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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츄어의 명반 사냥 이야기 마흔여덟 번째: 너무 늦은 싱어게인

기고자. 나용수 원자핵공학과 교수
LP커버
"Eva Cassidy: Live at Blues Alley" LP(Blix Street Records, 음반번호: G8-10218)
나용수 교수
나용수 교수

1998년 9월 아침, 영국 BBC 라디오2의 <Wake Up To Wogan> 프로그램에서 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초점마저 흐릿한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꾸며진 조악한 커버의 앨범에 실린 곡이었다. 사진은 마치 옆집 소녀처럼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이름 없는 가수의 옆모습이었다. 곡 제목은 'Over the Rainbow'.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실렸던 명곡이지만 가수라면 한 번은 커버해 보는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노래였다.

그러나 청취자들은 5분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반응했다. 노래가 재생된 지 10분 만에 100명 이상이 이메일을 보냈다. BBC의 전화 라인은 막혔고, 그 후 며칠 동안 편지와 팩스가 쏟아졌다.

이후 2000년 12월 13일, 영국 BBC2의 음악 프로그램인 <Top of the Pops 2>에서 그녀의 짤막한 영상이 방영되었다. 1996년 1월에 라이브로 부른 'Over the Rainbow'를 가수의 친구가 캠코더로 찍어준 조악한 화질의 영상이었다. 프로듀서는 이 영상이 프로그램의 명성에 누가 될까 염려하여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비울 때쯤인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분에 방영했다.

창백한 얼굴의 이 가수의 잔잔한 소리는 다시금 시청자들의 심금에 심금을 울렸고 <Top of the Pops 2> 진행 역사상 가장 많은 재방송 요청을 받게 된다.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였던 마크 하겐(Mark Hagen)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전에 한 번도 이처럼 재방송을 요청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기타를 들고 작은 의자에 앉아서 5분 30초 동안 노래를 부르는 소녀의 흑백 비디오는 MTV의 수백만 달러 비디오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Songbird 표지
<Top of the Pops2>에서 방영된 'Over the Rainbow'. 이 영상이 두 번째 방영되었을 때 TOTP2 역사상 가장 많이 재방송 요청된 영상이란 문구가 나왔다. (출처: https://evacassidy.org/videos)

사람들은 더 많은 그녀의 노래를 원했지만, 그녀는 TV 방송이 있기 이미 수년 전인 1996년 11월 향년 33세로 유명을 달리한 후였다. 그녀는 미국 워싱턴 출신인 에바 캐시디(Eva Marie Cassidy)였다.

재즈 비평가 테드 조이아(Ted Gioia)는 "당신은 '캐시디 센세이션'을 가슴 아프게 짧은 생애를 살다 간 가수의 이야기에 대한 응답으로만 볼 수도 있겠지만,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캐시디는 생전에 잊혔지만,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짧은 삶만큼이나 그녀의 무명(無名)은 큰 슬픔이다"라고 평했다. 스팅(Sting)은 "그녀의 목소리에는 표현할 수 없는 품격이 있다. 그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품격이다."라고 했다.

Songbird 표지
에바 캐시디 사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Songbird>의 표지

그녀의 사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Songbird>는 이후 영국과 아일랜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등에서 음반 차트 상위 10위 안에 랭크되었으며 천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정작 그녀의 조국인 미국에서의 반응은 유보되었으나 2001년 5월, 에바의 팬이 된 기자 데이브 마래쉬(Dave Marash)에 의해 ABC의 <Nightline>에서 그녀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그리고 그 주말 에바의 모든 앨범 다섯 장이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 자리를 차지했다. <Nightline> 에피소드는 재방송되었으며,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Nightline>이 되었다.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에릭 클랩턴(Eric Clapton)을 비롯한 많은 명성 있는 뮤지션이 그녀의 팬을 자청하였다. 심지어 2017년 한국인 최초로 반 클라이번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던 클래식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조차 무인도에 가져갈 음반 세 장 중 하나로 에바의 음반을 뽑았다.

그녀의 노래는 크리스마스면 어김없이 시청자들에게 찾아오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 (2003)>에도 실리는데, 정신 장애가 있는 오빠에 대한 책임감으로 사랑하는 칼과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라의 애틋한 사랑이 'Songbird'에 고스란히 담겨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훈구 강사(3)
Eva Music에서 발매된 <Live at Blues Alley> 초판 CD 표지 뒷면
정훈구 강사(4)
에바 캐시디(Eva Cassidy, 1963년 2월 2일~1966년 11월 2일)
(출처: https://www.independent.co.uk/...)

이 음반 는 낮에는 정원사로 일하다 밤에 수줍게 노래를 부르던 에바가 'Blues Alley'라는 라이브 카페에서 1996년 1월 2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라이브를 녹음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기술적인 문제로 두 번째 날의 연주만 앨범에 실리게 되었다. 이 앨범은 Eva Music에서 처음 발매되었다. (음반 번호: Eva Music - 2263) 이후 2021년 25주년 기념으로 3000장 한 정 LP 두 장으로 재발매되었다. (Blix Street Records - G8-10218) 이 앨범에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Autumn Leaves(고엽)'를 비롯한 13개의 주옥같은 곡이 담겨 있다. 가디언(The Guardian)이 평한 것처럼 미명에 세상을 떠난 이 아티스트가 부른 평범한 삶 밖의 희망과 신비한 세계에 대한 노래는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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