서문을 극 중 창대가 직접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 “내가 책을 만들기 위해 섬사람들을 두루 만나보았다. 그러나 섬사람들 말이 두루 달라 이를 정리하여 표현할 수 없었다. 섬 안에 창대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책이 많지 않은 탓에 식견을 넓히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신실하고 정밀하여 물고기와 해초, 바닷새 등을 모두 세밀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터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오랜 시간 그의 도움을 받아 책을 완성하였는데 이를 지어 <<자산어보>>라고 한다.” 이 서문은 정약전의 목소리로 보이스오버(voice over) 되는데, 일급의 학자가 오랜 시간 몸이 상하도록 애써 만든 책의 서문에서 그 공을 한미한 출신의 청년에게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정약전의 내면적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극 중 창대가 영화 첫 장면에서의 스승처럼 다시 배에 올라타 바다를 바라보는데, 내내 흑백이던 영화가 밝게 컬러 화면으로 바뀐다. 이는 정약전이 그토록 바라던, ‘상놈’도 ‘양반’도 모두 무화된 세상으로 역사가 결국 흘러가게 되었음을 현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네이버영화 화면 캡쳐 및 스틸 사진
*이수향: 서울대 국문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