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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 코로나 시국에 중국에 가다!
조선해양공학과 3 백지원




백지원
조선해양공학과



백지원
조선해양공학과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19학번 백지원입니다. COVID-19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져 버린 일상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저 역시도 비대면 강의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어 하루하루 의욕이 떨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바로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돌아오자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올해 2월, 저는 서울대학교 국제협력본부 OIA의 해외 파견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중국 생활은 많은 것이 낯설고 녹록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정말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직접 대면 강의를 듣고, 또 주말을 활용해 근처를 여행하기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제 스스로에 대해서도 한층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답니다. 코로나 시국의 중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중국의 공과대학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교환학생을 통해 제가 겪은 모든 것을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대면 수업이 시작된 중국의 캠퍼스
지금 생각해 보면, 중국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격리 생활 때였던 것 같아요. 저는 입국 후 중국 정부가 지정한 호텔에서 2주 격리를 했지만, 당시 중국에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1주일을 더 추가로 격리해야 했습니다. 총 3주 격리를 하고 나서야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이렇게 엄격한 방역 정책을 시행한 덕분인지, 중국에서는 다행히 코로나가 종식 국면으로 접어들어서 대학에서도 대면 수업을 할 수 있었답니다. 처음 학교에 들어와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아직 관공서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보니 학교나 대부분의 공간에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마스크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한국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 부럽기도 했답니다.
또 중국의 대학은 다들 입구에서부터 출입통제를 엄격하게 하고 있었어요. 출입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발급한 허가증이나 학생증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교환학생으로 등록하러 갈 때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덕분에 학교 안은 외부인이 들어오지 않아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이곳은 코로나가 거의 종식 국면에 접어들고,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많이 돌아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단순히 마스크를 벗어서 편리했던 것만은 아니고, 아무래도 대면 강의를 하다 보니 수업을 더욱 성실하게 듣게 되고, 또 교수님이나 다른 학생들과의 소통도 훨씬 잘 되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신기한 중국의 전공 수업
저는 ‘현대조선기술’과 ‘선박원리 - 저항과 추진’이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둘 다 정말 흥미롭고 유익한 수업이었어요. 둘 다 3학년 수업이었는데 제가 ‘유체역학기초’나 ‘해양플랜트공학개론’ 등 한국에서 들었던 2학년 전공수업 내용이 포함되어있기도 하고, 한국에서 배우는 3학년 전공수업과도 비슷한 내용을 배우는 수업이어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강의 중간중간에 교수님들께서 중국의 조선산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는데, 대부분은 한국과 비슷했지만 다른 점도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어요. 특히 중국이 조선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상하이에만 선박 성능 실험을 위한 예인수조가 4개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소에서 선박 설계와 건조를 동시에 담당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조선소와 설계회사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그러다 보니 조선소와 설계회사 간 긴밀한 협업이 어려워 종종 조선소의 건조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하는 경우에 문제가 된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한편 중국에는 중소형 조선소가 매우 많아 빅 3사가 주도하는 우리 조선산업 생태계와 다르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렇듯 다른 나라의 산업 생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서 전략을 세우면 앞으로 우리나라 조선업의 수주 경쟁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수업이 재미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중국어로 수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아무래도 공학 용어나 수학을 중국어로 표현하는 게 많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영어로 된 학습 자료를 사용하면서 영어 단어를 함께 사용하는 데에 익숙한 한국 대학 강의와 다르게, 여기에서는 모든 공학 용어를 중국어로 번역해 사용했어요. 그래서 전공 책에 나오는 중국 단어를 틈틈이 따로 번역해 노트에 정리하면서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 했답니다. 그나마 ‘파장’, ‘유도 속도’과 같이 우리나라의 한자어와 비슷한 용어가 나오면 이해하기 수월했지만, ‘레이놀즈수’나 ‘주코프스키 공식’ 같은 외국 명칭의 경우는 중국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난감했던 적도 많았답니다. 그래도 학기가 반 정도 지나다 보니 웬만한 용어에는 꽤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중국 학생들
중국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중국 학생들이 열정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어요. 개강 첫 주에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이 공부하는 곳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평소에 강의실이 있는 공간을 자습실로 전환해서 주말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때가 상대적으로 과제나 수업 부담이 적은 개강 첫 주였는데도 중국 학생들이 굉장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또 이런 학생들과 제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저 스스로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국 학생들도 한국 학생들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지만, 안타까웠던 점도 있습니다. 바로 최근에는 미중 간 무역 갈등의 결과로 몇몇 중국 대학에서 매트랩 프로그램 사용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저도 프로젝트 과제를 제출할 때 혹시 몰라 매트랩 대신 파이썬 언어를 이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학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학문인데, 공학 발전을 위한 도구가 국가 간 갈등에 무기로 이용되고, 결과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중국 학생들이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학습 자원을 활용할 수 없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과학 기술과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와 같은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마치며
처음에는 이제 막 3학년이 되는 시기에 너무 이르게 교환학생을 가는 것은 아닌지, 코로나가 심하지는 않을지,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아닌지, 굉장히 많이 걱정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한 학기였던 것 같습니다.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혼자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생활해본 게 스스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특히 빠르게 기술 발전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현주소를 직접 두 눈으로 보면서 앞으로 공학도로서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님과 직접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셨다는 교수님도 만나 뵙고, 전공 수업에서 말로만 들었던 ITTC(국제 수조 회의)에서 추진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신 중국 교수님을 직접 만나 뵙고 연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교환학생이 아니었으면 하기 어려웠을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전공 수업뿐만 아니라 주말과 연휴를 활용해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시야를 한층 넓힐 수 있었어요. 그중에서는 중국의 연휴 기간에 베이징 여행을 가서 들렀던 ‘중관춘 창업 거리’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중관춘 창업 거리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도 불릴 만큼 중국의 인재들이 모여서 프로젝트를 함께 할 파트너를 구하고 자유롭게 창업하며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해요. 바이두, 샤오미와 같은 중국 굴지의 기업이 태동한 곳인 만큼, 저도 기운을 받아가고 싶은 마음에 바쁘게 움직이던 중관춘 창업 거리의 사람들처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면서 나중에 저도 한국의 혁신을 이끄는 사람이 되어서 당당하게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